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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을 걷다
베르너 헤어조크 지음, 안상원 옮김 / 밤의책 / 2021년 4월
평점 :
책의 뒷표지에 적힌 '내가 걸어서 파리에 간다면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 때문에 베르너 헤어초크의 <얼음 속을 걷다>를 구입해 읽었습니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배우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년 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로부터 로테 아이스너의 병세가 위중하여 곧 죽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 곧바로 뮌헨을 출발하여 파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로테 아이스너는 1960년대 들어 새로운 영화운동을 전개한 의식 있는 젊은 영화인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준 평론가였습니다. 신세대 영화인들에게 독일 영화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 지금은 안된다. 이 시점에 독일 영화계가 그녀를 잃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죽음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7쪽)'라고 생각했으며, 걸어서 파리까지 가면 그녀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헤어초크는 11월 23일 뮌헨을 출발하여 12월 14일 아이스너를 만나게 됩니다. 파리는 뭔헨에서 842 km 떨어져 있습니다. 하루 40km씩 걷는다면 20일이 걸립니다. 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는데, 당시에는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으면서 특별한 감동이 일어 출간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20여 일의 여정을 걸어서 가는 만큼 숙식 문제가 가장 큰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헤어초크가 숙식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일의 일정의 대부분은 노숙을 하거나 빈집 혹은 헛간에서 잠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잠겨진 문을 부수거나 창문을 깬 경우도 있다고 했고, 잠자리를 마련한 곳에서 물품을 훔쳐냈다고도 했습니다. 우유를 사 마시고 빈 곽을 흐르는 강물에 버리기도 한 것을 보면, 솔직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윤리 도덕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준비 없는 갑작스러운 출발이었고, 걸어서 가는 만큼 휴대할 수 물품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기에 의복도 넉넉하게 챙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씻거나 의복의 세탁도 여의치 않아 금세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주목, 아니 감시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시골의 경우 그런 경향이 심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에 몰려들고, 어른들은 숨어서 지켜보았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피해서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갔다고 했다. 의복 세탁에 무심한 것처럼 위생에도 무심한듯, 예를 들면 풀밭 위로 흐르는 실개천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대체로 물을 사먹은 등하다.
걸으면서 보고 느낀 점을 적었는데, 기막힌 대목이 많다. 예를 들면, 폭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눈이 밭고랑 속에 내려앉을 새도 없었다.(45쪽) 오늘 아침, 밤은 익사한 채 차가운 회색 파도에 실려 다가왔다.(37쪽) 등입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옮기면서 구소련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86년작 영화 <희생>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어느 승려가 산에 죽은 나무를 심고 매일 의식을 치르듯 나무에 물을 주었습니다. 지극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다던가, 그렇게 3년이 지냐 뒤에는 죽은 나무에서 꽃이 만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헤어초크가 무모해보이는 여정을 시작한 것은 기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는 것. 위독하다던 78세의 아이스너는 이해. 헤어초크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았던지 던지 그해의 고비를 넘기고는 8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헤어초크가 뮌헨에서 파리로 가는 동안 날씨는 별로 부조를 해주지 않아, 비, 강풍, 눈, 우박도 모자라 엄청난 폭풍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왠만하면 걷기를 포기함 직한데 헤어초코는 중단하지 않고 꿈을 관철해냅니다. 이 정도의 뚝심이라면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