아름다운 의사 삭스
마르탱 뱅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직업병 때문인 듯,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무려 638쪽이나 되는 분량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설이면서도 내가 너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데다가, 나와 너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책읽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줄 간격도 좁고, 가끔 활자체도 바뀌어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참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플레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개업한 젊은 의사 브뤼노 삭스가 마을 사람들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아니 의사 삭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건강보험체계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진료를 받은 환자는 의사에게 진료비를 내고, 건강보험에 진료비를 신청해서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왕진이 일상화되어있고, 응급환자가 왕진을 청하면 진료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왕진을 가는 식이 우리나라에서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화 등으로 예약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찾아오는 환자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약을 받고 진료실 살림을 맡는 비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삭스선생님의 비서 르블랑 부인이 진료실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12개의 삽화와 6개의 독백을 읽다보면 삭스 선생님이 환자를 대하는 철학이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료실은 물론 생활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비디오가게에서 눈에 띈 X등급의 비디오 클립이 아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또한 환자의 개인사의 비밀을 철저하게 지켜주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진정한 의사에게 비밀이란 절대적인 거야(498)”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승에게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말입니다. 이런 진료방식은 환자들이 소소한 비밀까지도 털어놓게 만들고, 가까워질 수 있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거 원, 웬 멍청한 직업인지 몰라. 사람들은 우리를 무슨 식당 종업원처럼 여기지. 어느 날은 울면서 전화해서는 자기를 구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여기다가도 다음 날 빵집에서 나오다 마주치면 오던 길을 돌아가잖아.(118)”


의사인 저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삭스선생을 빌어서 말입니다. “난 글을 쓴다는 게, 여느 사람에게나 마찬가지로 의사에게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잡아 둘 수 없는 것들을 헤아려 보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빠져 달아나는 현실의 구멍들을 가느다란 끈으로 막아 보려는 시도이며, 다른 곳에서 찢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투명한 베일 속에 매듭을 지어 놓으려는 시도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기억에 대항하여 이루어지는 일이지 결코 기억과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글을 쓴다는 건 상실을 조절하는 일입니다.(620)” 글을 쓴다는 것은 시원치 않은 기억을 보완하는 일이라는 것이겠지요.


옮긴이의 말 끝에 작가가 글을 쓰는 일이 가지고 있는 치유작용에 관한 답이 있습니다. “나는 글쓰는 일을 진통제에 비유합니다. 진통제를 주는 일은 보살핌은 되지만 치유는 아니지요. 글을 쓸 때는 좀 덜 아파요.이 소설을 쓰면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글로 써내면서 약간의 치료가 된 거겠지요. 글을 쓴다고 해서 삶의 고통이 절감되지는 않아요.(638)”


출판사에서 예스24의 책소개 글에 정리한 1. 현대 의료 체계의 비인간성,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 따듯한 비관주의와 소설 집필 의도, 3 가지 요약은 이 책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라면 지나친 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걸어온 의업의 길을 그저 담담하게 적고 있을 뿐, 다른 의사를 혹은 의료체계를 비판하거나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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