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탐사보도를 해온 일본의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씨의 다양한 글 가운데 여행에 얽힌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다양한 생각을 기록한 글들이기에 사색 기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중국 북경에 가서 뭔가를 도모한 아버지 덕분에 한 살 때부터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떠났다니 작가도 대단한 역마살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작가는 어느 정도 큰 나라의 대부분은 가보았다고 하는데, 여행한 거리가 지구를  바퀴 돌 정도라고 하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배우기 위한 목적의 여행이었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취재여행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인식은 여행에서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서론에서는 자신의 여행에 얽힌 사연들을 개괄하였습니다. 특히 40년생인 작가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일본 역시 허가를 받아야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반핵운동을 기획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반핵운동가들과 연대를 꾀하는 진취적인 면모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대양주를 제외한 5개 대륙을 여행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1부 무인도의 사색, 2부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여행, 3부 기독교 예술 여행, 4부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 5부 팔레스타인 보고, 6부 뉴욕연구 등으로 구분된 모두 14꼭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특히 2부에서는 포도주와 치즈의 본고장 유럽을 여행하면서 포도주와 치즈에 관한 고급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글입니다.

 

3부는 기독교와 관련된 글인데 그리스의 아토스반도와 남아메리카의 이구아수폭포를 찾았을 때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짧은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4부는 대학에 다닐 적에 유럽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핵의 위험을 알린 것은 일본이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맞아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피폭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 해서 유럽사람들에게 반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작가 개인의 삶에서 커다란 변곡점이 되는 여행이었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는 생각보다 뉴욕이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987년의 뉴육에서 에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별도의 장으로 구성했는데,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잘 기록하였습니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확인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이고,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약제가 개발되기 전으로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충분히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글을 읽고서 크게 느낀 점은 첫째 편견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정부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을 여행했으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취재하여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한 주제에 관한 자료를 심도 깊게 조사하여 글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글로 남기기 않은 여행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여행이나 마음잡고 쓰려고 들면 글로 쏟아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매듭짓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애초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다녀온 여행은 모두 글로 정리한다는 저의 기본 원칙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62쪽)”라는 대목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자가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 선술집이라는 데가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러 막걸리 한 대접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장소로 기억합니다. 가수 이연실이 1981년에 목로주점을 발표했을 때는 그런 술집도 있나 싶었습니다. 목로주점이란 술집의 대명사는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하여 쓰는,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이라는 목로를 가져다 붙인 것이니 선술집에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흙바람 벽에 30촉 백열등이 흔들리는 허름한 술집에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커다란 술잔을 부딪히면서 산에 오르고 사막에 갈 꿈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노래하는 낭만이 담겼습니다.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낭만적인 목로주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말미에 붙은 해설을 보면 이 책의 원제는 <아쏘무아르(L’Assommoir)>입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쏘무아르는 당시 파리의 벨빌에 있던 선술집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이라는 의미로 통했다고 합니다. <목로주점>에 나오는 콜롱보(비둘기라는 의미) 영감의 선술집이 바로 아쏘무아르의 전형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목로주점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비극성과 모순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역설적인 대비해보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가 1870년부터 1893년 사이에 펴낸 스무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하나입니다. 스물두 살에 남편을 따라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제르베르의 20여년에 걸친 삶을 기록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받은 700프랑을 쥐고 파리로 온 남편 랑티에는 정착해서 살아갈 궁리보다는 흥청망청 돈을 써대다가 나중에는 가져온 것들을 저당 잡히면서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놀아나다가 결국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함석공 쿠포에 결혼한 제르베르는 세탁부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자신의 세탁소를 차리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사이에 대장장이 구제와의 순수한 사랑도 위안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불행은 예정된 과정을 밟아가는 모양입니다.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지경에서 살아남으면서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고, 랑티에 마저 돌아와 쿠포와 한 통속이 되면서 제르베르의 리즈시설이 끝나게 됩니다. 리즈 역시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가진 것을 까먹는 재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예정된 운명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결국 쿠포와 제르베르는 목로주점의 싸구려 독주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쿠포는 먼저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제르베르와 형제들이 장례를 치렀지만, 제르베르의 경우는 곤궁한 은신처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제르베르가 랑티에에게 반하여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을 모른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쿠포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 뒤에 열심히 돈을 모아 세탁소를 열고, 세탁소가 동네 사랑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올곧은 그녀의 성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정점에서 절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더구나 랑티에를 받아들여 한 집에서 살게 한 것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전남편을 집에 들일 수 있을까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말로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점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제르베르의 경우도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도로 알코올 의존증의 증세를 보였습니다만 쿠포의 경우는 더욱 심한 지경으로 난폭함, 기억력 감퇴, 환각 등 치매의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술도 절제하지 않으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리철학논고 / 철학탐구 / 반철학적 단장 동서문화사 월드북 92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김양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분명 어느 책을 읽다가 찜해두었던 것 같은데, 오래된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읽어본 적지 않은 책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읽기였습니다. 심지어는 말미에 붙은 해설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책은 아마도, 여기에 표현된 사상 내지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스스로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31)”라는 구절로 머리말을 열었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이 쓴 이 책에 대한 해설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11)”라고 적혀있습니다. 설마 했던 것이지만, 저는 이 책에 담긴 주제를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모두에 적은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사항들의 총체이다.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세계는 사실을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실 전부라는 점을 통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사실의 총체는 무엇이 성립되어 있는지를 규정하고, 또 무엇이 성립되지 않았는지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논리공간 안에 있는 사실이 곧 세계이다. 세계는 사실로 분해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성립되거나 성립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래도 있을 수 있다.(33)”라는 구절이 저자가 논리철학논고에서 입증하려는 바였나 봅니다.


책읽기를 시작하자 이내 곤혹스러운 상태에 빠진 이유는 명제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전개되다가 기호와 함수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는 함수가 아닌 정의가 분명치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논리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계산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명제가 논리학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그 상징의 논리학적 특성을 계산함으로써 알 수 있다.(103)”면서 말입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논리철학논고을 마무리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114)”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저자는 글을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다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읽어가다 보면 전후 맥락의 연결이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철학이나 논리학에 대한 저의 앎이 태부족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철학탐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탐구에서는 제가 오래전에 수필에서 적었던 견월망지에 관하여 생각할 때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35항의 물론 모양을 가리키기 위한 특정적인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145)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누리방에서 찾은 능엄경과 능가경에 나오는 견월망지에 대한 자료를 비롯하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달을 볼 수 있다.”는 잠언도 기억할만합니다.


세 번째 반철학적 단장(反哲學的 斷章)은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유고 가운데 철학적 문장을 골라 엮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야 좋은가를 잘 모르는 것은 아직 명석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철학 관계의 문장에서, 쓰고 말한 문장에서, 이른바 갖가지 서책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여기에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어려움을 만난다. 그리되면 이러한 어려움에서 비로서 시작해야 할는지 모른다.(466)”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 책의 말미에 붙인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은 누구의 글인지 밝히지 않아서 쫌 그렇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린 캐스틸 하퍼 지음, 신동숙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매하면 어떤 상황이 떠오르십니까? 난폭하거나 배회하는 환자를 떠올리신다면 그나마 나은 편이고, 대변을 누어 여기저기 바르는 환자를 떠올리신다면 최악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망령들었다고만 알던 치매에 대한 오랜 편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치매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의 일부에서 보이거나 말기에 이르러 나타납니다.


치매환자가 초기에 보이는 증상들은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치매환자인줄 모르고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치매증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심정이 복잡해집니다. 딱히 위로하거나 도움이 될 말씀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는 치매에 대한 편견을 깨려는 목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책을 쓴 린 캐스틸 하퍼는 뉴저지에 있는 가든스라는 은퇴자주거복합단지(CCRC,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에서 7년동안 사목활동을 한 목사입니다. 가든스 등에서 치매환자들을 돌본 경험과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치매에 대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질병에 대한 비판을 인용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손택은 암에 대한 평판이 암환자들의 고통을 더 키운다라고 하였는데, 저자는 암에 대한 이런 은유적인 개념은 환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겼으며, 많은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아예 제대로 된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을 낳았다.(21)’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에이즈에 대하여는 단순한 질병 수준을 넘어서서 몹시 심각한 중병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단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질병으로 여겼다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손택을 인용한 것은 이 시대에는 알츠하이머병이 그런 의지를 가지고 맞서 싸울 질병이 아니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만약 손택이 살아있었더라면 분명 알츠하이머병과 그 은유를 써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하기까지 4년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영미권에서 나온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제가 199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잭 케보키언박사가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자살기계를 건네주어 안락사를 유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병리학을 전공한 의사인데, 과연 환자의 심신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서 자살기계를 건네주었는지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케보키언의 첫 번째 의뢰인은 54세된 재닛 애드킨스였습니다. 영어교사였던 애드킨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는데 병증이 심해지기 전에 죽음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초기단계였음에도 말입니다. 치매치료제가 나오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치매환자를 돌보는 방법 등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당시까지 알던 치매환자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공포가 죽음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치매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돌보는 방식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하지만 치매환자의 입장에서 돌봄 방식을 결정하자는 인식이 대두되었습니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톰 킷우드는 <치매를 재고하다: 사람이 먼저다>를 통하여 이러한 움직임을 선도하였습니다.


알츠하이머박사의 첫 번째 환자 아우구스테 데테르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읽는 자료였습니다. 그밖에도 치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발견한 것도 이 책을 읽은 수확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단노 도모후미.오쿠노 슈지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매 환자가 쓴 투병기를 열심히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말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큰 불편 없이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 의심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거나, 치매진단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병을 공개하기를 꺼리는 것은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입니다. 치매에 걸리면 폭력적이 되거나, 변을 뭉개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모습이 사라지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다.


문화평론가 수전손택은 <은유로서의 질>에서 어원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는 고통받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이나 치매와 같은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동안 치료법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암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입니다. 하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알츠하이머병 등의 치매를 진단받은 환자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해답은 환자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를 진단받은 환자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잘 설계할 수 있으려면 환자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웃으면서 살아갑니다>를 읽으면서 이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미야기현에 있는 넷츠도요타 센다이 지점의 자동차 판매사원으로 활동하던 단노 도모후미씨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은 것은 불과 39살 때였습니다. 진단을 받기 5년전부터 시작된 기억력의 감퇴가 문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망록을 활용하여 건망증에 대응하여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비망록에 적어두었다는 사실을 잊거나 고객의 이름은 물론 얼굴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심한 건망증으로 병원을 찾아간 단노씨는 2주일간 입원하여 매일 3-4가지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노씨는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뇌의 위축이 심하여 알츠하이머병이 의심되지만 39살이라는 젊은 나이 때문에 결국 대학병원에 다시 2주일간 입원하여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치매를 확진하기 위하여 1달이나 걸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단노씨가 치매진단을 받은 뒤에 아내와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들이 보인 반응도 놀라웠습니다. 물론 단노씨나 아내도 처음에는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이를 극복하고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단노씨 가족들은 모두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회사의 대표였습니다. 단노씨와 아내가 본사에 가서 대표와 임원 그리고 인사부장에게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라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표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테니까 돌아오세요. 아직 몸은 움직일 수 있죠? 본사의 총무인사 그룹으로 돌아와요. 책상을 옮기는 것부터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60)” 일본의 기업들은 평생직장이라는 전통을 내세워 회사에 충성하도록 했다지만, 최근에는 평생직장의 전통도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단노씨처럼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알츠하이머병은 진행이 빠른 편입니다. 하지만 단노씨의 경우는 진단받은 뒤로도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판매사원이 아니라 판매사원을 지원하는 역할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치매로 진단되었음에도 일상적인 삶은 물론 대중강연 등도 하면서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는 불치의 병이고 인간의 존엄마저도 무너지는 끔찍한 병이라는 인식이 굳어져있습니다. 치매 초기의 환자가 일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체계가 어서 갖추어져야 하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1-12-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치매 진단을 받고 잘살아가고 있는 저자이군요. 주변에 치매 부모 님과 함께 힘든 여정을 가는 분들을 봐서 안타까운 마음에 이 책 같은 내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처음처럼 2021-12-10 06:38   좋아요 0 | URL
치매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할 때가 지났죠.
초기 치매는 보통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