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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 ㅣ 범우문고 49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 범우사 / 1991년 1월
평점 :
<바다의 선물>은 아내와의 인연을 맺게 한 특별한 책입니다. 누군가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난 뒤에 두 번째 만나기로 한 장소는 명동에 있는 어느 찻집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동의 동쪽 끝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내는 명동의 서쪽 끝에 있는 모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퇴근 시간이 빨랐기 때문에 지금은 없어진 명동서점에 들러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의 <바다의 선물>을 샀습니다.
대서양을 단독으로 처음 무착륙 비행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내인 그녀는 미국에서 최초로 비행면허를 취득한 비행사였고, 소설, 수필, 시집을 출간한 작가입니다. “바다는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욕심이 과하거나 너무 조급해하는 이에게는 선물을 내어주지 않는다. 인내와 신념, 이것이야말로 바다가 주는 가르침이다.”라는 출판사의 추천사에 마음이 끌렸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가서 책을 펼쳐보니 이미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바다의 선물>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대학에 다닐 때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뒤에 온 아내에게 이미 본 책을 샀다는 말에 아내는 다음에 만날 때 다른 책으로 바꾸어 오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덕분에 두 번째 만남이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소개 후에 세 번쯤 만나면 뜻을 밝혀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만남이 이어졌고, 결국은 결혼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린드버그 부부는 본가인 뉴저지주에 머물고 있을 때, 생후 20개월된 아들이 유괴된 끝에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겪게 되면서 영국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바다의 선물>은 두 사람이 영국에서 돌아와 코네티컷에 자리를 잡았을 때 쓴 책입니다. 어느 여름에 휴가를 외딴 섬에서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닷가란 독서하거나 집필 혹은 사색할 장소는 아니다.(19쪽)”이라고 시작합니다만, 곳이어 “처음에는 그렇다.”라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작가는 이런 바닷가에서 보낸 시간을 통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으니 첫인상과는 달리 바닷가는 책을 쓰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이겠지요.
작가는 외딴 섬의 해변에서 만난 소라고둥, 달고둥, 해돋이조개, 굴조개, 배낙지조개, 등 몇 개의 조개를 만나면서 사유의 날개를 펼친 끝에 여성의 삶을 정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성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대상이 남녀노소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활의 복잡다산이라는 문제는 유독 미국 여성만이 부닥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 남성도 역시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다.(33쪽)”라는 대목입니다.
소라고둥과 달고둥을 예로 들면서 여성의 문제를 살펴보다가 해돋이조개에 이르러서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외적 활동을 하는 남성들과 경쟁하는 데 골몰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샘을 소홀히 해왔다. 우리는 왜 남서을의 유한한 외면적 힘에 대결하기 위해 우리의 이 무한한 내면적 힘을 포기하는 유혹을 받아왔을까?(71쪽)”, “서로 다른 일을 가짐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초기의 열렬한 개인 대 개인의 관계 대신 직능적인 상호 관계로 변화하게 된다.(80쪽)”라는 대목처럼 말입니다.
배낙지 조개에 이르면 “어떤 ’고독한‘ 두 인간관계에서든 우선 ’상대를 위해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영웅적 업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힘을 합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114쪽)”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감정과 인간관계에서의 ’진실된 삶‘도 역시 단속적인 것이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순간순간을 똑같은 방법으로,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한다.(128쪽)”라고 한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면서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도록 조화롭고 충만한 단계에 이르는 것이며 간소하게 사는 것이라는 선물을 주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