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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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페이스 북에 계정을 만들기는 했습니다만, 만든 직후부터는 적극적으로 사용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당시에 열심히 하던 블로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과, 페이스 북도 나름 시간을 빼앗기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페이스 북을 매개로 한 기가 막힌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묘한 러브레터>는 우연히 페이스 북에 접속한 남자가 28년 전의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던 약혼녀의 이름을 발견하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작합니다. 남자는 답신을 기대하면서 보냈던 것은 아닙니다. 1년 동안 그녀의 페이스 북에 올라오는 일상을 지켜보다가, 1년이 지난 뒤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마도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는 고백을 덧붙입니다. 삼세번이라고 했던가요? 다시 1년이 지난 뒤에 메시지를 보냈을 때는 놀랍게도 그녀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중간에 여자가 메시지를 한번 씹은 것을 제외하고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메시지는 모두 23건입니다. 남자는 52살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위암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았지만, 재발된 상태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아무래도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와 연극부에 들면서 시작된 셈입니다. 당시 남자는 연극부의 부장이었고, 약혼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약혼자가 있는 선배가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파혼을 하고 대학 후배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또 여자는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고 사라졌던 것일까요?


읽는 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 두 사람은 메신저를 통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어가는 과정을 밝혀나갑니다. 사실은 결혼식장에서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혼이 무산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과거가 식장에서 밝혀져 망신을 당하고 파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사랑은 하지만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 달아난 신부의 사연을 그린 영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묘한 러브레터>의 주인공 여성은 결혼식 이틀 전에 갑자기 증발하여 30년 가까운 세월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간단하게 생각해본다면 결혼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당한 불행한 사건으로 인하여 결혼식장에 나타날 수가 없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반전을 이룹니다. 여성 쪽의 문제가 먼저 불거지더니, 그런 사정이 문제가 되었더냐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남자는 사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자는 자신이 결혼식장에 나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이야기의 절정이자 극적인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동시에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생각했던 모든 이야기의 사사를 통째로 뒤집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23건의 메시지는 무슨 의도가 담겨있었나 다시 정리해봐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등장인물이라고는 단 두 명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조연급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조연급 인물들이 실제로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두 사람이 주고받는 메시지를 읽는 독자는 메시지에 담은 두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후반의 반전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30여넌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만난 남녀가 옛 사랑의 아픈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메시지 교환에 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기묘한 러브레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구의 실제 경험담이라는 복면작가의 이야기조차도 믿기가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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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포도주
로맹 가리 지음, 장소미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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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도 묘한 흐름이 있다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만, <죽은 자들의 포도주>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죽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는데, 로맹 가리의 소설 <죽은 자들의 포도주>는 포도주에 취해 가사 상태에 빠진 주인공이 지하 묘지를 주유한다는 내용입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는 죽은 사람이 두 명 등장하는데 반하여, <죽은 자들의 포도주>에서는 무수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이고, 가사 상태의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산 사람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입니다. 그리고 <아침 그리고 저녁>은 주인공이 사망 직후에 일어나 산책에 나섰다가 먼저 죽은 친구를 만난 것인데, 친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반면 <죽은 자들의 포도주>의 경우는 지하 공동묘지에 묻힌 죽은 사람들의 군상이 생각지도 못한 저마다의 사연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로맹 가리는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프랑스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 1975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각각 공쿠르 상을 받았습니다. 로맹 가리 역시 필명으로, 그의 본명은 로만 카제프입니다. 1914521일 당시는 폴란드령이었던 빌노(지금은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인데, 저도 가본 적이 있습니다.)에서 태어났습니다.


<죽은 자들의 포도주>는 지하 묘지로 굴러 떨어진 튤립이라는 남성이 지하묘지의 입구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 벌이는 상황들의 모음입니다. 원본은 분절이나 장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편집인이 22장으로 구분하고, 모두 37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구분해놓았습니다. 읽다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모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편집자는 로맹 가리의 행적을 정리하고 <죽은 자들의 포도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더했습니다.


아홉 살 때부터 러시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로맹 가리는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에 정착하였는데, 엑상프로방스대학 법학과에 입학한 열아홉 살에 <죽은 자들의 포도주>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가 스웨덴 출신의 기자 크리스텔 쇠데룬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 23살 때까지 소설을 다듬었고, 이듬해인 1938년 크리스텔이 스톡홀름에 있는 남편에게 돌아갔을 때까지도 손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리는 자신의 절대적 사랑의 증거로 이 소설의 원고를 크리스텔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텔이 간직하던 이 소설의 원고는 1992년 파리에서 경매에 부쳐져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죽은 자들의 포도주>에는 무수하게 등장하난 경찰과 창녀, 그리고 수도사와 수녀들, 병사들, 전쟁 영웅, 독일군, 황태자와 정부요인들이 등장하는데, 심지어는 하느님도 등장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포도주가 언제 등장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심지어는 요한과 야곱 수도사가 그리스도의 성배에 담긴 무언가를 마셨는데 그것이 포도주인 걸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에 나오는 포도주의 정체는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합니다.


튤립은 사지를 벌벌 떨며 비명을 지르다가 눈을 번쩍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더는 밤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무덤에 걸터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 손에 각각 빈포도주병과 십자가가 들려있었다. 흐릿한 아침 태양의 음울하고 창백한 빛이 얼굴에 붙어 따라다녔다.(236)” 튤립이 마신 포도주가 죽은 자들에게 인도하여 그들의 사연을 듣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취생몽사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일견해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듣다보면 지독한 부조리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튤립이 만나는 죽은 자들의 사연은 죽음, 자살, 유년 시절, , 전쟁, 섹스, 알코올 등이 섞여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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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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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욘 포세의 3부작>을 읽은 인연으로 고른 책입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노르웨이 출신 작가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으며, 특히 소설과 희곡 부문에서 주목받는 작품을 여럿 발표해서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분이라고 합니다.


<욘 포세의 3부작>3부작을 읽었지만, 충분히 소화내지 못했으면서도 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의지할 데 없어진 젊은이가 비정한 세상에서 삶을 도모하다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임신한 아내에게 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지만 그가 택한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싶습니다. 물론 작가는 구체적으로 이를 적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역시 선문답처럼 느껴진 작품입니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아침과 저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올라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입니다. 1부에서는 올라이의 아내 마르타가 요한네스를 낳는 순간을 묘사하고, 2부에서는 요한네스가 죽음을 맞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출생의 순간은 불과 21쪽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죽음의 순간은 무려 103쪽으로 묘사했습니다. 요한네스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은 분명하지만 탄생의 순간에는 요한네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올라이와 마르타가 주인공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를 해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아기는 자신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부에 들어서면, “요한네스는 잠에서 깨어나 뻣뻣하고 찌뿌듯한 몸으로 오래 거실 옆방의 커튼으로 가려놓은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라고 시작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요한네스가 올라이의 아들인지 아버지인지 조금 헷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 에르나와의 사이에서 일곱 아이를 가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올라이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날의 요한네스의 행적이 묘합니다. 여늬날처럼 아침을 먹고 마실을 나섭니다. 부두에서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 배를 타고 고기를 낚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요한네스는 주위가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뭔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그런 그를 번갯불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페테르가 저렇게 멀쩡히 snsdiv에 서 있다니, 페테르는 죽지 않아? 페테르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게 아니었나, 그렇지 않나?(68)”


이 구절에서 보면 마침표가 찍혀야 할 자리에 쉼표가 찍혀있습니다. 전작 <욘 포세의 3부작>에서 설명을 들은 것처럼 욘 포세는 마침표가 없으면 모든 텍스트는 사람들이 내적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모습을 담아낸 길고 긴 덩어리의 형식(263)”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열 번 남짓 마침표가 찍힌 대목들이 있습니다. 마침표가 찍힌 대목은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과 일상에 관한 대목들에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요한네스는 집을 찾아오는 딸 싱네와 마주쳤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쑥 통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페테르로부터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통보받습니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에서 흔히 만나는 피오르의 자연을 배경으로 바다와 바람, 비와 외딴집과 보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오랜 사물들이 사람보다 오래 머물며, 그들의 죽음과 삶을 담아내고, 흔적을 간직한다는 점을 알려주려 했다고 옮긴이는 전합니다. 욘 포세의 작품에서는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사실 아래,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열망을 동시에 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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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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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는 특히 우리나라의 제1, 2 도시인 서울과 부산의 전직시장이 성추행과 관련하여 물러나거나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실시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지리멸렬하던 야당이 단일화 과정을 통하여 집권 여당과 제1 야당의 대결로 압축된 선거였습니다. 물론 군소정당들이 여전히 난립하여 들러리를 섰지만, 1%를 겨우 넘긴 후보가 하나였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정당정치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정치상황은 500여년 전에 시작된 붕당정치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선조 무렵 출발한 붕당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로 구성된 정치집단인데 이들은 학문적 유대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동인 서인으로 나뉘었던 것이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등으로 세분화되어갔고, 주도권을 두고 붕당 간에 살육을 벌이는 극한적인 상황까지 몰아갔습니다. 심지어는 왜국의 침입을 앞두고도 정세를 판단함에 있어 붕당 간에 견해가 엇갈리는 웃기지도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는 임진왜란의 치욕을 당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조선왕조의 붕당들이 호란의 치욕을 되갚으려는 효종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물론,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청나라에 반발하여 일어난 삼번의 난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휴의 개혁을 저지하고 결국은 죽음으로 모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올곧은 생각과 정책이 모두 지워지고 그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는 것입니다.


북벌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효종 재위시절에도 서인이 중심이 되어 겉으로는 북벌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북벌을 저지하려는 서인들의 끈질긴 방해가 있었고, 우암 송시열이 그 무리들을 이끌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인들은 조선은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조선의 왕이나 신하나 명나라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체계에서는 동급으로 생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던가요. 최근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송시열은 성리학자이며 공자와 맹자를 새롭게 해석한 주자를 계승하여 조선의 유학을 집대성한 주자학의 대가로 동양철학의 체계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정조 때는 성인을 의미하는 자() 칭호를 붙여 송자(宋子)라 칭했습니다. 반면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의 주인공 윤휴는 공자와 맹자에 대한 주자의 해석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조선 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켜 종국에는 사문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자의 해석을 존중했던 송시열과는 다른 학문적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자학자들이 사대부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백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던 것에 반하여, 늦게까지 재야에서 학문을 닦아온 윤휴는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사대부 집단의 반발로 완성시키지 못하곤 했습니다. 앞서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작금의 우리나라의 사회현상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의 저자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어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15)”라고 머리말을 마무리합니다. 어쩌면 작금의 우리 사회를 빗대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만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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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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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영화나 연속극에서 자주 만나는 주제입니다. 언젠가 미래에 시간여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에서 조건을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나 미래로 여행할 경우 자신과 만나면 안 된다는 것. 동일인물이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조우하는 경우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지워질 수 있다고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사건에 개입하여 결과를 바꾸려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 그 뒤에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뒤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말입니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한 결과가 대기에 영향을 미쳐 미국에 거대한 용오름현상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여행자는 여행을 통하여 과거나 미래를 구경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쉽지가 않은 일일 듯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이 아니라 아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본인이 지금까지 지나온 일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면 잘못한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그 또한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바로 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담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러시아 작가 페테르 우스펜스키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쓴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입니다. 누군가가 사람의 삶을 여행이라고 비유했다고 합니다만, 그야말로 같은 장소를 두 번 여행하는 셈이 될 것 같습니다.


연전에 인기를 모았던 연속극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는 저승사자가 이승의 삶을 마친 사람들에게 현생에서의 기억을 지우는 차를 내주었습니다. 환생하면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살라는 뜻이겠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과거로의 여행은 일종의 환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거의 잘못을 바라 잡으려면 지금까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에서는 잠시 떨어져 지내던 연인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남자 주인공이 마법사의 도움을 얻어 과거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적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나는 그대가 원하는 만큼 과거의 시간대로 보내 줄 수 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할 수 있어.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른 결과를 얻지는 못할 거야.(39)”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기숙학교에서 대충 지내다가 퇴학당했던 상황을 바로 잡으려 12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쁜 상황을 바로 잡을 틈이 없이 반복됩니다. 이미 기억해서 알고 있는 실수들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약하기만 한 인간의 본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이 과거와 미래는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어. 우리가 그 둘을 과거와 미래라는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야. 사실 이 둘은 과거이면서 미래인거야.(89)’라고 사뭇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갔던 일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버리고 마법사와 함께 진정한 앎을 찾아나가는 길을 걸을까도 생각해봅니다. 그 전에 연인이 있는 크림반도에 다녀올 생각도 합니다. 이야기에 나온 상황은 작가 자신이 기숙학교에서 낙서를 했다고 퇴학당했던 경험이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아무 것을 바꿀 수 없었던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과는 달리 <사랑의 블랙홀>은 반복되는 일상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아간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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