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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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욘 포세의 3부작>을 읽은 인연으로 고른 책입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노르웨이 출신 작가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으며, 특히 소설과 희곡 부문에서 주목받는 작품을 여럿 발표해서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분이라고 합니다.


<욘 포세의 3부작>3부작을 읽었지만, 충분히 소화내지 못했으면서도 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의지할 데 없어진 젊은이가 비정한 세상에서 삶을 도모하다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임신한 아내에게 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지만 그가 택한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싶습니다. 물론 작가는 구체적으로 이를 적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역시 선문답처럼 느껴진 작품입니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아침과 저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올라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입니다. 1부에서는 올라이의 아내 마르타가 요한네스를 낳는 순간을 묘사하고, 2부에서는 요한네스가 죽음을 맞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출생의 순간은 불과 21쪽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죽음의 순간은 무려 103쪽으로 묘사했습니다. 요한네스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은 분명하지만 탄생의 순간에는 요한네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올라이와 마르타가 주인공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를 해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아기는 자신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부에 들어서면, “요한네스는 잠에서 깨어나 뻣뻣하고 찌뿌듯한 몸으로 오래 거실 옆방의 커튼으로 가려놓은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라고 시작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요한네스가 올라이의 아들인지 아버지인지 조금 헷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 에르나와의 사이에서 일곱 아이를 가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올라이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날의 요한네스의 행적이 묘합니다. 여늬날처럼 아침을 먹고 마실을 나섭니다. 부두에서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 배를 타고 고기를 낚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요한네스는 주위가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뭔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그런 그를 번갯불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페테르가 저렇게 멀쩡히 snsdiv에 서 있다니, 페테르는 죽지 않아? 페테르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게 아니었나, 그렇지 않나?(68)”


이 구절에서 보면 마침표가 찍혀야 할 자리에 쉼표가 찍혀있습니다. 전작 <욘 포세의 3부작>에서 설명을 들은 것처럼 욘 포세는 마침표가 없으면 모든 텍스트는 사람들이 내적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모습을 담아낸 길고 긴 덩어리의 형식(263)”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열 번 남짓 마침표가 찍힌 대목들이 있습니다. 마침표가 찍힌 대목은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과 일상에 관한 대목들에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요한네스는 집을 찾아오는 딸 싱네와 마주쳤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쑥 통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페테르로부터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통보받습니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에서 흔히 만나는 피오르의 자연을 배경으로 바다와 바람, 비와 외딴집과 보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오랜 사물들이 사람보다 오래 머물며, 그들의 죽음과 삶을 담아내고, 흔적을 간직한다는 점을 알려주려 했다고 옮긴이는 전합니다. 욘 포세의 작품에서는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사실 아래,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열망을 동시에 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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