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책에선가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입니다. <산책자>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이라는 것도 독후감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대 작가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애독자였고 후대 W. G. 제발트,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 J. M. 쿠체 등이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산책자>에는 42편의 산문이 실려 있습니다. 발저가 남긴 수백 편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중단편 42편을 엄선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917년에 쓴 <산책(Der Spaziergang)>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의 생애 동안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산책자>에 실려 있는 글을 읽어가면서 산책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산문 산책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혼자서 긴 산책을 즐겼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밤산책도 즐겼다고 합니다. 그의 산책은 그저 사색하기 위한 산책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볼일을 보기 위하여 외출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인데, ‘산책에서는 그와 같은 산책에서 볼일을 처리해낸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볼일 가운데는 과다하게 부과된 세금을 조정해달라는 청을 하기 위해 찾아간 세무관에게 자신의 수입을 소명하는 가운데 하지만 당신은 매일 산책이나 다니고 있잖아요!”라고 잘라 말하는 데 대하여 산책은 나에게 무조건 필요한 겁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에게 살아 있는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니까요.”라면서 산책을 통하여 얻은 사유의 결과를 글로 써서 먹고 산다고 주장합니다. “내게 산책은 기분 좋고 건강한 습관을 넘어서 직업상 유익하고도 필수적인 일과입니다. 산책은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개인적으로는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산책은 보고 느낄 만한 중요한 현상들이 늘 가득한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산책자는 아무로 사소하고 작은 생명체라도 () 모두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최대한의 사랑과 주의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감정에 겨운 나르시시즘이나 너무 민감하게 상처받는 성향을 지녀서는 안되며, 사적인 이익을 쫓는 이기심을 버리고, 세심한 시선으로 사방 모든 곳을 둘러보고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하여 사물을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산책을 읽고서 지금은 잊고 있는 산책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오래 전에 집근처를 산책하면서, 서울의 도심과 근교를 산책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기억해냈습니다. ‘산책이전에 읽었던 41편의 산문들이 그가 산책을 하면서 얻은 사유의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산문들 가운데는 그가 화자인 듯한 내용도 있고, 그가 창조한 화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툰의 크라이스트에서는 그는 산책을 한다. ,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할 일이 없고 충돌할 사람도 없고 집어 던질 것도 없는 이가 하필이면 그 자신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습기와 힘이 조용히 통곡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혹사하고 싶은 갈망으로 떨린다.(190)”는 대목입니다.


읽다 보면 깜짝 놀랄만한 대목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그것은 항상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버리지만 그런 빠름 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구부러지며 끊어지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이 생긴다.(34)”라는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크게 성장하려고 노력했던 부엉이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차분하게 견뎌내면서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으로 현존하는 법을 안다.(172)”라는 대목과 연관지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작가들, 시인들, 희곡작가들은 자신의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방에 난방을 거의하지 않는다. ‘사람은 여름에 땀을 흘리니 겨울에는 반대로 약간은 떨어야 균형이 맞는 법이지.’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아주 뛰어난 적응력으로 열기와 냉기를 이겨낸다.(98)”라는 대목은 지금 쓰고 있는 일본여행기에서 인용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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