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의 나라에서 온 편지
월터 웽거린 주니어 지음, 이명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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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의 투병과 관련된 책에 관심을 두었던 적도 있었기는 합니다만, 최근 이 분야의 책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집안에 암환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달포전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의심된다고 해서 내시경검사를 받으셨습니다. 검사결과 위암이 확실해졌는데 수술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검사결과를 알려드려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요즈음 위암은 새로운 치료방법들이 많이 개발되어 5년 생존율이 좋아졌기 때문에 위암 가능성을 담아서 수술을 받으셔야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친구에게 수술을 부탁하고 날자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수술전 검사에서 폐에도 종양이 있고, 엉치뼈와 부신에 전이가 된 병소가 발견된 것입니다. 당연히 날자까지 받아둔 수술을 취소하고 폐종양의 조직검사를 했는데, 검사결과가 폐암으로 나온 것입니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입니다. 일단은 폐암에 대하여 약물치료를 우선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건강하신 편이라서 약물치료에 대한 심각한 부작용은 아직 없습니다. 여섯 차례로 예정된 항암치료를 어려움 없이 받으시고 위암에 대한 수술여부는 다시 결정하기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암치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환자의 삶이 끝난 것처럼 비관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하버드대학의 혈액종양내과 제롬 그루프먼교수의 <희망의 힘; http://blog.joinsmsn.com/yang412/4861986>에서 읽었던 병리학의 조지 그리핀박사의 투병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아주 치료가 어려운 타입의 위암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지박사는 “치료를 받아야 불필요한 고통만 더할 뿐이다. 나는 물론이고 식구들한테도 거기다가 뻔히 죽을 사람한테 왜 사회의 돈을 낭비하느냐”고 볼 수도 있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랄 만큼 강력한 항암치료를 받고 살아남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치료에 임하는 환자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암의 나라에서 온 편지>는 집안 어르신처럼 폐암으로 진단받고 투병 중에 있어 더욱 관심이 가는데다가 목사라는 신앙인으로서 다른 암환자에게 암투병의 마음가짐을 예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암의 나라에서 온 편지>는언젠가는 자신이 암으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이야기가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그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이유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가 쓴 스물 두 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일이라는 것, 병으로 인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지게 됩니다. “이 병이 두 번째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게 하소서, 내 몸에서 자라기 싲가한 것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새로워지게 하소서.(37쪽)”라고 기도하면서 몸에 생긴 암덩어리를 싸워서 이길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갈 운명체로서 이해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환자인 저자가 자신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마음을 울리게 합니다. “이 편지는 친구들에게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네. 암이라는 모험에 뛰어든 환자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의사들에게도 보내는 것일세. 자네가 의사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나? 자네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내게도 알려 줄 텐가? 자유와 지혜와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을 내게 숨기려나? 의사들이여, 제발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오. 자네들이 현명한 처신이라 여기고 지키는 침묵이 나의 위엄을 해치고 나의 지혜를 제한한다오. 내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지혜와 선택을 제한한다오. 자네들이 내게서 빼앗는 것은 절대로 작은 것들이 아니라오. 그건 마치 꼭 필요한 장기를 자네들 마음대로 잘라내는 것과 같다오.(123쪽)”

 

‘익숙해져라’ 환자의 선친께서 이른 대로 그리고 환자의 주치의가 이른 대로 암과 익숙해지시는 법을 깨닫게 도와드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치료의 진행사항과 예후 등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대로 전할 생각입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일을 계획하신대로 처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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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사라진 알베르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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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이벤트 문화버킷리스트를 시작하면서 과연 죽기 전에 보거나 듣고 싶은 책이나, 영화, 음악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절한 문화상품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몇일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영화부문에서는 딱히나 집히는 것이 없었지만, 음악은 하나 있습니다.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무대에 올렸던 손톤 와일드의 연극 <우리읍내>에 삽입곡으로 주인공의 장례식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같이 불렀던 죽음에 관한 무거운 노래입니다. 가사도 거의 잊었습니다만, “오너라 오려무나, 죽음이여~~~” 이런 가사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연을 같이 했던 배우들을 만나면 들을 수 있겠지만, 극중에서 들어야 그 느낌이 그대로 살 듯 하여 아무래도 후배들이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읍내>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읽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사라진 알베르틴>편에서 다루고 있는 알베르틴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저자의 두려움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루스트가 젊어서부터 천식을 앓았는데, 천식의 증상인 기침은 발작이 일어나면 숨이 넘어갈 듯한 공포가 엄습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5편에 이를 때까지 할머니의 죽음이나 가깝게 지내던 스완씨의 죽음 등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간략하게 지나친 것은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저자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 점이라 하겠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할 ‘죽음’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여 보려는 간절함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라진 알베르틴’편은 알베르틴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전편인 ‘갇힌 여인’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을 고쳐보려는 주인공의 노력을 담고 있어서인지 ‘갇힌 여인’에는 ‘소돔과 고모라 III①’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사라진 알베르틴’에는 ‘소돔과 고모라 III②’라는 작은 제목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갇힌 여인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사라진 알베르틴에 이르러서는 알베르틴에 대한 주인공의 변덕이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베르틴을 파리의 집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한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고 그녀의 동성애적 성향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하다가도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식으로 엮어가던 ‘갇힌 여인’보다 더 극적이었던 것은 알베르틴이 집을 나가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는 주인공은 친구 생 루를 특사로 파견하는 한편, 알베르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녀를 밀어내려는 척하면서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이를 곡해한 알베르틴도 버티는 소위 밀당이 진행되다가 느닷없이 그녀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요즈음 우리네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또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주인공은 당장 달려가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고 슬픔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발베크의 호텔 급사 에메를 보내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는 치졸함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비탄에 빠진 주인공이 알베르틴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은 이야기만 해도 얼마나 되는지 인내심을 다시 시험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그리고서 알베르틴의 동성애 상대였던 앙드레를 끌어들여 관계를 맺거나 새로운 여성에 눈길을 돌리는 모습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벗기고 벗겨도 새로 드러나는 양파껍질처럼 알베르틴의 동성애 취향에 연루된 사람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요즈음 우리나라의 드라마적 요소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샤를뤼스씨의 동성애 상대가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행적에 등장한다거나 생 루의 결혼생활을 파경으로 몰고가려 나선다거나 하는 등의 상황전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의 말미에 덧붙여 둔 ‘드레퓌스 사건’은 조지 D 페인터의 <마르셀 프루스트 전기>중의 제13장 ‘드레퓌스사건’을 옮겨둔 것이라고 하는데, 원전에 있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번역과정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은 프루스트의 전기에서 옮겨온 탓에 사건의 전말을 가감없이 요약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레퓌스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다보니 작가의 지병의 영향도 있는 듯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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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 - 사람과 개가 함께 나눈 시간들
이강원.송홍근.김선영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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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분들이 책을 내셨습니다. 워낙이 개를 비롯해서 애완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인데 특히 개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오랫동안 해 오시다가 드디어 일을 내셨습니다. 아내가 개를 특히 무서워하기 때문에 저도 특별한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닙니다만 책을 읽고서 다음과 같은 추천의 말씀을 적어 드렸습니다. “인간과 개의 관계사(史)를 다뤘다. 거꾸로 읽으면 개를 통해 본 인간 문명사다. 저자들은 동서고금을 종횡무진 오가면서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사귄 벗을 들여다 봤다.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저자들이 이 책을 준비할 무렵 유난스럽게도 개에 대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25418>입니다. 지금은 대표적인 반려동물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만, 개가 인간의 삶에 끼어들게 된 배경으로부터 지금의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 과정을 치밀하게 뒤쫓고 있는 책입니다.

 

‘사람과 개가 함께 나눈 시간들’이라는 부제를 단 <Dog>는 특히 개 품종에 따라서 얽혀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품종이 탄생한 배경 등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분 가운데 키우는 개의 역사를 확인해보실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많은 컬러 사진자료를 같이 넣어서 개품종과 모습을 연결해볼 수 있기 때문에 공부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개가 주인공이 되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크게 기여한 개의 이야기가 나오는 엠마 타운센트의 <다윈의 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17614>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콜로라도 야영지에서 만난 떠돌이 개와 함께 한 생활을 담담하게 그려간 테드 케라소티의 <떠돌이 개와 함께 한 행복한 나의 인생;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80779> 역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책이 등장하는 개들의 품종과 성품 등을 인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습니다. 그리고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에서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만, 개가 사람들의 삶에 편입되는 과정을 서론이나 총론으로 정리해서 모두에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혹시 이 부분이 궁금하신 분들은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를 식용으로 하는 문화를 비난하는 서구인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 사건들도 이 책에서 처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잘잘못을 따지겠다거나 변명을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초로 남극 탐험에 성공한 아문젠 탐험대가 주요 운송수단으로 썰매개를 활용하면서도 필요하면 썰매개를 죽여 동료들의 사료로 주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대원들이 먹기도 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개를 식재료로 쓰고 있는 나라가 지금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납니다. 타국의 문화를 자신의 문화와 비교하여 비난하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최근 독도 영유권문제, 2차 세계대전 기간중 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이 전쟁기간 중에 군수물자로 사용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토종견을 말살하기에 이르러 삽살개나 댕견과 같은 세계가 주목할만한 개품종이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의 원고가 빛을 보기 전에 <캉스독스; http://blog.donga.com/kangsdogs>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통하여 개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왔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내용이 블로그를 통하여 블로그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만,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 역시 꾸준하게 블로그를 통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독자들은 한 번 찾아보기기 바랍니다.

 

앞서도 아내가 개를 무서워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애견인들 가운데는 남들의 입장은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 대하여 저자들은 “개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개만 보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슬기롭게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99쪽)”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애견인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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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 - 세계인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전하는 희망의 초대장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14
류태형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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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출판이 기획해서 내놓고 있는 롤모델시리즈로,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님의 오늘이 있기까지를 뒤쫓은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명진출판의 롤모델시리즈의 기획의도 가운데 울림이 있는 구절을 옮겨 봅니다. “어른들은 모두 할 일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꿈을 보살피고 키워주는 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세계인과 나란히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꿈을 크고 넓은 비전의 토양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롤모델시리즈에서 다룬 세계인의 면면을 보면, 미국대통령 오바마를 비롯하여 스티브 잡스, 워렌 버핏, 힐러리 클린튼, 오프라 윈프리, 후진타오 등 동서양을 망라해서 청소년들에게 삶의 등대가 될만한 분들을 다루어왔고, 한국인으로는 고 김수환추기경님과 반기문 UN사무총장님 등의 이야기를 내놓고 있습니다.

 

음악전문지 <객석>의 편집장을 지낸 바 있는 류태형님이 집필을 맡은 정명훈 지휘자의 이야기에서 진한 여운으로 남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으로 이루어진 정트리오는 음악을 잘 모르는 저도 잘 알고 있을 정도이며 이들의 형제들 역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 알아챈 어머니의 헌신적 뒷바라지를 통하여 이들의 재능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재정적 지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에 있어 정신적 지주였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열 네 살 때 시애틀에서 열린 첫 독주회에서 실수를 한 명훈에게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위로했다는 것입니다. “명훈아, 난 네가 단지 정확한 연주를 했다는 평을 받기보다는 실수를 하더라도 청중에게 감동과 설렘을 주는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91쪽)” 이런 일화를 비롯하여 이 책에서는 특히 세계적 지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정명훈님이 걸어온 발자취는 물론 음악과 우리나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연전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서 막연하던 지휘자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구체화된 바 있습니다만, 프롤로그를 통하여 지휘자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휘는 우리가 말하는 리더십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휘는 정치와도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공자가 설파했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적용되는 일입니다. 지휘자가 자기 소신을 수양하고 확고한 철학으로 음악을 해석해야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대한 화음으로 열매를 맺게 되지요.(8쪽)”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만, 음악분야에서 세계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려면, 재능을 타고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과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때를 만나지 못해 화사한 꽃을 피우지 못하고 봉오리 상태로 져가는 인재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로 정명훈님이 시애틀에서 첫 번째 멘토 제이콥슨여사와의 만남이 그런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정명훈님의 어려운 집안형편을 고려하여 레슨비도 받지 않으면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 제이콥슨 여사는 “네가 단지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한다면, 나는 너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너 역시 굳이 내게 배울 필요가 없단다. 연주 기술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아주 많으니까. 그러나 네가 피아니스트를 넘어 음악가가 되고자 한다면 내 제자가 되렴.(68쪽)” 역시 좋은 선생님은 좋은 제자의 재능을 제대로 평가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정명훈 마에스트로의 성공비결로 음악가로서의 한결같은 직업의식과 유연한 리더십을 꼽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그의 명성을 알리게 된 데는 그의 인내심과 단원들과의 소통을 첫 번째로 삼은 그의 열린 리더십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력있는 단원을 뽑기 위하여 단호한 선택을 했다는 점도 역시 주목할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파리의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로마 산타 체실리아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해오면서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만큼은 잊은 적이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직을 잠시 맡게 되는 과정이나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직을 맡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음악도 애국이 될 수 있다.(335쪽)’고 하신 독립운동가 외할아버지의 정신이 오롯이 그의 핏속에 살아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나라 혹은 단체보다 개인을 앞세우는 요즈음 젊은이들이 꼭 배웠으면 싶은 정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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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스캔들 - 키스의 문화와 예술, 그 상상력 읽기
윤향기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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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를 기억하십니까? 그 첫 키스의 기억은 당신만의 비밀인가요? 아니면 당신 주위에 계신 분들도 모두 알고 있나요. 소중하게 간직할 사랑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마치 전리품처럼 떠벌이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예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흔히 첫 키스는 언제 해보았느냐는 질문을 미끼로 던지는 세태입니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상대가 누군지 등 그 사람의 애정행각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순서로 진행되곤 합니다.

 

출연자들은 마땅한 이야기 거리가 없으면 자신의 연애사를 거침없이 터뜨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다음 날 아침 신문의 연예란에 주먹만한 글자로 대서특필되기도 합니다. 그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사전에 허락은 받은 것일까 궁금합니다.

 

만해 한용운님께서는 <님의 침묵>에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라고 적어 첫 키스의 순간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작지 않음을 가늠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 키스의 추억도 두 사람만의 비밀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윤향기시인의 <키스 스캔들>에서 다루고 있는 키스가 되겠습니다. 첫 키스라 함은 어느 아기라도 예쁘기만 한 시절, 가족 혹은 친지로부터 받는 뽀뽀를 이르는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얼마나 다양한 키스의 종류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윤향기시인은 메모리된 키스가 워낙이 다양하다면서 버드키스, 크로스 키스, 햄버기 키스, 에어클리닝 키스, 슬라이딩 키스, 인사이드 키스, 프렌치 키스, 이팅 키스, 와이드스페이스 키스 등 대표적인 9가지 형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스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단단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혹한 사람이 나고 죽는 것보다 더 오래된 옹알이 소리가 그 속에는 들어있다.(22쪽)”고 적고 있어 종류와 느낌을 조합하면 같은 느낌의 키스는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키스가 무의식적 본능에서 표출되는 하나의 기호로서 “누군가에게는 환희의 기호로, 누군가엔 더할 나위 없는 슬픔으로 표현되는 저항, 방어, 광기, 도취, 매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통합, 회복의 힘이 옵션으로 들어 있다.”고 프롤로그에 적고 있습니다. 저자의 남다른 흥미와 관심으로부터 배태되어 오랜 노력 끝에 탄생한 <키스 스캔들>을 통하여 키스의 종류와 연원과 의미변천을 명화와 명시를 통해 생물학, 인류학, 문화심리학,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감상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합니다.

 

연희원교수님의 <에코의 기호학;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10610>을 통하여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이 공유할 수 있는 점을 소개드린 적이 있습니다. 에코의 기호학적 방법론과 세계관을 적용하여 예술과 미의 보편적 전달가능성에 대한 기호학적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21세기에는 순수미술과 대중미술을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과거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하녀처럼 봉사했지만 현대 대중미술은 대중들과 함께 걷는다.(176쪽)”라고 정리하고 있는 윤향기 시인께서도 공감하는 부분 같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 아트 개념 속의 몸은 상품으로서의 섹슈얼리티로 포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클림트, 뭉크, 실레, 브랑쿠시, 마그리트, 비어즐리, 루벤스, 워터하우스 등 대가들이 키스를 소재로 하여 그린 명화를 씨줄로 하고, 다양한 작가들의 시(詩)는 물론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키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날줄로 엮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윤향기 시인께서 독자들을 위하여 카르페디엠, 소울 푸드, 에로티시즘, 팜므파탈, 타나토스, 에로스 등 무려 열두 가지나 되는 키스의 성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가질듯한 ‘인간은 왜 키스를 하는가?’하는 원초적 궁금증에 대하여 저자는 “사회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행동은 촉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살피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생물학자들은 키스를 교환하는 것은 소금기를 얻으려는 시도로부터 유래됐다고 분석한다.(17쪽)”고 적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생물학자들의 주장은 너무 메마른 사고의 결과로 보여 혹시 허점은 없을까 심각하게 연구해봐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에드바르트 뭉크가 키스를 소재로 하여 그린 여러 점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은 미술에 문외한인 저도 알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절규>가 제작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1893년 어느 날 황혼 무렵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데, 피오르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 지고 있어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이 정경을 보는 순간 뭉크는 갑자기 알지 못하는 슬픔에 휩싸이면서 불안감이 엄습하여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난간에 기대어 검푸른 피오르드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듯한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잠시 지켜보던 친구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뭉크는 공포에 떨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갈이 찢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이 날의 강렬한 느낌이 <절규>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다음 블로그 ‘금모래 사진 겔러리’ 자료를 다시 구성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jdchung5/3366489) 뭉크의 <절규>는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고,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하니 오슬로에 가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

 

뭉크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우울증을 앓던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사를 비롯하여 세 살 연상의 유부녀와의 사랑이 실패하면서 생긴 정신적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부분입니다. 뭉크가 명성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전시회 때마다 혹평이 뒤따랐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자가 인용한 “나는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두 가지 적을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폐병과 정신병이었다.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천사들이었다.(36쪽)”고  한 뭉크의 말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질투>라는 제목으로 된 작품에 대하여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방은 뭉크의 무의식이고, 뒤의 두 남녀는 마음속에서 일어난 상상을 그린 것이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미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안주하지 못한 채 흔들거리는 사내가 한없이 무기력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왼쪽 눈은 분노, 오른쪽 눈은 절망으로 이글거린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그녀의 포식본능을 새장 안에 가두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40쪽)” 욕망 혹은 호기심이 바깥으로 향하는 연인을 붙들어 매려는 노력은 마르셀 푸르스트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갇힌 여인>에서 알베르틴과의 숨바꼭질을 통하여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쉽게 이해가 됩니다만, 화가의 제작의도가 함축적으로 담기는 회화작품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제 눈으로는 <질투>에서 뭉크의 간절함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팜므파탈적 키스를 논하고 있는 ‘위험한 욕망의 키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세례 요한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 살로메를 그리고 있는 회화작품들과 오스카 와일드의 시 <살로메>가 눈길을 끕니다. “당신의 입술에서는 쓴 맛이 나는군. / 피 맛인가? 아니야! 사랑의 맛이겠지. / 사랑이 쓴 맛이라지.” 하지만 섬뜩한 느낌을 주는 오브리 빈센트 비어줄리의 <살로메> 연작이나 막스 클링거의 <율리우스 살로메>와는 달리 뤼시앵 레비 뒤르메르의 <살로메>는 마치 잠든 연인에게 살짝 입을 맞추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은 파스텔화 특유의 분위기도 한 몫을 한 것이겠지만, 세례 요한의 목을 다정하게 감싸는 듯한 살로메의 포즈도 기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불온한 쾌락의 키스’라는 범주에 넣은 이야기들 가운데, 한트 세발트 베함의 <키스>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딱히 불온하다싶은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 사이의 안타까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사쿤달라>의 배경이 되는 인도의 고전희곡 <샤쿤탈라>의 스토리 역시 고난을 겪게 되는 남녀가 종국에는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카미유의 동생 폴의 작품해설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남자는 무릎을 꿇었고, 욕망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이 남자는 고개를 들고, 감히 잡을 수 없는 이 놀라운 존재를, 저 높은 곳에서 그에게로 추락한 이 신성한 육체를 열망하며 껴안는다. 눈멀고 귀먼 이 여인은 사랑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굴복하고 만다. 이 보다 더 강렬하고, 동시에 정결한 작품을 본다는 것을 일을 수 없다.(49쪽)” 물론 이러한 해설에는 누이 카미유에 대한 위로가 포함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키스는 성적 친밀감의 원초적 본능이다.”라고 시인은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키스를 통해 관능의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 놓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가 풀어놓은 키스의 미학을 제대로 알려면 미학에 관한 기본적 지식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미학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미(美)란 크기와 질서가 잡힌 배열에 근거한다.(미학산책 43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18284)”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사물의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미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미의 대상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보는 이가 마음으로 미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고전적 개념의 미학이라 하겠습니다. 반면 뭉크의 예에서도 보는 것처럼 현대 화가들의 작품은 전문가의 설명이 곁들여지면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미학, 특히 현대 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전문가들의 설명을 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기억해 두어야 할만한 점은 있습니다. 로저 킴볼은 예술사에 정치적 개입을 경계하면서도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온갖 종류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요소들이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61쪽;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66017) 다만 생생한 기운의 중심은 작품 자체가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예술사가 아니라 일종의 자서전 혹은 정치적 설교가 되어버리고 말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언제쯤 키스를 해보셨습니까? 혹시 너무 오래되어 키스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가요? “당신이 일상에서 잊어버린 키스!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영혼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 키스! 生의 에너지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키스에는 요란한 온도와 불빛이 있다. 그것은 때로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신비롭다.(53쪽)“고 합니다. 그러니 하던 대로 사랑하고, 하던 대로 그래도 키스를 하라고 윤향기 시인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키스는 바로 치유인 동시에 휴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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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10-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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