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으나 읽을 때마다 소박한 듯 정제된 느낌을 얻습니다.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는 고인이 타계한지 10년을 앞두고 나온 수필집입니다. 선생님께서 생전에 쓰신 660편의 수필 가운데 35편의 글을 골라 묶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에 대하여 선생님의 맏딸이신 수필가 호원숙님은 어머님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어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젊은이들이 밝고 자유롭게 미래를 펼쳐가기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알 듯하다고 했습니다.


서른다섯 편의 글들은, 마음이 낸 길, 꿈을 꿀 희망,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사랑의 행로, 환하고도 슬픈 얼굴, 이왕이면 해피엔드 등의 여섯 가지 주제로 묶였습니다. 중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쉬운 글이라는 설명이 납득이 가는 글들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말을 골라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읽는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외래어도 이미 굳어진 것들은 그냥 사용했기 때문에 수월하게 읽히는 느낌입니다.


2004년에 발표한 <그 남자네 집; http://blog.naver.com/neuro412/221936043136>에서 선생님께서 보문동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보문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문동 집의 뒷이야기를 이 책에 적어놓으셨습니다. “조그만 한옥인 그 집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 집이 있는 좁은 골목은 한 쪽의 집들이 헐려서 큰 한길이 되어있었다. 골목 속에 다소곳이 있던 집이 아무런 단장도 안 하고 별안간 큰 한길로 나앉은 것은 어딘지 무참한 느낌을 주었다.(64)”


저도 예전에 살던 동네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살았던 집이 바로 이런 상황이되었습니다. 큰길에서 세 번째 집이었는데, 도로를 넓히면서 두집이 헐렸고, 제가 살던 집은 두 번째 집이 남은 부분과 합쳐서 새로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동네 분위기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문화집시라고 일컫는 J페페님은 자신의 옛집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개발 사업에 밀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이 기억하는 한 사라지자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흐려져 가는 기억을 붙들어 매둘 요량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면서 최근의 기억은 형편없이 희미해지는 반면 오래된 젊은 날의 기억은 변함없이 생생하고, 어린 날의 기억 중에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하셨는제, 제 경우는 그마저도 흐릿해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어머니보다 연배가 1년 정도 적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시골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도 선대와 비교하여 그리 나을 것이 없던 시절인지라, 저의 어렸을 적 생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등장하는 그런 부분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는 6.25동란이 휴전협정으로 끝난 뒤에 태어난 탓에 전란의 어수선함은 겪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들께서는 전후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시느라 고초가 심하셨지만, 그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오늘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그런 고생마저도 겪지 않은 천운을 타고 났지만, 그마저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하고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일을 요즈음 일과 비교하는 일은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지하고 혼자서 새겨보는 일까지 그만 둘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만났던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 다 읽고 나서도 이야기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던 바 있습니다만. <시대의 소음>은 그보다도 더한 책읽기였습니다. 우선 서두에 나오는 길지 않은 글에 등장하는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 마시는 자 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모스크바를 떠나 동쪽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만난 것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층계참에서, 비행기에서 그리고 차안에서라는 제목으로 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제목도 없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주인공인 듯싶은 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라는데, 이야기가 한참 흘러가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와서야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관한 이야기구나 싶습니다. ‘층계참에서라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는 작은 여행 가방을 챙겨서 승강기 옆에서 밤을 보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오밤중에 사람을 데리러 오는데, 잠옷바람으로 가끌려가는 비참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기가 싫어서였다는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처럼 비참한 처지가 된 것은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초연에 온 스탈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데다가, 프라우다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제목으로 비난하는 논조의 평을 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곡가는 소비에트 관객이 음악에서 무엇을 구하고 기대하는가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 소비에트 음악에 이러한 경향이 미칠 위험은 명백하다. () 이렇게 교활한 재주로 장난치는 행위는 끝이 대단히 안 좋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정도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했던가요? 쇼스타코비치가 초연하게 죽음을 맞으려 한 까닭인지 막상 쇼스타코비치에게 심각한 위기상황은 닥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서방에서 유명해진 탓에 그를 함부로 처리할 수 없었거나 대외적으로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스탈린이 먼저 죽었습니다. 후루쇼프가 권력을 쥐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쇼스타코비치를 중용하기에 이릅니다. 러시아연방 작곡가 조합의 의장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물론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지만 소비에트에서 개인의 뜻이 반영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반스가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시대의 소음이란 억압과 부조리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추구했던 음악이 바로 시대의 소음을 지우는 그것이었다는 점이 뒷부분에서 나옵니다.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181)”라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 마시는 자에 관한 속담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의사들이 뭐라고 충고하건 술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듣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기억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속담에서 이야기하는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 마시는 자라는 존재는 한 사람 안에 들어있는 세 가지 형태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모든 것을 기억했지만 그것들은 종종 그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에 덮이고 뒤엉켜, 그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서방으로의 망명을 유혹받기도 했지만, 그는 소련의 국가정책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아가 이를 외부에 선전하고 홍보하는 모습까지 보였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창작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가면을 썼던 것이라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과민대장증후군 - 개정판, 오랜 시간 괴롭히는 설사, 화장실 가기 두려운 변비, 사회생활을 힘들게 하는 가스와 복통
이진원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나이가 들면서 허리도 아프고 무릎이 쑤시기도 합니다. 병원에 가보아도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바뀌는 삶의 환경에 맞추어가느라고 여기저기 삐걱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기계도 오래되면 닳고 망가지는 것처럼 평생을 사용해온 신체기관이 이제는 쓸 만큼 썼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의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병원에 온 환자들은 의사들이 병명을 콕 짚어 정하고 치료법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게다가 우리 몸에 얹혀사는 미생물도 120조에서 500조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가히 소우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체물리학이 발전함에 따라 우주를 구성하는 별과 행성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우주의 신비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소우주라 할 인체의 신비도 풀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과민성 장증후군도 풀어야 할 비밀이 많은, 아직은 질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증상입니다. 복부팽만감, 복통, 복부 불쾌감, 헛배부름, 잦은 트림 등이 주된 증상인데, 소화불량, 가슴 쓰림, 구역질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최근 3개월간 3일 이상 복통이나 복부불쾌감이 있으면서 1. 배변횟수가 변하거나, 2. 변의 형태가 달라지거나, 3. 변을 보고나면 증상이 완화되는 등의 3가지 가운데 2개 이상이 있으면 일단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의심해볼만하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종양이나 감염 등이 있는 경우도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원인이 분명한 질환들을 제외해가다 보면 남는 것이 과민성 장증후군입니다. 현재로서는 심리적 요인 등으로 장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가 보이는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물치료를 비롯하여 장운동을 자극하는 음식을 피하도록 하는 등의 대증요법을 적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환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참고할만한 정보도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굿바이 과민대장증후군>은 과민성 장증후군이라고 진단받은 환자들이 참고할만한 책입니다. 지금까지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과민성 장증후군의 원인과 진단, 치료법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저자가 미국 휴스턴에 있는 엠디 앤더슨 병원에서 통합의학과정을 수료했다고는 하지만 한의학을 전공하신 한의사라는 점이 걸립니다. 엠디 앤더슨 병원의 통합의학과정의 교과과정은 얼핏 보기에는 심신의학, , 생약 등 주류의학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영역을 현대의학에 접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과정을 이수하고 돌아와 진료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의료 환경이 우리나라와 미국은 차이가 있어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굿바이 과민대장증후군>으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의 현대의학의 영역에서 연구 발전시킨 내용이며, 저자의 전공분야인 한의학에 관한 부분은 그럼 한의원에서 치료는 어떻게 다를가?”라는 소제목으로 된 8쪽 분량이 전부입니다. 과민성 장증후군에 대한 원인과 진단과 치료에 관한 내용의 대부분을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고는 약을 먹어도 증상이 바로 낫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이에 영향을 받아 치료율도 떨어지게 됩니다.(155)”라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한의학적 치료효과 역시 서서히 나타난다고 하고, 과민성 장증후군이 심리 영향을 많이 받는 질환이라고 부연설명하면서 말입니다. 과민성 장증후군의 차료에 있어서 한의학적 접근에 대한 설명을 들여다보면 아직 밝혀지지 못했지만~’이라는 단서 아래 개선 효과는 괜찮은 편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넘기고 있습니다.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진단하려면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감염이나 종양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제외해야 하는데, 한의학 영역의 진단술기로는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므로 병원이나 의원 등 의과 진료를 통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전에 이집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부심벨에서 본 람세스2세의 신전은 무려 3천 년 전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에 왕국이 성립한 것은 무려 5천년이라고 하는데, 그 무렵 동아시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운 것이 기원전 2333년이라고 하니 이집트왕국에 못지않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셈입니다.


신화로만 알고 있던 고조선은 평양부근에 있는 미송리에서 발굴된 민무니 토기와 랴오닝 성에서 발굴된 비파형동검 등을 통하여 요동반도와 한반도 일대를 강역으로 실재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집트처럼 대규모의 건축물이이나 기록으로 남겨진 바가 없어 아쉽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어 철저하게 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고학을 전공하신 강인욱 교수님의 <테라 인코그니타>는 시의적절해보입니다. 모두에도 적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19세기 말부터 시작한 근대화 과정에서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가 문명의 변경에 있다고 비하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이런 인식은 한반도의 작은 역사를 인정하고 강대국의 문명을 부러워하는 패배주의나, 반대로 우리도 과거에 거대한 영토를 가졌다는 식의 사이비 역사학에 근거한 폐쇄적 민족주의로 나타났다(6)’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인식을 바로 잡아보려는 생각에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미지의 땅혹은 미개척의 영역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프톨레아미오스가 <지리학교정(Geographike Hyphegesis)>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테라 인코그니타>는 모두 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미개하다고 치부되었던 유라시아와 신대륙에서 부침한 민족들의 역사를 조명했습니다. 2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합니다. 3부는 고대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각을 다루었습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 역시 왜곡된 시각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4부는 중국은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 등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고대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저자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위축된 역사인식을 버리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다자간 연결고리로 재편되는 21세기 국제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역사적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사를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대유물을 합리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재해석이라함은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설명을 말하는 것이라면, 제가 저자와는 달리 생각하는 부분을 짚어보려 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시왕은 북쪽에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 저자는 진나라는 대대적으로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중국 북방의 초원 유목민족을 압박했고, 그 결과 일부는 중국에 동화되고 또 일부는 사방으로 흩어졌다.(169)’라고 적었습니다. 시왕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유목민족을 압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목민족의 침입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초반에는 유목민족과 정략결혼을 통해 화친을 강화하다가, 유목민족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정벌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자신을 칭하는 방식 때문에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보통 필자는이라고 적곤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나는’, ‘내가등으로 적다가 마치는 글에서는 저는이라고 적었습니다. 어떤 쪽이든 일치를 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랄프 이자우는 <비밀의 도서관>에서 누군가 써보려는 생각을 한 책도 모아두는 신비로운 도서관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책으로 발표되지 않은 책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르지오 반 스트라텐은 <사라진 책들; http://blog.naver.com/neuro412/221723888629>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사라진 원고에 관한 이야기를 담기도 했습니다.


<128호의 원고>는 반쯤 쓴 책의 원고가 작가의 실수로 잃어버렸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마저 완성하여 사람들의 손을 전전하면서 읽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읽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놓기까지 했다는 내용입니다. <128호의 원고>는 잃어버린 원고의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작가와 이야기를 완성한 작가를 찾는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그것도 등장인물들 사이에 오간 편지로만 구성된 책입니다. 편지로 책을 구성할 수 있다는 발상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작가가 그런 장면을 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만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편지로 소개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반도의 끝, 피니스테르 주의 이루아즈 바닷가에 있는 보리바주 호텔 128호에서 이야기의 원고를 발견한 주인공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이야기를 처음 쓴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낸 2016425일자 편지로 시작합니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오간 편지를 이어간다고 하면, 보낸 편지에 답장을 이어가는 방식을 흔히 생각합니다만, <128호의 원고>의 작가는 단순하게 2016425일 이후에 등장인물 사이에 오간 편지들이 발송된 날자 기준으로 뒤섞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이 흐트러짐이 없어서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절반만 인쇄된 책을 찾아 유럽과 미주를 오가는 이야기는 기욤 뮈소의 소설 <종이여자>에서도 이미 읽은 바가 있습니다만, <128호의 원고>에서도 주인공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프랑스 안에서, 벨기에로, 런던으로 그리고 캐나다로 바삐 오가고 있습니다. 물론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전체의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등장인물들 모두 한몫씩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책의 전반부를 쓴 작가는 198343일 몬트리올을 여행하다 잃어버린 원고가 몬트리올에서 프랑스의 샹파뉴를 오갔다가 남프랑스의 몽펠리에로 옮겨졌다가 영국의 런던으로, 런던에서 벨기에의 홀덴베르흐로, 이곳에서 프랑스 서쪽 끝, 로스코프 해변으로 흘러들었다가 드디어 주인을 만났던 것인데, 그 과정 어디쯤 새로운 작가가 원고를 완성했는지도 풀어야 할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그해 1231일에 적은 글로 마무리가 됩니다.


책의 앞장에는 원고가 흘러 다닌 경로를 표시한 지도가 있고, 차례 뒤에는 등장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등장인물 소개를 읽어보면 안느와 안느의 친구 마기가 원고를 가졌던 사람들을 거꾸로 뒤쫓아가는 순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책 원고를 어떻게 손에 넣었고, 그 원고를 어떻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어서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다 보니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우연도 적지 않다는 생각입니다만, 이야기의 맥락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서한문 형식에서 제가 몰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편지를 완성한 다음에 빠트린 이야기를 추신(P.S., postscript)으로 붙이는 것은 알았습니다만, 그 뒤에 다시 덧붙이는 글을 P.P.S라고 하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post postscript라고 하는데, 추추신이라고 해야 하나요? 또한 편지 끝에 친근한 인사의 표시로 OXOX, XXX 등을 붙이기도 한다는 것도 처음 배웠습니다. X는 키스를 O는 포옹을 의미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나저나 책 속의 책의 원고를 쓴 두 작가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책 속의 책은 무슨 이야기를 담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알 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