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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평점 :
시간여행은 영화나 연속극에서 자주 만나는 주제입니다. 언젠가 미래에 시간여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에서 조건을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나 미래로 여행할 경우 자신과 만나면 안 된다는 것. 동일인물이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조우하는 경우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지워질 수 있다고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사건에 개입하여 결과를 바꾸려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 그 뒤에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뒤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말입니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한 결과가 대기에 영향을 미쳐 미국에 거대한 용오름현상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여행자는 여행을 통하여 과거나 미래를 구경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쉽지가 않은 일일 듯합니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이 아니라 아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본인이 지금까지 지나온 일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면 잘못한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그 또한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바로 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담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러시아 작가 페테르 우스펜스키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쓴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입니다. 누군가가 사람의 삶을 여행이라고 비유했다고 합니다만, 그야말로 같은 장소를 두 번 여행하는 셈이 될 것 같습니다.
연전에 인기를 모았던 연속극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는 저승사자가 이승의 삶을 마친 사람들에게 현생에서의 기억을 지우는 차를 내주었습니다. 환생하면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살라는 뜻이겠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과거로의 여행은 일종의 환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거의 잘못을 바라 잡으려면 지금까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에서는 잠시 떨어져 지내던 연인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남자 주인공이 마법사의 도움을 얻어 과거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적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나는 그대가 원하는 만큼 과거의 시간대로 보내 줄 수 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할 수 있어.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른 결과를 얻지는 못할 거야.(39쪽)”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기숙학교에서 대충 지내다가 퇴학당했던 상황을 바로 잡으려 12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쁜 상황을 바로 잡을 틈이 없이 반복됩니다. 이미 기억해서 알고 있는 실수들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약하기만 한 인간의 본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이 ‘과거와 미래는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어. 우리가 그 둘을 과거와 미래라는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야. 사실 이 둘은 과거이면서 미래인거야.(89쪽)’라고 사뭇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갔던 일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버리고 마법사와 함께 진정한 앎을 찾아나가는 길을 걸을까도 생각해봅니다. 그 전에 연인이 있는 크림반도에 다녀올 생각도 합니다. 이야기에 나온 상황은 작가 자신이 기숙학교에서 낙서를 했다고 퇴학당했던 경험이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아무 것을 바꿀 수 없었던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과는 달리 <사랑의 블랙홀>은 반복되는 일상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아간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