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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송전차
호리에 도시유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지하철이나 전철역 승강장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다보면, ‘이번 열차는 우리 역에 서지 않는 열차’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규편성 열차가 아니라 어느 역에선가 출발하도록 배치되어 가거나, 아니면 운행이 끝나고 종점으로 돌아가는 열차입니다. 그런 열차를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했는데, 그 답을 <회송전차>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까지는 정차하지 않고 달리기 때문에 급행열차보다도 더 특별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다만 탈 수 없다는 것이 한계입니다만....
사실 승강장에서도 서지 않고 지나치는 전차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차단기가 내려진 건널목에서 승객을 태우지 않은 회송열차가 지나가면 더 괘씸하다는 것이 <회송전차>를 쓴 호리에 도시유키교수의 생각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동경심 나아가 동포의식까지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작가적 시각에서 느끼는 특별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평론이나 소설, 에세이 등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산문의 호흡을 즐기는 작가의 이상이 더부살이 같은 회송전차와 닮았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작가가 발표한 책들은 대체로 특정 영역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어중간하다는 것입니다.
산문집 <회송전차>의 서문 격인 ‘회송전차 주의선언’에서 이런 견해를 표명했습니다만, 1, 외로움에 대하여, 2. 고양이가 있는 풍경, 3. 오렌지의 빛 등의 제목 아래 나누어 놓은 44편의 산문을 읽어가면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글 꼭지를 끌어내어 다양한 소재를 버무려 한편의 산문을 뚝딱 완성해놓았습니다. 소재도 전국구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이고, 도대체 처음 알게 되는 사실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쿠타가와 상을 비롯하여 일본의 유수한 문학상을 두루 받은 사실만으로도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와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3대학에 유학하였다고 하니 불문학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글 꼭지를 풀어가면서 문학 말고도 불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소개하는 문학작품들 가운데 초면인 작품들도 적지 않은데, 일본에도 번역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원본을 읽어 소개하고 있으니, 평소에 불문학에 쏟는 작가의 노력의 크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탁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 ‘삶은 계란’에서는 소위 핑퐁외교라고 해서 탁구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던 이야기까지 끌어왔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탁구이야기를 징검다리로 해서 한국영화를 소개하는데, 제목을 밝히지 않아서 어떤 영화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반체제 시인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장래를 약속한 여자가 옥바라지를 열심히 했지만, 출옥한 뒤에 이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옛날에는 이런 종류의 눈물 쏟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누리망을 뒤져도 쉽게 제목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 보면 <회송전차>를 쓴 호시에 도시유키교수 역시 일찍이 한류에 눈을 떴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처럼 우한폐렴으로 어디로든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작가가 추천하는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펼치고, 페이지 위에서 재현되는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 이른 아침이든 깊은 밤이든, 맑은 날이든 비 내리는 날이든 상관없다 사람들은 곧장 페리지 속으로 뛰어 들어가 화자의 손에 이끌려 온갖 시공을 여행한다. 독서란 신분증명서를 필요로 하지 않은 유일한 형태의 여행이다.(91쪽)”
작가가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