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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의 등단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로쟈 이현우 선생님과 함께 하는 펀트레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첫날 숙소에 들어 자정까지 읽어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가지는 위치때문에 이번 여행은 소세키로 시작해서 소세키로 마무리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정리해주는 화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은 그리스 극에서 합창단이라는 형식으로 등장하는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 극의 합창단은 이야기의 진행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청중의 이해를 돕기도 하고, 심지어는 등장인물에게 조언하는 등, 극진행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로소이다>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고양이는 극의 진행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고양이의 처지로 인간과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다는 한계때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마치 인간사처럼 설명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들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 바,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11쪽)" 이와같은 고양이의 시각은 어쩌면 작가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나쓰메 소세키가 센다기초에 살 무렵 집에 흘러든 검은 아기고양이가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1월 17일 아침에 찾아갈 예정인 소세키 산방이 있는 동네의 거리에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도. 작중의 화자인 고양이가 집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작중의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엄청 다양한 출처에 바탕하고 있는데, 하이쿠를 비롯한 다양한 일본 일본 작품들은 당연한 것이고, 중국의 고사들은 소세키가 한학을 배운데 기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은 물론 영국을 비롯한 대륙문학은 소세키가 영국에 유학할 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읽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했을 것입니다.
작중의 화자인 고양이는 진화의 결과로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럼에도 시원치않은 구석이 남아 있는데요. 예를 들면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미묘한 춤을 추게 되어 가족들의 놀림이 된다거나, 평소의 산책길인 울타리를 점령한 까마귀들에 밀려 아래로 떨어지는 볼썽 사나운 모습도 연출합니다. 이런 모습도 사실은 인간의 속성 가운데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설은 잡지 호토토기스에 도입부가 실렸을 때 독자의 호평을 받게 되면서 11회차까지 이어진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과정은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합니다. 1화에서는 "고백하건대 나는 고양이치고 그리 잘난 고양이가 아니다. 키도 그렇고 털도 그렇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다른 고양이들보다 잘났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14쪽)"라고 겸양을 떨더니, 다음화에서는 "멍청한 주인은 아직도 모르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중얼거렸다. '올해가 고양이 해인가' 내가 그렇게 유명해졌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듯하다.(28쪽)"라고 은근 자랑입니다.
과거 쪽대본을 바탕으로 연속극을 빠듯하게 제작할 때 그랬다거나,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들이 한 회차가 끝날 무렵 긴박하게 이야기의 줄거리가 요동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상당부분이 사전에 제작되기 때문에 이야기긴 사전에 기획된 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편입니다. <고양이로소이다> 역시 연재되던 소설인 탓에 막판뒤집기 식으로 커디난 반전이 일어납니다. 사업하는 가네다 집안의 영애와 관련하여 셋이서 작당하여 연서를 보낸 사건도 결말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이며, 영애와 혼담이 오가던 간게쓰가 고향에 갔다가 결혼을 해서 돌아온다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화자인 고양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커다란 물독에 빠져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슬픈 결말인데 이는 지병을 안고 버텨오던 작가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