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을 걷다
베르너 헤어조크 지음, 안상원 옮김 / 밤의책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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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에 적힌 '내가 걸어서 파리에 간다면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 때문에 베르너 헤어초크의 <얼음 속을 걷다>를 구입해 읽었습니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배우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로부터 로테 아이스너의 병세가 위중하여 곧 죽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 곧바로 뮌헨을 출발하여 파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로테 아이스너는 1960년대 들어 새로운 영화운동을 전개한 의식 있는 젊은 영화인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준 평론가였습니다. 신세대 영화인들에게 독일 영화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 지금은 안된다. 이 시점에 독일 영화계가 그녀를 잃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죽음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7)'라고 생각했으며, 걸어서 파리까지 가면 그녀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헤어초크는 1123일 뮌헨을 출발하여 1214일 아이스너를 만나게 됩니다. 파리는 뭔헨에서 842 km 떨어져 있습니다. 하루 40km씩 걷는다면 20일이 걸립니다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는데, 당시에는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으면서 특별한 감동이 일어 출간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20여 일의 여정을 걸어서 가는 만큼 숙식 문제가 가장 큰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헤어초크가 숙식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일의 일정의 대부분은 노숙을 하거나 빈집 혹은 헛간에서 잠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잠겨진 문을 부수거나 창문을 깬 경우도 있다고 했고, 잠자리를 마련한 곳에서 물품을 훔쳐냈다고도 했습니다. 우유를 사 마시고 빈 곽을 흐르는 강물에 버리기도 한 것을 보면, 솔직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윤리 도덕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준비 없는 갑작스러운 출발이었고, 걸어서 가는 만큼 휴대할 수 물품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기에 의복도 넉넉하게 챙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씻거나 의복의 세탁도 여의치 않아 금세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주목, 아니 감시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시골의 경우 그런 경향이 심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에 몰려들고, 어른들은 숨어서 지켜보았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피해서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갔다고 했다의복 세탁에 무심한 것처럼 위생에도 무심한듯, 예를 들면 풀밭 위로 흐르는 실개천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대체로 물을 사먹은 등하다.


걸으면서 보고 느낀 점을 적었는데, 기막힌 대목이 많다. 예를 들면, 폭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눈이 밭고랑 속에 내려앉을 새도 없었다.(45) 오늘 아침, 밤은 익사한 채 차가운 회색 파도에 실려 다가왔다.(37) 등입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옮기면서 구소련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86년작 영화 <희생>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어느 승려가 산에 죽은 나무를 심고 매일 의식을 치르듯 나무에 물을 주었습니다. 지극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다던가, 그렇게 3년이 지냐 뒤에는 죽은 나무에서 꽃이 만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헤어초크가 무모해보이는 여정을 시작한 것은 기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는 것. 위독하다던 78세의 아이스너는 이해. 헤어초크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았던지 던지 그해의 고비를 넘기고는 8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헤어초크가 뮌헨에서 파리로 가는 동안 날씨는 별로 부조를 해주지 않아, , 강풍, , 우박도 모자라 엄청난 폭풍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왠만하면 걷기를 포기함 직한데 헤어초코는 중단하지 않고 꿈을 관철해냅니다. 이 정도의 뚝심이라면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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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
김훈태 지음 / 북노마드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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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교토의 밤 산책자>를 읽었던 것처럼 교토에 관한 글을 한 꼭지 쓰기 위해 읽은 책입니다.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출판기획 일을 하는 작가가 서른이 되던 해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부산을 떠나 오사카를 거쳐 교토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교토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생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대체물을 찾기 위해서였던 듯합니다. 이런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여행은 인생의 나이테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봄부터 가을까지 같은 속도와 질감으로 부드러운 살을 찌우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성장을 잠시 멈추고 안으로 견고해지는 시간, 그것이 나이테잖아. 여행은 그렇게 내부로 견고해지는 시간이야.(26)”


작가는 부산을 출발하여 교토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편지 오사카 행 슬로보트를 타다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토로 향하기에 앞서 미얀마와 핀란드가 후보로 꼽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교토가 최종 낙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토를 떠날 때까지 쓴 모두 열네 통의 편지에 교토에서 보낸 시간들을 요약하였습니다. 편지의 형식을 취하다 보니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글을 썼는데 마치 독자가 편지를 받아 읽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열네 통의 편지는 아마도 교토에 있는 어느 찻집에서 썼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편집기획을 담당했던 까닭인지 문체도 담백하고 간략하면서도 다양한 자료를 끌어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편지에는 작가가 교토에서 가본 장소들, 숙소는 물론 가모가와, 기요미즈데라, 료안지와 로젠인, 긴카쿠지와 철학의 길, 우토로 마을과 같은 유명한 곳은 물론 유명하지 않은 곳을 포함하여 찻집과 음식점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미셀이라는 찻집은 아침을 먹고 편지를 쓴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커피에 대하여 진심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이 책이 출간된 2년 뒤에 나온 <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라는 책도 작가가 쓴 것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즈음 국내외의 장소에서 한 달을 보내는 한 달 살기가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일찍이 교토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본 것 같습니다. 작가가 소개한 숙소에 머물면서 작가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교토를 즐겨보기를 한 달 동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런던, 파리, 비엔나 등에 이어 한 달을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교토가 추가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써볼 요량인 교토에 관한 글에서는 일단 가모가와, 기요미즈데라, 긴가쿠지 그리고 인근에 있는 철학자의 길 등이 다루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다혜의 <교토의 밤 산책자>와 김훈태의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작가가 묵은 숙소에 주인은 물론 찻집과 식당 등을 비롯하여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 전자우편 주소를 주고받는 등 인연을 이어가기로 한 것을 보면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수확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 편지에서는 작가가 교토에서의 생활을 소개하는 누리사랑방의 글을 보고(아마도 교토에서 보낸 편지가 아니었을까요?) 작가가 머무는 숙소에 찾아온 여성하고 나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여성은 작가에게 왜 교토에서 한 달이나 머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하여 그냥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사연이 있어요, 정리해야 할 것도 있고요.’라고 해서 더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여성은 덧붙여서 인생의 목표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278)’라고 했답니다. 작가는 자신도 잃어버린 의미를 찾아 교토에 혼자 왔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언가의 의미를 찾기 위해 굳이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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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샹즈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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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로 예정된 여행사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라오서(老舍)<낙타 샹즈>입니다. 북경에 사는 인력거꾼 샹즈의 비참한 일생을 그린 이 소설은 당대 하층민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묘파해 비판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낙타 샹즈>1930년대의 북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고 화북지방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한인(漢人)들이 생존과 독립운동을 위해 북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북경은 명(1368-1644)과 청(1616~1912)의 수도였으며 중화민국 초기, 그리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입니다. 따라서 1930년 무렵에는 전통적인 고도(古都)의 모습과 함께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상업, 교육, 문화 시설이 확충되었고,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사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북경의 한인 사회도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작가는 왜 주인공을 인력거꾼으로 삼았을까요? 아마도 인력거꾼의 속한 하층민들의 사회로 보여줄 수 있으며 인력거를 이용하는 상층민이나 북경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여줄 요량이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북경의 인력거꾼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24시간 활동을 했던 것도 주요한 장치가 아니었을까요?


샹즈(祥子)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를 여의고는 물려받은 몇 마지기의 척박한 땅마저 잃게 되자 열여덟이 되던 해에 북경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처음에는 튼튼한 몸과 성실함을 밑천으로 힘을 팔아서 먹고사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인력거를 끌면 쉽게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경의 인력거꾼들도 여러 패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되는 류쓰예의 인화차창과 같은 인력거 차고에서 임대하거나 자신의 인력거를 가지고 거리에서 손님을 태우는 경우입니다. 인력거를 임대하는 경우에는 계약에 따라 사납금을 내야 합니다. 입주하여 주인의 인력거를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샹즈는 이런 상황을 모두 겪어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인화차창에서 먹고자면서 인력거를 임대하여 길거리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루 번 돈으로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셔 탕진하는 다른 인력거꾼들과는 달리 허리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 자신의 인력거를 장만하여 여유 있게 영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면서 위험한 행선지로 가는 손님을 기피할 때, 몇 곱의 돈을 내겠다는 손님을 받았다가 군인들에게 사로잡혀 인력거도 빼앗기고 잡부로 차출된 것입니다. 군인들에게 맞아가면서 끌려다니다가 어느 날 적의 공세를 피해 달아나는 군인들의 눈을 속여 낙타 몇 마리를 끌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렇게 얻은 낙타를 전쟁통에 제값을 받지 않고 팔아치우면서 샹즈는 낙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화차창으로 돌아갑니다.


인력거 끌기에 운명을 걸었던 샹즈이지만 인화차창으로의 회귀는 그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형편 없는 주인집에 전속 인력거꾼으로 들어가 하인처럼 살기도 하고, 젊잖은 교수의 전속 인력거꾼이 되기도 하는데 혁명의 와중에서 곤경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못생긴 탓에 결혼하지 못하고 노처녀로 늙어가는 류쓰예의 딸 후니우의 눈에 들어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류쓰예의 인화차창을 물려받게 될 거라는 기대는 물 건너가고 후니우와 빈민가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게 됩니다. 후니우는 샹즈를 독접하려 욕심을 부리고 낭비벽이 심했는데, 샹즈의 아이를 가졌다가 출산을 하면서 난산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샹즈의 인생관이 바뀌게 됩니다. 다른 인력거꾼보다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그냥 인력거꾼다운 인력거꾼이 된 것입니다.


결국 체면을 소중히 여기고 강인하게 꿈을 좇던 사람, 자신을 사랑했고 독립적이었던 사람, 건장하고 위대했던 샹즈는 얼마나 많은 장례식의 일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 이기적이며 불행한 인간, 사회적 병폐의 산물이며 개인주의의 말로에 선 그 영혼이 언제 어떻게 땅에 묻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376)”라는 결말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샹즈를 비참한 죽음에 까지 몰고 가지 않은 것은 아마도 작가가 창조한 인간 샹즈에게 베푼 일말의 은전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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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올트먼, 더 비전 2030 - AI부터 생명공학까지, 오픈AI가 설계하는 미래
이재훈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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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여행기를 쓰고 있는 저는 누리망을 통하여 자료를 검색하고, 검색한 내용들을 적당한 수준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정리하는 가운에 저의 생각도 섞여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들은 최근에 챗GPT를 사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고 합니다. 굳이 누리망을 뒤져 글을 써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챗GPT를 사용하여 글을 써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도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챗GPT는 물론 AI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있습니다. <샘 올트먼, 더 비전 2030>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기술과 사람을 잇는 IT 커뮤니케이터이자 테크 칼럼니스트라고 소개되는 이재훈이 쓴 책입니다. “AI 스타트업에서 사업 개발, 국내 금융사에서 DT·AX 전략 업무를 수행하며 기술과 비즈니스가 만나는 최전선에서 변화의 흐름을 직접 마주해왔다.”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사실 정보산업 분야에서는 외래어와 약어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여기 소개된 글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연식이 조금 된 탓에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앎이 없는 탓입니다. 제가 쓰는 글에서는 최대한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노력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제 글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챗GPT를 개발한 오픈 AI의 대표 샘 올트먼의 행적과 철학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리해냈습니다. 샘 올트먼은 AI의 성공을 기반으로 핵융합, 생명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사업의 다각화 전략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이 발전해온 것은 대단한 천재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인간의 삶을 논하는 학문인 철학 역시 한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모든 영역에서의 인류의 발전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이루어져 왔던 것입니다. 뛰어난 인간이 등장하여 놀라운 것을 만들어내도, 또 다른 놀라운 사람이 등장하여 그것을 폐기하거나 수정하여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이끌어 내기도 해온 것입니다.


샘 올트먼이 개발한 AI 기술은 인간이 해오던 일을 대체할 인조인간을 개발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기계로 하여금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만든 것은 그 일을 하는 인간을 다루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왔던 것도 이유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샘 올트먼은 기계의 도입으로 인하여 개발자는 엄청난 부를 쌓는 반면, 기계로 인하여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는 기본소득을 나누어주어 소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야당 시절부터 주장하던 것인데 과연 기획한 사람의 뜻대로 세상이 흘러갈까요?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는 공산주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실패한 철학을 다시 끌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샘 올트먼이 내세운 미래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런 미래가 과연 모든 인간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일까요? 모든 인간이 꼭같은 삶을 즐기는 사회가 과연 정답일까요? 누구나 자신이 철학에 따라 독창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할 것입니다. 누군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행복한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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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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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입니다. <산책자>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이라는 것도 독후감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대 작가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애독자였고 후대 W. G. 제발트,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 J. M. 쿠체 등이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산책자>에는 42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발저가 남긴 수백 편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중단편 42편을 엄선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917년에 쓴 <산책(Der Spaziergang)>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의 생애 동안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산책자>에 실려 있는 글을 읽어가면서 산책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산문 산책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혼자서 긴 산책을 즐겼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밤산책도 즐겼다고 합니다. 그의 산책은 그저 사색하기 위한 산책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볼일을 보기 위하여 외출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인데, ‘산책에서는 그와 같은 산책에서 볼일을 처리해낸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볼일 가운데는 과다하게 부과된 세금을 조정해달라는 청을 하기 위해 찾아간 세무관에게 자신의 수입을 소명하는 가운데 하지만 당신은 매일 산책이나 다니고 있잖아요!”라고 잘라 말하는 데 대하여 산책은 나에게 무조건 필요한 겁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에게 살아 있는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니까요.”라면서 산책을 통하여 얻은 사유의 결과를 글로 써서 먹고 산다고 주장합니다. “내게 산책은 기분 좋고 건강한 습관을 넘어서 직업상 유익하고도 필수적인 일과입니다. 산책은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개인적으로는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산책은 보고 느낄 만한 중요한 현상들이 늘 가득한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산책자는 아무로 사소하고 작은 생명체라도 () 모두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최대한의 사랑과 주의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감정에 겨운 나르시시즘이나 너무 민감하게 상처받는 성향을 지녀서는 안되며, 사적인 이익을 쫓는 이기심을 버리고, 세심한 시선으로 사방 모든 곳을 둘러보고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하여 사물을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산책을 읽고서 지금은 잊고 있는 산책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오래 전에 집근처를 산책하면서, 서울의 도심과 근교를 산책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기억해냈습니다. ‘산책이전에 읽었던 41편의 산문들이 그가 산책을 하면서 얻은 사유의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산문들 가운데는 그가 화자인 듯한 내용도 있고, 그가 창조한 화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툰의 크라이스트에서는 그는 산책을 한다. ,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할 일이 없고 충돌할 사람도 없고 집어 던질 것도 없는 이가 하필이면 그 자신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습기와 힘이 조용히 통곡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혹사하고 싶은 갈망으로 떨린다.(190)”는 대목입니다.


읽다 보면 깜짝 놀랄만한 대목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그것은 항상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버리지만 그런 빠름 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구부러지며 끊어지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이 생긴다.(34)”라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크게 성장하려고 노력했던 부엉이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차분하게 견뎌내면서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으로 현존하는 법을 안다.(172)”라는 대목과 연관지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작가들, 시인들, 희곡작가들은 자신의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방에 난방을 거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여름에 땀을 흘리니 겨울에는 반대로 약간은 떨어야 균형이 맞는 법이지.’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아주 뛰어난 적응력으로 열기와 냉기를 이겨낸다.(98)”라는 대목은 지금 쓰고 있는 일본여행기에서 인용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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