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사라진 알베르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예스24에서 이벤트 문화버킷리스트를 시작하면서 과연 죽기 전에 보거나 듣고 싶은 책이나, 영화, 음악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절한 문화상품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몇일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영화부문에서는 딱히나 집히는 것이 없었지만, 음악은 하나 있습니다.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무대에 올렸던 손톤 와일드의 연극 <우리읍내>에 삽입곡으로 주인공의 장례식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같이 불렀던 죽음에 관한 무거운 노래입니다. 가사도 거의 잊었습니다만, “오너라 오려무나, 죽음이여~~~” 이런 가사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연을 같이 했던 배우들을 만나면 들을 수 있겠지만, 극중에서 들어야 그 느낌이 그대로 살 듯 하여 아무래도 후배들이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읍내>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읽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사라진 알베르틴>편에서 다루고 있는 알베르틴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저자의 두려움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루스트가 젊어서부터 천식을 앓았는데, 천식의 증상인 기침은 발작이 일어나면 숨이 넘어갈 듯한 공포가 엄습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5편에 이를 때까지 할머니의 죽음이나 가깝게 지내던 스완씨의 죽음 등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간략하게 지나친 것은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저자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 점이라 하겠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할 ‘죽음’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여 보려는 간절함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라진 알베르틴’편은 알베르틴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전편인 ‘갇힌 여인’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을 고쳐보려는 주인공의 노력을 담고 있어서인지 ‘갇힌 여인’에는 ‘소돔과 고모라 III①’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사라진 알베르틴’에는 ‘소돔과 고모라 III②’라는 작은 제목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갇힌 여인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사라진 알베르틴에 이르러서는 알베르틴에 대한 주인공의 변덕이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베르틴을 파리의 집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한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고 그녀의 동성애적 성향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하다가도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식으로 엮어가던 ‘갇힌 여인’보다 더 극적이었던 것은 알베르틴이 집을 나가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는 주인공은 친구 생 루를 특사로 파견하는 한편, 알베르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녀를 밀어내려는 척하면서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이를 곡해한 알베르틴도 버티는 소위 밀당이 진행되다가 느닷없이 그녀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요즈음 우리네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또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주인공은 당장 달려가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고 슬픔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발베크의 호텔 급사 에메를 보내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는 치졸함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비탄에 빠진 주인공이 알베르틴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은 이야기만 해도 얼마나 되는지 인내심을 다시 시험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그리고서 알베르틴의 동성애 상대였던 앙드레를 끌어들여 관계를 맺거나 새로운 여성에 눈길을 돌리는 모습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벗기고 벗겨도 새로 드러나는 양파껍질처럼 알베르틴의 동성애 취향에 연루된 사람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요즈음 우리나라의 드라마적 요소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샤를뤼스씨의 동성애 상대가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행적에 등장한다거나 생 루의 결혼생활을 파경으로 몰고가려 나선다거나 하는 등의 상황전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의 말미에 덧붙여 둔 ‘드레퓌스 사건’은 조지 D 페인터의 <마르셀 프루스트 전기>중의 제13장 ‘드레퓌스사건’을 옮겨둔 것이라고 하는데, 원전에 있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번역과정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은 프루스트의 전기에서 옮겨온 탓에 사건의 전말을 가감없이 요약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레퓌스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다보니 작가의 지병의 영향도 있는 듯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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