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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삶이 흐르는 대로 - 영원하지 않은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해들리 블라호스 지음, 고건녕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밀리의 서재에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일 것 같습니다. 22살이 되던 해 일을 시작한 9년차 간호사인 해들리 블라호스는 외조부가 장의사였던 까닭에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고등학생 시절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실의 충격에 혼란을 겪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호스피스 간호를 시작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과 임종에 관한 오해와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 누리망 사랑방을 마련하고 호스피스 간호사 활동을 통하여 경험한 이야기들을 공유하여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이 흐르는 대로>에서는 저자가 호스피스 활동을 통하여 겪은 잊지 못할 열두 명의 환자들의 마지막 삶을 함께 한 과정을 담았다고 합니다. 호스피스(Hospice), 즉 임종간호는 의학적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받던 적극적 치료를 중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보살핌을 받는 활동을 말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간호활동과 호스피스 간호활동을 전혀 다른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즉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서는 회복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주어지는 적극적인 치료적 행위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이미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호스피스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저자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간호사가 되어 호스피스 업무를 시작할 때는 일주일 동안 누리망 수업을 통하여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뒤에 현업을 하는 간호사와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 심화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듯합니다. 즉 전문적으로 호스피스 업무를 배우는 체계가 아직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느낌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호스피스 관련 업무에서 완전하게 감을 잡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면서, 교육과정이 짧은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 옳은지 모호하다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호스피스 간호를 하면서 목격한 가장 놀라운 순간은 환자들이 세상을 등지는 시간을 스스로 택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샌드라는 마치 죽음을 맞기 전에 딸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버티다가 딸이 도착하자마자 세상을 떠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광경 역시 드물지 않게 목격했던 모양입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호스피스 간호사가 하는 역할은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일, 환자의 근심과 걱정을 달래고 위로하는 일,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일 등입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하여 저자는 환자들로부터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죽음을 앞두고 중요해진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지 등을 듣게 되었고, 이와 같은 대화를 통하여 그녀의 삶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훈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의 경우는 비만을 두려워하여 평생을 운동요법에 매달리면서 인생을 낭비해왔던 것이 가장 후회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저자에게 전하여, 식이장애로 삶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저자에게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시어머니의 사례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노숙하는 앨버트를 돌보는 과정에서 짚었던 “한때 깊이 사랑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깊이 사랑한 모든 것은 우리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321쪽)”라는 대목과 “나의 경험에 따르면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삶을 갈무리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은 사람, 사후 세계에 대한 자기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