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황예지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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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를 너무 건조하게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바꾸어 보기 위하여 다양한 형식의 수필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가족사진과 초상사진 작업을 통해 위로를 전하려는 젊은 사진작가 황예지의 수필집입니다. 사진작가라는 특정한 분야와 젊은이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읽기를 기대했습니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뜻 모를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집을 나간 어머니가 10년 만에 돌아올 때까지는 사랑하지만 아픔이었던 가족들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온 뒤부터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진을 통하여 아픔을 직시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입니다가족들에 얽힌 이야기들 사이에는 가족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이야기와 관련된 장면을 담은 사진이 곁들여졌습니다.


가족들의 모습이라고 해서 예쁜 모습이 아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 담겨있어, 읽어가다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역시 작가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원고를 최대한 살린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전후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나타나면 읽는 흐름이 흩어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은 아빠의 얼굴로 빼곡하다(13)’는 부분에서 빼곡하다라는 단어를 끌어온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빼곡하다라는 형용사는 사람이나 물건이 어떤 공간에 빈틈없이 꽉 찬 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식의 얼굴이 필자의 얼굴에 아빠의 얼굴이 빈틈없이 꽉 차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모습이 아빠의 얼굴 그대로 닮았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빼다 박았다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땅에 박혀 있는 물건을 빼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박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빼닮다혹은 빼쏘다라는 우리말을 쓰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이를 가졌을 때 누군가를 깊게 미워하면 그 얼굴을 닮는다라고 했다는 엄마의 말에 이어진 생각입니다. 흔히 자식들의 모습이 부모의 모습을 빼닮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엄마의 얼굴을 닮는 자식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아이의 엄마는 임신했을 때 자신을 깊게 미워한 것일까요?


양치할 때 잇몸에서 피가 샐쭉 튀어나왔다는 대목도 샐쭉이라는 단어가 어떤 감정의 표현으로서 입이나 눈을 한쪽으로 샐긋하고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자리가 아닐 듯싶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친구와 부하직원의 배신으로 망했을 때도, ‘우리 집은 한순간에 풀썩 주저앉았다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집은 한순간에 폭삭 망했다라고 보통 말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뭔가 다른 느낌을 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사업실패에 이어 미국 이민,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수감생활, 아버지의 교통사고 등등 작가의 가족들이 겪어내야 했던 신산한 삶의 궤적들은 연대기를 꿰맞출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적당히 감추고, 포장하고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으면서 이를 극복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작가의 생각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후기를 대신하여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전하는 친애하는 당신에게라는 글을 말미에 달았습니다. 그 끝을 보면, “이제는 슬픔을 곁에 두고자 합니다. 그 또한 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전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던, 끝내 들리고 싶은 모습을 이 책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저의 시간을 드릴게요. 이 책을 덮으면 당신의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에요. 아린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다정한 세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런 작가의 마음과 달리 독후감을 그리 다정하게 쓰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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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찬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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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문학 대사라고 하는 이스마일 카다레가 2009년에 발표한 <잘못된 만찬>을 읽었습니다. 사실 알바니아는 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지도를 보면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가 이오니아 해로 나가는 길목을 감시(?)하는 요지로 보입니다. 바다건너는 장화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의 뒷 굽과 함께 아드리아 해의 폭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년전에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하는 발칸반도를 여행하면서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알바니아까지 포함하는 상품이 없었습니다. 구경거리가 없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유사 이래로 알바니아는 독립을 유지한 시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지역에는 고대로부터 일리리아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일리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1200년 무렵 발칸반도의 서쪽 아드리아 해의 북쪽 끝에서 지금의 알바니아 부근에 이르기까지 진출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살았는데, 기원전 167년 로마제국에 점령된 이후로는 중세에는 비잔틴제국으로 이어서 오스만제국으로 지배세력이 바뀌었습니다.


1912년 알바니아 사람들이 봉기하여 오스만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제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왕국들이 발칸동맹을 맺어 오스만제국에 맞선 발칸전쟁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하였고, 발칸동맹군이 알바니아에 진주하였지만, 그해 1128일 알바니아는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혼돈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통제위원회의 관리를 받던 알바니아는 공국-공화국을 거쳐 1928년에는 알바니아 왕국이 성립하였습니다. 하지만 1939년에는 이탈리아왕국에 합병되었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이탈리아가 항복을 하자 나치 독일이 알바니아를 점령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반에는 민족주의자 세력과 공산세력이 대립하는 내전상태에 빠졌습니다. 전후에 공산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진압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잘못된 만찬>은 제2차 세계대전 후반,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하던 시기부터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되기까지의 혼란하던 시기가 시대적 배경입니다. 무대는 그리스로부터 멀지 않은 산간마을인 지로가스트라 시입니다. 발칸반도의 지역적 특색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산간마을들은 서로 냉랭한 관계였던가 봅니다. 작가는 그런 분위기를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남쪽으로는 강을 따라 골짜기 곳곳에 그리스 소수민족 부락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멸시를 받으면서도 다른 이웃들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이 도시의 정신적인 균형을 교란했다.(18)”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로, 그리스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하기 위하여 진주해왔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독일군의 진주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독일은 코소보와 차머리아를 알바니아에 통합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인데, 막상 지로가스트라 시에 진주해가던 독일군을 맞이한 것은 저격병의 총탄세례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짐작은 하였지만, 밝혀진 것은 없었습니다.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워 포격을 하면서 도시로 진입하다가 포격을 멈추었는데, 누군가 흰 천조각을 들어올려 항복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시가를 점령한 독일군의 지휘관은 프리츠 포 슈바베 대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로가스트라 시에 친구가 있었습니다. 구라메토 그로스. 뮌헨대학에서 수학할 무렵 동무였다고 합니다. 슈바베 대령을 만난 구라메토 박사는 알바니아의 전통 손님맞이법, 베사(‘신의라는 알바니아의 관습법)에 따라 슈바베 대령의 일행을 집에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독일군이 잡아들인 유대인들이 차례로 풀려나게 됩니다. 피는 피로 갚는다는 알바니아 전통의 두카지니법에 따르면 독일군이 진주할 당시의 저격으로 입은 피해를 피로 보상해야 할 상황인데 말입니다. 이날 만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훗날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된 다음 체포된 구라메토 박사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때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2차 세계대전 말혼란스럽던 알바니아의 국내사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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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아래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07
맬컴 라우리 지음, 권수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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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책에서 소개된 것을 읽고서 찾아읽은 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아마도 전에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과, 멕시코 중남부 콰우나우악(모렐로스 주의 주도 쿠에르나바카의 옛 이름)을 무대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본문 530쪽에 이르는 긴 이야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피네간의 경야>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만큼이나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체 윤곽을 그려내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어려운 책읽기였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화산 아래서>1938112일 멕시코 축일의 하나인 죽은 자의 날(디아 데 무에르토스, Día de Muertos; 11월 첫째날과 두 번째 날로 죽은 친지나 친구를 기억하면서 명복을 비는 행사를 합니다)2시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12시간이라고는 하지만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멕시코 주재 영국 영사 제프리 퍼민을 회상하는 두 사람의 대화로 시작하여 1년 전 퍼민의 죽음과 관련된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퍼민은 영국과 멕시코가 국교를 단절하면서 영사직은 내놓고 두 개의 화산이 보이는 콰우나우악으로 낙향하여 살게 됩니다. 상심한 그는 술에 의존하여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아내 이본, 이복동생 휴, 그리고 어린 시절의 친구 자크 등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것 같습니다. , 술에 절어서 살고 있는 퍼민에게 실망한 이본이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복잡했을 것이라는 암시가 곳곳에 깔리면서 퍼민 역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주변인물들이 퍼민의 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1년 전에 이들은 나락에 빠진 퍼민을 구하기 위하여 이곳을 방문하였습니다. 특히 이본은 남편을 설득하여 관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지만, 결국 퍼민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안타까운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저 역시 젊어서는 술을 좋아해서, 해가 설핏 기울면 술이 당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요즈음에는 술을 마시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불쾌한 시간들을 견디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서 술 마시기를 자제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술을 멀리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합니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뒤섞이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율리시스> 등에서 보는 의식의 흐름을 토대로 하여 작가 나름의 주관적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작가 멜컴 라우리는 이 소설의 구조를 추리게레스코 양식의 멕시코 성당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17세기 스페인에서 나타난 바로크 양식을 말하는데, 화려하면서도 소용돌이와 같은 복잡한 구조가 특징이라고 합니다.


작가가 서술하는 풍경이 인상적인 대목이 많습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눈보라가 이스탁시우아틀의 정상을 따라 형성되어 정상의 모습이 희미해진 반면, 전체적으로 뭉게구름이라는 수의를 입은 모습이었다. 깎아지는 듯한 포포카페테틀 덩어리가 계곡을 따라 구름과 함께 움직여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기이하고 침울한 빛이 작은 묘지가 있는 언덕을 비추고 있었다. 묘지는 사람들로 가득했으나 보이는 것은 촛불뿐이었다.(466)” 죽은 자들의 묘지풍경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꼬리를 무는 책읽기를 이어갈 다음 작품을 소개받았습니다. 장 콕토의 <지옥의 기계>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인데, 여기에서는 “Oui, mon enfant, mon petit enfant(그래, 내 아기, 내 작은 아기)”라는 대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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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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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최문희 작가님의 <난설헌>이 출간 10년 만에 15만부를 찍었다고 합니다. 다산책방은 이를 기념하여 표지를 새롭게 하여 출간하면서 독자들을 위한 행사를 열어 읽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혼불문학상은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님을 추모하고 <혼불>의 문학적 가치와 위상을 재정립하면서,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작가를 발굴하기 위하여 전주문화방송이 2011년에 재정한 문학상입니다. 1회 혼불문학상의 심사평을 보면, “조선 중기의 천재적 여류 시인 허날설헌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작품으로 그미의 빛나는 시편들이 사실은 그미의 한없이 고단했던 삶의 고통을 디뎌가는 과정 속에서 도래한 것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367)”라고 하였습니다.


작품의 전반부와 후반부, 그러니까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삶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설정이 단연 이채롭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조선 중기의 전통혼례의 절차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이 결혼 전부터 학업을 등한시하고 기방출입이 잦았다고 하였는데, 혼담이 오가는 과정에서 이런 소문들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난설헌의 부친 허엽이 대사간을 지냈고, 이복 오빠 허성과 동복 오빠 허봉이 조정에 나가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김성립이 당대의 명문 안동김씨의 일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내세울 것은 없었던 모양으로 좋은 혼처는 아니었던 듯싶습니다.


조선 중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지만, 고어가 아닌 쉽게 이해되는 우리말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님의 대단한 필력을 먼저 짚었어야 했습니다. 물론 조금은 생소해 보이는 단어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허난설헌은 8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김성립과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시모의 시집살이까지 만만치 않았고, 두 자녀가 어려서 돌림병으로 죽고, 그 충격으로 유산을 하는 등 결혼 후 그녀의 삶은 질곡의 연속이었던 듯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시작으로 녹여냈지만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미상의 병으로 타계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자신의 거처에 있던 작품들을 모두 태웠다고 하는데, 친정에 있던 작품들까지도 소각하라는 당부를 동생 허균이 따르지 않고 보관하였다가 그녀의 사후 10년째 되던 해에 명나라에서 출간하였습니다. 조선에서는 남편과 시집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던 사정으로 인하여 그녀의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으나, 명나라에서는 1608년 출간된 <난설헌집>이 명나라 문인들의 격찬을 받았으며, 1612년에는 시작품 168편과 산문글 1편이 실린 <취사원창(聚沙元倡)>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일본에서도 1711년에 분다이야지로(文台屋次郎)에 이하여 그녀의 시집이 발간되어 문인들이 애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조선 중기의 동아시아에 한류를 전파한 여성시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전하는 바는 없을 것이나, 작가는 그녀의 지난한 삶이 조선 중기 남성들의 지금과는 다른 여성관을 비롯하여 양반 가문의 지나치도록 엄한 가풍에서 기인하였음을 암시하는 장치를 곳곳에 심어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납함례를 치르던 날, 비가 퍼부어 상서롭지 않은 조짐으로 상정하고 야밤에 든 도둑이 지붕위에 올라 시집에서 예물로 보낸 녹의홍장을 갈가리 찢었다거나 그녀가 천정의 사랑에 드나들던 최순치의 연모를 거절하지 못하는 등, 시댁에 오해를 살 빌미를 주었다거나 하는 등의 장치 말입니다. 그녀에게 암수를 쓴 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의심이 갈만한 인물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보아서는 가당치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요즘 글쓰기를 하면서 외래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말로 쓴 아름다운 이야기 <난설헌>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더 많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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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한국에서의 일 년
베라 홀라이터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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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에서 <미녀들의 수다>라는 연예편성이 방송된 것은 2006년이었고, 2010년까지 5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50여 개국에서 온 125명의 미녀들이 순차적으로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의 여성들이 출연하여 매주 일정한 주제를 두고, 그녀들이 우리나라에서 느낀 점을 자국의 문화와 비교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관련 주제에 대하여 가감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놓아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독일에서 와서 이화여대 외국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던 베라 홀라이터가 우리나라에 처음 와서 적응하면서 겪었던 사건, 사고들을 솔직하게(?) 적은 수필집입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출간되었던 것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된 것인데, 번역서가 출간되기도 전에 화제를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외국에 사는 독일인 혹은 독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여행서의 한 분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 관한 책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한국에 관한 책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작가는 재미와 웃음을 바탕으로 (독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당연힌 긍정적인 모습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속살을 여지 없이 드러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작가의 솔직함이 독일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독일에서 출간된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전에 책에 담긴 내용의 일부가 누리망을 통하여 소개되면서 소동을 빚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발췌과정에서 전체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오역되어 사실관계가 잘못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글쓴이의 의도는 한국만의 특이한 모습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꼭 하게 되는 실수들, 그리고 특히 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유머를 끌어내자(7)’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독일인 특유의 솔직함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실험실에 근무하던 여비서가 독일 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독일 사람들은 듣는 이의 귀에 달콤하게 변주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루이자 메이 올코트의 <작은 아씨들>에도 독일 청년이 등장하는데,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는 남자로, 큰 언니 맥과 결혼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럽에서 열리는 학회에서도 독일에서 온 병리의사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부분 진중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작가는 여느 나라의 젊은 여성처럼 발랄하고 삶을 제대로 즐기는 그런 성격인 것 같습니다. 술도 잘 마시고, 무도장에도 가고, 노래방에서는 부족한 노래실력을 대담한 엉덩이 흔들기로 보완할 줄도 아는 개방적이라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어떻더라는 것도 편견이었던 것입니다.


작가가 우리나라에 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 남자친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의 가족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갈등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지만, 나름 현명하게 해결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결혼이라는 단계까지 발전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개인사의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작가가 태권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참여했을 때, 송판깨기를 했다고 합니다. 각자의 소망을 적은 송판을 깨는 과정은 소망을 비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소망 자체를 깨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꿈과 야망을 놓는 일, 스스로의 자아를 깨는 일이라는 심오한 뜻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처럼 깊이 있는 이야기는 물론 책의 전반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점은 글을 참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는 점이었고, 더하여 딱딱할 수도 있는 독일어를 참 유려하게 우리말로 옮겼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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