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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장지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9월
평점 :
지난해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자료조사를 했을 때 아그리젠토 출신의 루이지 피란델로가 193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 가운데 우선 고른 작품은 희곡으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한 인연도 작용했습니다.
희곡이면서도 특이하게 서문이 먼저 나옵니다. 주석을 보면 1921년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어렵다는 비평이 이어지자, 1925년 피란델로는 <나는 어떻게 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썼는가>라는 제목으로 극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코메디아에 발표했는데, 이후 출판되는 책에는 이 글이 서문의 형식으로 실리게 됐다고 합니다.
작가의 희곡작품 <역할놀이>를 연습하는 장소에 일가족 6명이 찾아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은 뒤에 한 명이 찾아오기 때문에 7명이 되는데, 뒤에 찾아온 인물은 작가를 찾는 것이 아니니 제목이 틀렸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들이 찾는 작가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6명의 등장인물은 사실 피란델로의 상상력으로 태어난 인물들인데, 이들의 사연은 가히 충격적인 탓에 처음에는 이들을 쫓아내려던 연출은 물론 기왕의 작품을 연습하던 배우들까지도 이들의 사연에 빠져듭니다.
6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연기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연출은 자신의 배우들에게 이들의 역할을 맡기게 됩니다. 배우들이 이들이 이야기한 사연을 연기하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이나 이야기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작가가 시, 소설, 희곡 등을 발표하면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오롯이 독자나 연출의 몫이 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희곡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작품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역시 공연 때마다 수정된 까닭에 초본이 어느 것인지 분명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란델로는 자신이 창조해낸 등장인물들이 혼자 스스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6명의 등장인물들은 극중극의 형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중요한 점은 이야기의 기본틀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므로 변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작가 역시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극적인 효과를 강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변주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6명의 등장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아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이 되어 있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떻게 꼬이게 됐는지 모호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의 관계가 꼬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누가 제공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명의 등장인물들의 개성만큼은 분명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6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아버지와 의붓딸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고 강하게 대립하는 구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연은 연출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극적인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만, 극이 끝날 때까지 작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지 여부도 분명치 않습니다. 피란델로의 말대로라면, 이들 6명의 등장인물들은 피란델로가 창조해냈기 때문에 결국은 이들의 이야기가 극중극의 형태로 포함되는 연극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어렵다는 사실은 피란델로 역시 인정하고 있는데, 아마도 기존의 연극이 갖추고 있는 틀을 깨부슨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란 점이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준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면 전통극처럼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무대장식을 변경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터이니 등장인물 누군가가 무대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아야 힌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