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장지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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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자료조사를 했을 때 아그리젠토 출신의 루이지 피란델로가 193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 가운데 우선 고른 작품은 희곡으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한 인연도 작용했습니다.


희곡이면서도 특이하게 서문이 먼저 나옵니다. 주석을 보면 1921년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어렵다는 비평이 이어지자, 1925년 피란델로는 <나는 어떻게 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썼는가>라는 제목으로 극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코메디아에 발표했는데, 이후 출판되는 책에는 이 글이 서문의 형식으로 실리게 됐다고 합니다.


작가의 희곡작품 <역할놀이>를 연습하는 장소에 일가족 6명이 찾아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은 뒤에 한 명이 찾아오기 때문에 7명이 되는데, 뒤에 찾아온  인물은 작가를 찾는 것이 아니니 제목이 틀렸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들이 찾는 작가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6명의 등장인물은 사실 피란델로의 상상력으로 태어난 인물들인데, 이들의 사연은 가히 충격적인 탓에 처음에는 이들을 쫓아내려던 연출은 물론 기왕의 작품을 연습하던 배우들까지도 이들의 사연에 빠져듭니다.


6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연기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연출은 자신의 배우들에게 이들의 역할을 맡기게 됩니다. 배우들이 이들이 이야기한 사연을 연기하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이나 이야기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작가가 시, 소설, 희곡 등을 발표하면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독자나 연출의 몫이 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희곡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작품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역시 공연 때마다 수정된 까닭에 초본이 어느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란델로는 자신이 창조해낸 등장인물들이 혼자 스스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 6명의 등장인물들은 극중극의 형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중요한 점은 이야기의 기본틀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므로 변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작가 역시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극적인 효과를 강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변주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6명의 등장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아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이 되어 있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떻게 꼬이게 됐는지 모호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의 관계가 꼬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누가 제공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명의 등장인물들의 개성만큼은 분명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6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아버지와 의붓딸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고 강하게 대립하는 구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연은 연출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극적인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만, 극이 끝날 때까지 작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지  여부도 분명치 않습니다. 피란델로의 말대로라면, 이들 6명의 등장인물들은 피란델로가 창조해냈기 때문에 결국은 이들의 이야기가 극중극의 형태로 포함되는 연극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어렵다는 사실은 피란델로 역시 인정하고 있는데, 아마도 기존의 연극이 갖추고 있는 틀을 깨부슨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란 점이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준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면 전통극처럼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무대장식을 변경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터이니 등장인물 누군가가 무대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아야 힌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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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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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등단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로쟈 이현우 선생님과 함께 하는 펀트레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첫날 숙소에 들어 자정까지 읽어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가지는 위치때문에 이번 여행은 소세키로 시작해서 소세키로 마무리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정리해주는 화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은 그리스 극에서 합창단이라는 형식으로 등장하는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 극의 합창단은 이야기의 진행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청중의 이해를 돕기도 하고, 심지어는 등장인물에게 조언하는 등, 극진행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로소이다>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고양이는 극의 진행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고양이의 처지로 인간과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다는 한계때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마치 인간사처럼 설명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들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 바,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11)" 이와같은 고양이의 시각은 어쩌면 작가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나쓰메 소세키가 센다기초에 살 무렵 집에 흘러든 검은 아기고양이가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117일 아침에 찾아갈 예정인 소세키 산방이 있는 동네의 거리에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도. 작중의 화자인 고양이가 집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작중의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엄청 다양한  출처에 바탕하고 있는데, 하이쿠를 비롯한 다양한 일본 일본 작품들은 당연한 것이고, 중국의 고사들은 소세키가 한학을 배운데 기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은 물론 영국을 비롯한 대륙문학은 소세키가 영국에 유학할 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읽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했을 것입니다.


작중의 화자인 고양이는 진화의 결과로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럼에도 시원치않은 구석이 남아 있는데요. 예를 들면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미묘한 춤을 추게 되어 가족들의 놀림이 된다거나, 평소의 산책길인 울타리를 점령한 까마귀들에 밀려 아래로  떨어지는 볼썽 사나운 모습도 연출합니다. 이런 모습도 사실은 인간의 속성 가운데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설은 잡지 호토토기스에 도입부가 실렸을 때 독자의 호평을 받게  되면서 11회차까지 이어진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과정은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합니다. 1화에서는 "고백하건대 나는 고양이치고 그리 잘난 고양이가 아니다. 키도 그렇고 털도 그렇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다른 고양이들보다 잘났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14)"라고 겸양을 떨더니, 다음화에서는 "멍청한 주인은 아직도 모르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중얼거렸다. '올해가 고양이 해인가내가 그렇게 유명해졌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듯하다.(28)"라고 은근 자랑입니다.


과거 쪽대본을 바탕으로 연속극을 빠듯하게 제작할 때 그랬다거나,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들이 한 회차가 끝날 무렵 긴박하게 이야기의 줄거리가 요동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상당부분이 사전에 제작되기 때문에 이야기긴 사전에 기획된 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편입니다. <고양이로소이다> 역시 연재되던 소설인 탓에 막판뒤집기  식으로 커디난 반전이 일어납니다. 사업하는 가네다 집안의 영애와 관련하여 셋이서 작당하여 연서를 보낸 사건도 결말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이며, 영애와 혼담이 오가던 간게쓰가 고향에 갔다가 결혼을 해서 돌아온다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화자인 고양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커다란 물독에 빠져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슬픈 결말인데 이는 지병을 안고 버텨오던 작가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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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 범우문고 49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 범우사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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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은 아내와의 인연을 맺게 한 특별한 책입니다. 누군가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난 뒤에 두 번째 만나기로 한 장소는 명동에 있는 어느 찻집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동의 동쪽 끝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내는 명동의 서쪽 끝에 있는 모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퇴근 시간이 빨랐기 때문에 지금은 없어진 명동서점에 들러 읽을 만한 책을 찾다가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바다의 선물>을 샀습니다.


대서양을 단독으로 처음 무착륙 비행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내인 그녀는 미국에서 최초로 비행면허를 취득한 비행사였고, 소설, 수필, 시집을 출간한 작가입니다. “바다는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욕심이 과하거나 너무 조급해하는 이에게는 선물을 내어주지 않는다. 인내와 신념, 이것이야말로 바다가 주는 가르침이다.”라는 출판사의 추천사에 마음이 끌렸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가서 책을 펼쳐보니 이미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바다의 선물>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대학에 다닐 때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뒤에 온 아내에게 이미 본 책을 샀다는 말에 아내는 다음에 만날 때 다른 책으로 바꾸어 오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덕분에 두 번째 만남이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소개 후에 세 번쯤 만나면 뜻을 밝혀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만남이 이어졌고, 결국은 결혼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린드버그 부부는 본가인 뉴저지주에 머물고 있을 때, 생후 20개월된 아들이 유괴된 끝에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겪게 되면서 영국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바다의 선물>은 두 사람이 영국에서 돌아와 코네티컷에 자리를 잡았을 때 쓴 책입니다. 어느 여름에 휴가를 외딴 섬에서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닷가란 독서하거나 집필 혹은 사색할 장소는 아니다.(19)”이라고 시작합니다만, 곳이어 처음에는 그렇다.”라고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작가는 이런 바닷가에서 보낸 시간을 통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으니 첫인상과는 달리 바닷가는 책을 쓰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이겠지요.


작가는 외딴 섬의 해변에서 만난 소라고둥, 달고둥, 해돋이조개, 굴조개, 배낙지조개, 등 몇 개의 조개를 만나면서 사유의 날개를 펼친 끝에 여성의 삶을 정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성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대상이 남녀노소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활의 복잡다산이라는 문제는 유독 미국 여성만이 부닥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 남성도 역시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다.(33)”라는 대목입니다.


소라고둥과 달고둥을 예로 들면서 여성의 문제를 살펴보다가 해돋이조개에 이르러서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외적 활동을 하는 남성들과 경쟁하는 데 골몰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의 샘을 소홀히 해왔다. 우리는 왜 남서을의 유한한 외면적 힘에 대결하기 위해 우리의 이 무한한 내면적 힘을 포기하는 유혹을 받아왔을까?(71)”, “서로 다른 일을 가짐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초기의 열렬한 개인 대 개인의 관계 대신 직능적인 상호 관계로 변화하게 된다.(80)”라는 대목처럼 말입니다.


배낙지 조개에 이르면 어떤 고독한두 인간관계에서든 우선 상대를 위해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영웅적 업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힘을 합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114)”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감정과 인간관계에서의 진실된 삶도 역시 단속적인 것이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순간순간을 똑같은 방법으로,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한다.(128)”라고 한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면서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도록 조화롭고 충만한 단계에 이르는 것이며 간소하게 사는 것이라는 선물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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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음 더모던타임즈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활란 옮김 / 더모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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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다루어질 예정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정신적 지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가 만년에 쓴 작품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이 책을 권합니다.”라고 이 작품의 성격을 한 줄로 요약했다고 합니다. 마치 심리의학이나 정신의학의 치료요법서 같은 느낌이 절로 나는 듯합니다만, 지병으로 죽을 고비에 이를 때마다 생을 돌아보았을 작가는 말년에 이르러 죄의식이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을 듯합니다. <마음>에서는 화자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모두 여덟 명의 죽음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무렵 작가는 죽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19144월부터 8월까지 도쿄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신문소설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등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화자는 도쿄 인근의 가마쿠라 해변에서 선생님의 처음 만나게 됩니다. 대학에 다니던 화자는 친구의 초청으로 가마쿠라에 가게 되는데, 정작 친구는 곧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혼자 남은 화자는 그냥 가마쿠라에 남아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더위가 한창인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은 바다가 온통 검은 머리로 가득 찰 정도로 혼잡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은 선생님이 서양인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서양인 때문에 관심을 두게 된 선생님이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이 더해지고, 결국은 조우해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며칠을 두고 접근해볼 기회를 엿보던 끝에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데, 무심하던 선생님이 그만 돌아갈까?’하고 이야기를 건네 오면서 화자는 선생님과 가까워질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인연을 도쿄에서까지 이어가게 되었다는 설정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앞으로 가끔 댁으로 찾아봬도 될까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끌리는 무엇이 있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아오던 선생님이 화자에게는 문을 열어준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작가가 설명해놓은 대목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무뚝뚝한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태도는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자신은 가까이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니 그만두라고 경고한 것이다.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보다 자신을 경멸했기 때문에 인정에 이끌리지 않은 것이다.(16)‘


그런데 화자가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나누는 이야기를 보면 선생님에 대한 화자의 관심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선생님의 과거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 댁에 찾아갔던 날 혼자서 K의 묘지에 찾아갔다는 사모님의 설명이 화자의 관심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옛날이야기를 해달라는 화자의 요청에 답을 훗날로 미루어 놓고 맙니다.


화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집을 찾아 졸업장을 부모님께 보여주는데, 부모님은 동네잔치를 제안하여 화자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고향동네에는 특별한 일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하하는 관습이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화자가 양보하여 동네잔치를 열기로 하는데, 그 와중에 신장병을 앓던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해지는 바람에 잔치를 미루게 되고, 화자는 아버지를 간병하는 가운데 선생님으로부터 유서를 받게 됩니다. 병세가 뜸해진 사이에 급히 도쿄로 올라가면서 유서를 읽어보게 되는데, 유서의 내용은 언젠가 선생님이 화자에게 약속한 자신의 과거사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대학시절의 친구 K와 같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하숙집 딸과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K가 자살을 하게 된 것이 선생님의 삶을 외톨로 만들게 된 것이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자괴감이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관련된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이라서 정답이 따로 없는 터라 선생님의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나 K와의 관계를 고려했다면 먼저 K와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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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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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도쿄아사히 신문에 190891일부터 1229일까시 연재된 신문소설이라고 합니다. 일간신문에 매일 연재되는 신문소설은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하였는데 최초의 신문연재소설은 <인간 희극>으로 유명한 발자크의 <노처녀>183610월에 출간된 라 프레스라는 잡지에 실렸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뒤마의 <삼총사><몽테크르스토 백작>1844년에 인기있던 신문연재소설이었습니다.


일본의 사례에 따라 신문연재소설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06년으로 만세보에 연재된 이인직의 <혈의누>가 본격적인 신문연재소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필자가 젊었을 적에는 연재소설을 읽기 위하여 일간신문을 구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독자를 끌던 신문소설은 2000년을 전후하여 일간지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신시로>는 규수의 구마모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가와 신시로가 도쿄제국대학에 진학하여 고향을 떠나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가는 길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옛날의 일본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대중교통을 타게 되면 대체적으로 자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드물게는 책을 읽는 등 각자의 관심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트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열차에서 만난 남녀가 여관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는 장면도 나와서 놀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열차에서 도시락을 사먹고 쓰레기를 창밖으로 내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시로가 구마모토를 떠나 처음으로 기차를 타는 모습도 그렇고 동경에 도착해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1970년대에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대학에 다니던 저와 많았 닮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마치 신시로가 된 듯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다만 신시로가 등장인물들과 연결되는 과정이 고향에서 어머니가 소개해준 이과대학의 노노미야 선생을 찾아가는 과정을 빼고는 우연의 연속입니다. 예를 들면 도쿄로 올라가면서 기차에서 만난 남성을 동급생 요지로가 소개하는 히로타 선생이라는 것, 노노미야 선생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연못에서 만난 여성 미네코가 요지로나 노노미야 선생을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된다는 등입니다. 신시로가 미네코양을 만나는 도쿄제국대학의 호수는 이번 일본근대문학기해에서도 찾아갈 예정이라서 기대해봅니다.


이야기는 문과과정에 입학한 신시로가 학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없고 등장인물들과 엮인 일상이 이어지는데, 특히 신시로가 미네코에게 관심이 커져가는 과정이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이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독자의 기대와는 달리 미네코가 신시로를 머뭇거리게 만든 노노미야 선생도 아니고 뒤늦게 등장하는 제3의 인물과 결혼을 한다는 결말입니다. 이와 같은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서 젊었을 때의 제 모습이 겹쳐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다양한 화제거리가 등장한다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예를 들면 신시로가 노노미야 선생을 처음 만나던 날 광선이 압력을 가지고 있다는 실험이 소개된다는 것입니다. 미네코를 통하여 입센의 주인공과 비교하는 것을 보면 근대 일본이 서구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메이지의 사상은 서양의 역사에 나타난 300년의 활동을 고작 40년이라는 기간에 되풀이 하는 것이다.(37)’라고 설명합니다. 외국어는 물론 그리스어나 라틴어 경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식자연하는 경향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문예협회의 연극공연에서는 그리스 연극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화가 하라구치가 미네코를 화폭에 옮겨 <숲속의 여인>을 완성하는 과정 등 정말 다양한 소재가 이야기에 등장합니다앞서 적었습니다만,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는 신시로의 세계가 흥미롭습니다(106). 과거에 해당하는 하나는 요시로가 말한 이른바 메이지 15년 이전의 향기가가 나는, 과거의 이미 아는세계, 두 번째 세계는 이끼 낀 벽돌건물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이 쌓여 있는 책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알아가는세계, 세 번째는 전등이’, ‘은수저가’, ‘환성이’, ‘우스운 이야기가’, ‘거품이 이는 삼페인 잔이’, 그리고 그 모든 것 중 으뜸가는 것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미래의 알지 못하는세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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