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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황예지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일상의 이야기를 너무 건조하게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바꾸어 보기 위하여 다양한 형식의 수필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은 가족사진과 초상사진 작업을 통해 위로를 전하려는 젊은 사진작가 황예지의 수필집입니다. 사진작가라는 특정한 분야와 젊은이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읽기를 기대했습니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뜻 모를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집을 나간 어머니가 10년 만에 돌아올 때까지는 사랑하지만 아픔이었던 가족들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온 뒤부터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진을 통하여 아픔을 직시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에 얽힌 이야기들 사이에는 가족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이야기와 관련된 장면을 담은 사진이 곁들여졌습니다.
가족들의 모습이라고 해서 예쁜 모습이 아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이 담겨있어, 읽어가다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역시 작가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원고를 최대한 살린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전후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나타나면 읽는 흐름이 흩어지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은 아빠의 얼굴로 빼곡하다(13쪽)’는 부분에서 ‘빼곡하다’라는 단어를 끌어온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빼곡하다’라는 형용사는 ‘사람이나 물건이 어떤 공간에 빈틈없이 꽉 찬 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식의 얼굴이 필자의 얼굴에 아빠의 얼굴이 빈틈없이 꽉 차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모습이 아빠의 얼굴 그대로 닮았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빼다 박았다’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땅에 박혀 있는 물건을 빼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박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빼닮다’ 혹은 ‘빼쏘다’라는 우리말을 쓰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이를 가졌을 때 누군가를 깊게 미워하면 그 얼굴을 닮는다’라고 했다는 엄마의 말에 이어진 생각입니다. 흔히 자식들의 모습이 부모의 모습을 빼닮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엄마의 얼굴을 닮는 자식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아이의 엄마는 임신했을 때 자신을 깊게 미워한 것일까요?
양치할 때 잇몸에서 피가 샐쭉 튀어나왔다는 대목도 ‘샐쭉’이라는 단어가 ‘어떤 감정의 표현으로서 입이나 눈을 한쪽으로 샐긋하고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자리가 아닐 듯싶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친구와 부하직원의 배신으로 망했을 때도, ‘우리 집은 한순간에 풀썩 주저앉았다’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집은 한순간에 폭삭 망했다’라고 보통 말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뭔가 다른 느낌을 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사업실패에 이어 미국 이민,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수감생활, 아버지의 교통사고 등등 작가의 가족들이 겪어내야 했던 신산한 삶의 궤적들은 연대기를 꿰맞출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적당히 감추고, 포장하고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으면서 이를 극복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작가의 생각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후기를 대신하여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전하는 ‘친애하는 당신에게’라는 글을 말미에 달았습니다. 그 끝을 보면, “이제는 슬픔을 곁에 두고자 합니다. 그 또한 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전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던, 끝내 들리고 싶은 모습을 이 책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저의 시간을 드릴게요. 이 책을 덮으면 당신의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이에요. 아린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다정한 세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런 작가의 마음과 달리 독후감을 그리 다정하게 쓰지 못해서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