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예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준미 옮김 / 하늘연못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저의 책읽기 화두에는 여행도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을 고른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수필집으로 알았습니다만, 제목 아래 있는 카프카 소설이라는 대목과 일러두기에 있는 이 책은 위르겐 보른이 편집한 카프라 소설집 <포세이돈 그리고 다른 짧은 이야기들>을 완역한 것입니다.’라는 대목에서 소설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인지, 수필인지, 형식에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허구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보면 소설이 맞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쪽에 불과한 것들도 소설이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폐간되었습니다만, 대학시절 월간으로 나오던 학보에 엽편소설이라는 형식의 짧은 소설이 실렸던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엽편소설(葉篇小說)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 분량으로 단편소설보다 짧은 소설입니다. 분량을 나뭇잎에 빗대 엽편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손바닥에 비유해 장편소설(掌編小說)이라고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미니픽션(minifiction) 혹은, 똑똑전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해서 스마트 소설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한 듯합니다. 분량으로 보면 프랑스어로는 콩트(conte)와 비슷하지만, 극적인 반전에 치중하려는 콩토보다는 문학적 깊이가 담긴다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축약하면서도 촌철살인의 기지를 담으려면 심오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인지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은 의외로 어려웠습니다. 작가 자신은 나의 글은 조잡하기 짝이 없으며 동시에 무의미하다라고 겸양을 떨었습니다만, 작가가 글에 담은 생각을 읽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마도 카프카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자 예찬>의 이야기들은 엽편소설의 범주와 단편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모두 44편의 이야기들이 여덟 무리로 나뉘어 있습니다. 무리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글 제목 가운데는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들이 단 것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번역서의 표제작이기도 한 여행자 예찬은 한쪽 분량에 불과합니다. 열차 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한쪽 분량의 이야기가 한 문장으로 구성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지만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 열차가 출발할 때 몸이 잡아채어진 느낌이 기억난다는 이야기,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간절하게 대한다는 이야기, 창문을 통해 보는 매력적인 풍경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도, 여행이 아주 가볍게 생겨나고 출발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잊고 있었고, 더 심한 것은 자신들이 잊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마무리입니다.


저는 작가가 장삼이사들의 삶을 열차 여행에 비유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출생의 충격을 기억해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만, 삶이 어느 날 툭 떨어진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원저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작품 포세이돈도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수많은 보조원을 데리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와 하천과 호수를 관리하는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직무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직무를 불만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멸망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젊은이의 불행한 사건과 관련하여 상인이라는 이야기에 담긴 내용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상인이 집에 도착해서 승강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지금 갑자기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승강기 유리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다가 날아가 버려라. 나는 결코 본 적이 없었던 너희의 날개가 너희를 서골의 골짜기로, 아니면 파리로 데려다 줄지도 물라, 너희가 거기까지 갈 수만 있다면.’(1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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