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 지혜로운 부모는 게임에서 아이의 미래를 본다
이장주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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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전산기에 놀이가 깔려있던 옛날에는 여유시간에 전산기에 깔려있는 놀이를 즐기곤 했습니다. 가끔은 놀이에 빠져 업무처리가 늦어지는(?) 일도 없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기분전환한다고 시작한 놀이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전력(?)이 있는 까닭에 아이들이 전산기나 똑똑 전화로 놀이를 하는 것을 지나치게 규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화사회심리학을 전공하신 이장주 박사님의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읽으면서 전산기 놀이의 초기세대였던 저를 돌아보고, 제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전산기 놀이를 즐기던 시절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여가시간에 동무들하고 자치기나 구슬치기를 즐겼습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가 보면 공부는 물론 밥 먹을 때를 놓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전산놀이 역시 여가시간을 즐기는 혹은 긴장을 푸는 놀이로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장주 박사님의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읽다보면 전산기 놀이가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으며,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꾸어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먹고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전산 놀이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전산놀이가 그저 놀이에 머물지 않고 다른 분야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혁신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산놀이에 깊숙하게 빠져들지 못한 부모세대이지만, 아이들만큼은 새로운 경향을 잘 파악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서문에 크게 4부로 된 이 책의 구성을 이렇게 설명해놓았습니다. 1부는 전산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설명해놓았습니다. 물론 전산놀이에 빠진 아이들과의 전쟁(?, 대부분의 부모들은 전산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을 승리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아이들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나서는 패배를 자인할 수도 있겠습니다.


2부는 전산놀이가 이제는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전산놀이를 잘 할 뿐만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상의 대우가 보장이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먹고사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부는 아이들의 전산놀이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전산놀이에 대한 부모세대의 우려가 편견의 소산임을 알게 해주니다. 4부는 전산놀이를 즐기는 아이를 둔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웠던 옛날 방식은 이미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아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세태입니다.


저자는 사회심리학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연구 성과들을 전산놀이와 관련한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금지를 통한 동기화에 주목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산놀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오른 것은 국토가 좁아 누리망을 촘촘하게 깔아놓은 구조적 요인에 더하여 대부분의 부모들이 전산놀이를 통제했던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Try to remember’라는 주제가로 유명한 <판타스틱>이라는 가무극(musical)이 바로 금지를 통한 동기화를 잘 설명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웃하여 살던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장성하자 부모들은 두 아이를 맺어주기 위하여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 작전을 짜게 됩니다. 작전은 성공하여 두 아이들이 사랑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들의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헤어져 세상을 떠돌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이 다시 진정한 사랑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산놀이 세대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그런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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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예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준미 옮김 / 하늘연못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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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책읽기 화두에는 여행도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을 고른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수필집으로 알았습니다만, 제목 아래 있는 카프카 소설이라는 대목과 일러두기에 있는 이 책은 위르겐 보른이 편집한 카프라 소설집 <포세이돈 그리고 다른 짧은 이야기들>을 완역한 것입니다.’라는 대목에서 소설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인지, 수필인지, 형식에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허구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보면 소설이 맞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쪽에 불과한 것들도 소설이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폐간되었습니다만, 대학시절 월간으로 나오던 학보에 엽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짧은 소설이 실렸던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엽편소설(葉篇小說)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 분량으로 단편소설보다 짧은 소설입니다. 분량을 나뭇잎에 빗대 엽편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손바닥에 비유해 장편소설(掌編小說)이라고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미니픽션(minifiction) 혹은, 똑똑전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해서 스마트 소설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한 듯합니다. 분량으로 보면 프랑스어로는 콩트(conte)와 비슷하지만, 극적인 반전에 치중하려는 콩토보다는 문학적 깊이가 담긴다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축약하면서도 촌철살인의 기지를 담으려면 심오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인지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은 의외로 어려웠습니다. 작가 자신은 나의 글은 조잡하기 짝이 없으며 동시에 무의미하다라고 겸양을 떨었습니다만, 작가가 글에 담은 생각을 읽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마도 카프카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자 예찬>의 이야기들은 엽편소설의 범주와 단편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모두 44편의 이야기들이 여덟 무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무리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글 제목 가운데는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들이 단 것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번역서의 표제작이기도 한 여행자 예찬은 한쪽 분량에 불과합니다. 열차 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한쪽 분량의 이야기가 한 문장으로 구성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지만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 열차가 출발할 때 몸이 잡아채어진 느낌이 기억난다는 이야기,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간절하게 대한다는 이야기, 창문을 통해 보는 매력적인 풍경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도, 여행이 아주 가볍게 생겨나고 출발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잊고 있었고, 더 심한 것은 자신들이 잊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마무리입니다.


저는 작가가 장삼이사들의 삶을 열차 여행에 비유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출생의 충격을 기억해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만, 삶이 어느 날 툭 떨어진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원저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작품 포세이돈도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수많은 보조원을 데리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와 하천과 호수를 관리하는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직무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직무를 불만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멸망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젊은이의 불행한 사건과 관련하여 상인이라는 이야기에 담긴 내용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상인이 집에 도착해서 승강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지금 갑자기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승강기 유리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다가 날아가 버려라. 나는 결코 본 적이 없었던 너희의 날개가 너희를 서골의 골짜기로, 아니면 파리로 데려다 줄지도 물라, 너희가 거기까지 갈 수만 있다면.’(1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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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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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내려오는 3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1. 노인이 죽어야지!’하는 말, 2. 처녀가 시집 안간다!’라고 하는 말, 3.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초연하게 죽음을 맞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닙니다만, 잡아놓은 죽을 날을 초연하게 기다리는 사람의 생각을 읽었습니다. 일본 작가 사노 요코씨입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려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70살이 되던 해에 두개골로 전이된 상태로 재발을 했습니다. 주치의는 여명이 2년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리하여 사노씨는 남아있는 2년의 기간에 맞추어 삶을 정리하기로 했답니다. 문제는 2년이 되어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장 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죽는 게 뭐라고>는 유방암이 재발된 다음의 삶을 정리한 것입니다. 투병과정이라기보다는 죽음을 맞는 과정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죽는 게 뭐라고>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죽음에 대한 요코씨의 생각을 담은 죽는 게 뭐라고입니다. 이어서 방사선종양학을 전공하는 히라이 다쓰오 박사와의 대담을 담은 내가 죽고 내 세계가 죽어도 소란을 피우지 말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을 담은 내가 몰랐던 것들입니다.


요코씨는 어렸을 적에 여동생과 오빠의 죽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도. 일찍이 죽음을 마주한 까닭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유방암이 재발했을 때 여명이 2년 정도 될 것이라는 주치의의 말에 따라서 삶의 시계바늘을 2년으로 맞추로 살았던 것인데, 2년이 지나도록 죽음이 다가올 기척이 보이지 않아 당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유자금이 바닥나가고 있었던 것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에게 여명을 알려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씨는 주치의를 비롯한 의사들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관한 감상에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낌이 있었습니다. ‘, 그녀(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부모, 자식, 형제 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답니다.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은 아니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1인칭의 죽음, 나의 죽음은 아무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결국 나의 죽음은 혼자서 결정하고 겪어야 할 일인 셈입니다.


그런데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을 어떨까요? 3인칭으로 볼 수도 없고, 2인칭으로 볼 수도 없으니, 2.5인칭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였습니다자신을 치료하는 주치의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병을 치료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의 웃는 얼굴을 위해서 건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는 요코씨는 의사는 성직자다라고 믿는 분입니다. 한편으로는 교사도 성직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일교조가 등장하면서 이본의 교육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참교육을 내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바꾸고자 했던 선배들의 행태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교육도 전교조가 등장하면서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죽음을 초연하게 맞을 수 있다는 요코씨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세부사항에서는 다소 생각이 다른 점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죽음은 1인칭의 사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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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본 살인사건 스코틀랜드 책방
페이지 셸턴 지음, 이수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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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이야기, 게다가 스코틀랜드가 무대라는 이유로 고른 책입니다. ‘뜯어진 책등정도의 의미가 담긴 <The cracked spine>보다는 <희귀본 살인사건>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이야기 줄거리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직장을 옮기거나 심지어는 직종을 바꾸는 일도 수월하게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생전 가보지 못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새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싶습니다. 제목을 보면 셜록 홈즈나 포아르 탐정이 등장해서 범인을 추적하는 그런 줄거리가 연상됩니다. 하지만 <희귀본 살인사건>은 탐정 근처에도 못 가본 젊은 여성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그런 이야기라서 약간 무모하다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딜레이니는 미국 캔자스 주 시골농장 출신입니다. 캔자스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는데,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위치타의 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재정문제로 감원해야 하는 박물관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누리망을 뒤지다가 에든버리에 있는 ‘The cracked spine’이라는 서점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했다가 갑자기 취직이 결정되어 근무를 시작합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책방 주인의 여동생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 초판 2절본의 행방과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강력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역할이 너무 드러나지 않아서 강력사건을 다룬 다른 소설들과는 맥이 다른 점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책벌레 딜레이니가 박물관에 근무하면서 몸에 밴 특별한 능력치가 사건 해결에 기여한다는 설정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보다는 딜레이니가 근무하게 된 ‘The cracked spine’이라는 서점을 중심으로 에든버러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점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년 전에 여행을 할 때는 늦게 도착해서 야간관광을 하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로열마일을 거쳐 에든버러 성을 구경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에든버러의 속살을 제대로 엿볼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희귀본 살인사건>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책읽기였던 것입니다.


우선 로열마일을 따라 나 있는 에든버러의 구시가가 도시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구시가 아래는 지하에 골과 굴들이 미로처럼 엉켜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골은 일종의 골목인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아주 좁은 골목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옮긴이가 우리말을 아주 적절하게 끌어다가 에든버러의 분위기를 잘 맞춘 것 같습니다. 지도를 찾아보니 ‘The cracked spine’이 있는 grassmarket은 로열마일의 바로 남쪽에 있는 거리였습니다. 에든버러는 책들의 수도 같은 곳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시내에만 서점이 50군데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The cracked spine’이란 서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딜레이니를 고용한 ‘The cracked spine’의 주인 애드윈 매컬리스터는 에든버러의 유서깊은 가문의 일원이고 다양한 유물을 거래하는 모임, ‘살코기 시장 묶음의 일원입니다. 일종의 희귀한 물건을 거래하는 비밀결사와 같은 모임 같습니다. 살인사건의 원인이 된 셰익스피어 2절 초판본은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집으로 1600년대 초반에 발간된 것으로 약 200부가 남아있는데, 대부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희귀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2절 초판본은 세상에 나오는 과정도 음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령이 많다는 스코틀랜드라서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든 스코틀랜드와 에든버러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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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송전차
호리에 도시유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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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전철역 승강장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다보면, ‘이번 열차는 우리 역에 서지 않는 열차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규편성 열차가 아니라 어느 역에선가 출발하도록 배치되어 가거나, 아니면 운행이 끝나고 종점으로 돌아가는 열차입니다. 그런 열차를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했는데, 그 답을 <회송전차>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까지는 정차하지 않고 달리기 때문에 급행열차보다도 더 특별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다만 탈 수 없다는 것이 한계입니다만....


사실 승강장에서도 서지 않고 지나치는 전차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차단기가 내려진 건널목에서 승객을 태우지 않은 회송열차가 지나가면 더 괘씸하다는 것이 <회송전차>를 쓴 호리에 도시유키교수의 생각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동경심 나아가 동포의식까지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작가적 시각에서 느끼는 특별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평론이나 소설, 에세이 등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산문의 호흡을 즐기는 작가의 이상이 더부살이 같은 회송전차와 닮았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작가가 발표한 책들은 대체로 특정 영역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어중간하다는 것입니다.


산문집 <회송전차>의 서문 격인 회송전차 주의선언에서 이런 견해를 표명했습니다만, 1, 외로움에 대하여, 2. 고양이가 있는 풍경, 3. 오렌지의 빛 등의 제목 아래 나누어 놓은 44편의 산문을 읽어가면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글 꼭지를 끌어내어 다양한 소재를 버무려 한편의 산문을 뚝딱 완성해놓았습니다. 소재도 전국구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이고, 도대체 처음 알게 되는 사실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비롯하여 일본의 유수한 문학상을 두루 받은 사실만으로도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3대학에 유학하였다고 하니 불문학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글 꼭지를 풀어가면서 문학 말고도 불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소개하는 문학작품들 가운데 초면인 작품들도 적지 않은데, 일본에도 번역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원본을 읽어 소개하고 있으니, 평소에 불문학에 쏟는 작가의 노력의 크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탁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 삶은 계란에서는 소위 핑퐁외교라고 해서 탁구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던 이야기까지 끌어왔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탁구이야기를 징검다리로 해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데, 제목을 밝히지 않아서 어떤 영화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반체제 시인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장래를 약속한 여자가 옥바라지를 열심히 했지만, 출옥한 뒤에 이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옛날에는 이런 종류의 눈물 쏟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누리망을 뒤져도 쉽게 제목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 보면 <회송전차>를 쓴 호시에 도시유키교수 역시 일찍이 한류에 눈을 떴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처럼 우한폐렴으로 어디로든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작가가 추천하는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펼치고, 페이지 위에서 재현되는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 이른 아침이든 깊은 밤이든, 맑은 날이든 비 내리는 날이든 상관없다 사람들은 곧장 페리지 속으로 뛰어 들어가 화자의 손에 이끌려 온갖 시공을 여행한다. 독서란 신분증명서를 필요로 하지 않은 유일한 형태의 여행이다.(91)”


작가가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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