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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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는 특히 우리나라의 제1, 2 도시인 서울과 부산의 전직시장이 성추행과 관련하여 물러나거나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실시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지리멸렬하던 야당이 단일화 과정을 통하여 집권 여당과 제1 야당의 대결로 압축된 선거였습니다. 물론 군소정당들이 여전히 난립하여 들러리를 섰지만, 1%를 겨우 넘긴 후보가 하나였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정당정치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금의 정치상황은 500여년 전에 시작된 붕당정치와 흡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선조 무렵 출발한 붕당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로 구성된 정치집단인데 이들은 학문적 유대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동인 서인으로 나뉘었던 것이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 등으로 세분화되어갔고, 주도권을 두고 붕당 간에 살육을 벌이는 극한적인 상황까지 몰아갔습니다. 심지어는 왜국의 침입을 앞두고도 정세를 판단함에 있어 붕당 간에 견해가 엇갈리는 웃기지도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는 임진왜란의 치욕을 당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조선왕조의 붕당들이 호란의 치욕을 되갚으려는 효종의 발목을 잡은 것은 물론,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청나라에 반발하여 일어난 삼번의 난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휴의 개혁을 저지하고 결국은 죽음으로 모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올곧은 생각과 정책이 모두 지워지고 그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는 것입니다.


북벌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효종 재위시절에도 서인이 중심이 되어 겉으로는 북벌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북벌을 저지하려는 서인들의 끈질긴 방해가 있었고, 우암 송시열이 그 무리들을 이끌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인들은 조선은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조선의 왕이나 신하나 명나라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체계에서는 동급으로 생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던가요. 최근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송시열은 성리학자이며 공자와 맹자를 새롭게 해석한 주자를 계승하여 조선의 유학을 집대성한 주자학의 대가로 동양철학의 체계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정조 때는 성인을 의미하는 자() 칭호를 붙여 송자(宋子)라 칭했습니다. 반면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의 주인공 윤휴는 공자와 맹자에 대한 주자의 해석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조선 유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켜 종국에는 사문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주자의 해석을 존중했던 송시열과는 다른 학문적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자학자들이 사대부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백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던 것에 반하여, 늦게까지 재야에서 학문을 닦아온 윤휴는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사대부 집단의 반발로 완성시키지 못하곤 했습니다. 앞서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작금의 우리나라의 사회현상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의 저자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어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15)”라고 머리말을 마무리합니다. 어쩌면 작금의 우리 사회를 빗대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만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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