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찬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바니아의 문학 대사라고 하는 이스마일 카다레가 2009년에 발표한 <잘못된 만찬>을 읽었습니다. 사실 알바니아는 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지도를 보면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가 이오니아 해로 나가는 길목을 감시(?)하는 요지로 보입니다. 바다건너는 장화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의 뒷 굽과 함께 아드리아 해의 폭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년전에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하는 발칸반도를 여행하면서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알바니아까지 포함하는 상품이 없었습니다. 구경거리가 없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유사 이래로 알바니아는 독립을 유지한 시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지역에는 고대로부터 일리리아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일리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1200년 무렵 발칸반도의 서쪽 아드리아 해의 북쪽 끝에서 지금의 알바니아 부근에 이르기까지 진출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살았는데, 기원전 167년 로마제국에 점령된 이후로는 중세에는 비잔틴제국으로 이어서 오스만제국으로 지배세력이 바뀌었습니다.


1912년 알바니아 사람들이 봉기하여 오스만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제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왕국들이 발칸동맹을 맺어 오스만제국에 맞선 발칸전쟁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하였고, 발칸동맹군이 알바니아에 진주하였지만, 그해 1128일 알바니아는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혼돈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통제위원회의 관리를 받던 알바니아는 공국-공화국을 거쳐 1928년에는 알바니아 왕국이 성립하였습니다. 하지만 1939년에는 이탈리아왕국에 합병되었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이탈리아가 항복을 하자 나치 독일이 알바니아를 점령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반에는 민족주의자 세력과 공산세력이 대립하는 내전상태에 빠졌습니다. 전후에 공산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진압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잘못된 만찬>은 제2차 세계대전 후반,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하던 시기부터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되기까지의 혼란하던 시기가 시대적 배경입니다. 무대는 그리스로부터 멀지 않은 산간마을인 지로가스트라 시입니다. 발칸반도의 지역적 특색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산간마을들은 서로 냉랭한 관계였던가 봅니다. 작가는 그런 분위기를 이렇게 나타냈습니다. “남쪽으로는 강을 따라 골짜기 곳곳에 그리스 소수민족 부락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멸시를 받으면서도 다른 이웃들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이 도시의 정신적인 균형을 교란했다.(18)”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로, 그리스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하기 위하여 진주해왔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독일군의 진주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독일은 코소보와 차머리아를 알바니아에 통합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인데, 막상 지로가스트라 시에 진주해가던 독일군을 맞이한 것은 저격병의 총탄세례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짐작은 하였지만, 밝혀진 것은 없었습니다.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워 포격을 하면서 도시로 진입하다가 포격을 멈추었는데, 누군가 흰 천조각을 들어올려 항복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시가를 점령한 독일군의 지휘관은 프리츠 포 슈바베 대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로가스트라 시에 친구가 있었습니다. 구라메토 그로스. 뮌헨대학에서 수학할 무렵 동무였다고 합니다. 슈바베 대령을 만난 구라메토 박사는 알바니아의 전통 손님맞이법, 베사(‘신의라는 알바니아의 관습법)에 따라 슈바베 대령의 일행을 집에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독일군이 잡아들인 유대인들이 차례로 풀려나게 됩니다. 피는 피로 갚는다는 알바니아 전통의 두카지니법에 따르면 독일군이 진주할 당시의 저격으로 입은 피해를 피로 보상해야 할 상황인데 말입니다. 이날 만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훗날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된 다음 체포된 구라메토 박사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때로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2차 세계대전 말혼란스럽던 알바니아의 국내사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