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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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이 모토지로(梶井 基次郞)의 단편소설집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제목이 주는 섬뜩한 느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N해안에서 만난 K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K의 죽음은 일본탐미주의단편선집에서 이미 읽어본 바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이과에 진학했지만 문학과 음악에 흥미를 느껴 대학은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초기에 치료에 소홀하게 되면서 병이 깊어졌고, 그때는 요양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투병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변화가 작품에 반영되어 그의 작품들은 사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탐미주의 계열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는 태평스러운 환자’, ‘칠엽수꽃-어떤 편지’, ‘바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겨울 파리’, ‘레몬’, ‘애무’, ‘작은 양심’, ‘K의 죽음’, ‘벚꽃 나무 아래’, ‘눈 내린 뒤’, ‘게이키지12편이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작품 태평스러운 환자의 주인공이 작가처럼 폐결핵을 앓고 있는데, 서너 편에서 결핵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표제작인 벚꽃 나무 아래에서는 벚꽃이 화사한 이유는 분명 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있어 뿌리가 수정 같은 수액을 빨아올린다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병상에서 구상된 것인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막연한 희망을 뒤쫓지도 않습니다. 히라타 지사부로(平田次三郞)는 가지의 모토지로의 작품은 병든 삶의 표현이었지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맑고 깨끗한 삶의 숨결이라고 했습니다.


애무에서는 고양이의 귀를 잡아당기거나 깨물기도 하고, 전철표 천공기로 구멍을 뚫는 상상을 하는데, 심지어 고양이의 주인은 발을 잘라 화장하는데 소도구로 사용하기까지, 끔찍한 상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태평스러운 환자에서는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하여 송사리를 다섯 마리씩 삼킨다거나, 인간의 뇌수 구이가 치료약이라고 소개하는데, 제가 어렸을 적에는 나병에 어린 아이의 간이 특효약이라 하여 나병환자가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도 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치의 병에는 무엇무엇이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을 작품에 반영한 셈일 것 같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 자신의 삶을 담은 소설을 일본에서는 사소설(私小說)이라고 합니다. 심경소설(心境小說)과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주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다야마 카타이(田山花袋)<후톤(蒲団)>이 사소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만, 히라노 켄(平野謙)1913년의 치카마스 아키에(近松秋江)<기와쿠(疑惑)>와 기무라 소타(木村莊太)<케닌(牽引)이 사소설이 확립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와카이(和解)>는 심경소설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객관적인 사실뿐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이 초점이 됩니다.


태평스러운 환자를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폐결핵 환자의 90%는 약다운 약도 없이 죽음을 재촉하는 형편이고 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병의 괴로움을 굳세게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쪽도 견딜 수 없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겨둘 만한 이야기입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폐결핵을 앓아 31살에 죽음을 맞은 천재작가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1907년 산조에 문을 열어 1940년에 가와라마치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한 마루젠 교토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의 무였습니다. 그래서 2005년 폐업하게 되었을 때는 교토 시민들은 이 서점의 예술서적 구획에 레몬을 놓아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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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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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기 <설국을 가다(가제)>의 최종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읽기 시작했던 책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였습니다. 책을 읽은 느낌은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추가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종호교수님이 수필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 실은 문학의 전락-무라카미 현상에 부쳐에서 학생들의 독서 경향을 알기 위해 필자가 읽어본 바로는 노르웨이의 숲은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다. 작품 속에는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고교 3년 남학생의 자살을 위시해서 수수께끼 같은 자살이 빈번하다. 또 성적인 문제로 좌절이나 일탈을 경험하는 일탈자들이 많고 성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성적인 얘기가 전경화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독자들의 허를 찌르기는 하나 성적으로 격리된 수용소 재소자들이 일상적으로 나눔직한 성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라고 했던 것에서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자의 정신적 성장을 그려본다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히지만 화자를 둘러싼 남성 혹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연성이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심지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끌어갈 힘이 떨어지면 그 인물을 사라지게 하거나 죽게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오래 전에 누리사랑방 친구가 쓰는 소설에서 느꼈던 점을 다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숲(Norwegian Wood)이 몇 차례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노르웨이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노르웨이의 숲이었을까요? 그 무렵 일본에서는 비틀즈의 노래를 노르웨이의 숲으로 소개했다고 하는데, 비틀즈 원곡의 제목은 노르웨이산 목재가구였다고 합니다. 숲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폴 매카트니 역시 회견을 통해 당시 유행하던 저렴한 노르웨이산 가구를 칭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의 가사에 꽂힌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도 한때 여자가 있었어/아니면 그녀가 한때 나를 가졌었다고 말해야 할까요?/그녀는 나에게 자기 방을 보여주었다/노르웨이산 목재 좋지 않나요?/그녀는 나에게 머물라고 했어요/그리고 그녀는 만에게 아무데나 앉으라고 하더군요/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그리고 보니 의자가 없더라구요/나는 양탄자 위에 앉아 시간을 기다리며/그녀의 와인을 마시며/우리는 2시까지 이야기를 했고 그 후 그녀가 말했어요/‘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야’/그녀는 나에게 일했다고 말했어.아침에 웃기 시작했다/나는 그녀에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어요/그리고 욕조에서 기어서 잠을 잤어요/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혼자였어/이 새는 날아갔다/그래서 불을 피웠어요/노르웨이산 목재 좋지 않나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래의 가사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에 펴낸 수필집 무라카미 잡문집에서 오역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제목이 갖는 중의성이 마음에 들어 제목으로 가져왔다고 했답니다. 또한 노랫말 가운데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이라는 부분에서 ‘Norwegian Wood’‘Knowing she would’로 바꾸어 불렀다면 그녀는 내게 방을 보여줬지. 얘가 대줄 거란 걸 아는 건 좋지 않아?“라고 해석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게 된 배경도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1988노르웨이의 숲으로 소개되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비틀즈의 노래 역시 내용의 저급함으로 방송금지 상태였기 때문이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학사상사에서 작가의 뜻과는 달리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하면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붙드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역시 시장에 내놓는 책의 성패는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린 것이 맞습니다.


항공사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특정 노래를 기내에 들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체코항공의 경우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2악장 블타바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함부르크 공항에 내리면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를 들려주는 비행사가 정말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시작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제나 전개가 전혀 공감을 주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나이들어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의 개인적 독서취향을 보건대 젊어서 읽었어도 크게 공감하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십대 시절 자살한 친구 기즈키의 연인 나오코에게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야라고 약속하고는 같은 수업을 듣는 미도리가 나는 살아 움직이는, 피가 흐르는 여자야.’라고 말하자 놓치기 싫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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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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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요리강습을 받으러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혼자서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이가 들어 자식들은 독립해 떠났는데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가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재혼도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밤에 우리 영혼은>은 배우자와 사별하고 각각 혼자 살아오던 70이 넘은 남녀가 어느 날부터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실험을 해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여성이 먼저 제안하고 남성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두 사람의 이런 행동은 금세 마을 사람들의 입초시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도 두 사람, 특히 여성인 에디 무어는 초연합니다. 이 나이에 남이 뭐라든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란 생각입니다.


애디가 루이스에게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내자는 제안을 하게 된 이유는 낮에는 일상적인 일을 하기때문에 문제없이 지내지만 밤이 되면 심해지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따듯하 손길이 잠드는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관계까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 비슷하지만 결혼은 아니고 가끔 밤에 루이스가 애디의 집으로 와서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서 소문은 금세 났고 마을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지만, 두 사람이 낮에도 식당에 함께 가서 식사를 하는 등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나서는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두 사람은 저녁에 만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공유합니다. 성장할 때의 이야기는 물론 결혼하게 되는 과정, 결혼생활 등. 두 사람은 모두 상대의 과거를 이해하는 쪽입니다. 심지어 루이스의 바람까지도. 결국 루이스는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거네요.(109)"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자식들입니다. 루이스의 딸은 잠시 걱정하다 말았지만 애디의 아들 진은 다른 반응입니다. 아내와 갈등을 빚어 아들 제이미를 애디에게 맡기게 됩니다. 소극적이던 제이미는 애디의 집에 와서 야구도 하는 등 활발해졌습니다.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는 제이미에게 문제가 되지않습니다.


진은 어렸을 적에 집에서 누이와 놀다가 짓궂게 쫓는 바람에 도로로 달아나던 누이가 차에 치어 숨지면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아버지가 누이의 죽음이 진의 책임인 것처럼 냉담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 배경 탓인지 진을 매사에 열린 마음은 아닌 듯합니다. 아내가 친정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제이미를 애디에게 맡겼던 것인데 아내와의 갈등이 풀어지면서 제이미를 데려갑니다.


제이미가 떠난 뒤에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짐작했을 터이나 사실 두 사람은 하지않았던 일, 성적으로 결합하는 일도 시도해봅니다. 서로를 안고, 애무해보지만 결합에 이르지 못합니다. 루이스가 발기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루이스는 애디가 실망했을까 걱정사지만 에디는 걱정하지말라고, 다음에 다시 해보자고 합니다.


진은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국 두사람이 만나지 말라고 강요를 하게됩니다. 애디도 아들의 강요를 수용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콜로라도에 있는 홀트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진행됩니다. 그런 까닭에 주민들 성향이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젊어서 아내가 살아있을 때 바람을 피웠던 적도 있어서 딱히 보수적이라 하기에도 조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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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
마르크 오제 지음, 서희정 옮김 / 황소걸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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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라는 소개글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은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노년에 쓴 수필집입니다. 마르크 오제는 젊었을 적에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토고에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이데올로기와 사회 조직, 종교, 주술 등의 주제를 다룬 저작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장년에는 비서구 사회에 대한 연구에서 서구사회로 연구범위를 확장하였는데, 전통적인 장소에 대비되는 비장소(non-places) 개념으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일상 속 행복은 마르크 오제가 노년에 이르러 인류학적 관점으로 쓴 행복에 관한 짧은 수필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문학작품, 샹송과 음식, 여행과 영화 등을 통해 풀어 썼다는 것입니다. 


제목 ‘일상 속 행복’은 프랑스어 제목 <보뇌르뒤주르(bonheur du jour)>를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였는데, 굳이 저자의 전공인 인류학자를 들먹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보뇌르뒤주르는 1760년 무렵 처음 등장한 작은 여성용 책상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책상과 화장대를 겸한 부인용 가구였습니다. 그 무렵 취미로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여성들이 하는 활동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데서 행복을 추구했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국제연합(UN)이 행복을 국가발전정책의 핵심과제로 삼았고, ‘사회적 행복’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국제행복전망대도 설립했다고 전합니다. 국제연합은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를 통해 세계 행복 순위도 발표합니다. 2024년 우리나라는 세계행복순위에서 143개국 가운데 52위에 올랐습니다. 7년 연속 1위에 오른 핀란드를 비롯하여 10위 이내에 든 나라들의 면면을 보면 개인의 삶의 만족도, 사회적 지지, 기대 수명, 관대함, 부정부패 유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산출한 국가별 행복 지수에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50위에 오른 이탈리아와 비교해보아도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비슷할지 의문이 듭니다.


국제연합의 세계행복지수를 거론한 이유는 공공선의 의식과 사회의식에 바탕한 이 지수가 과연 개인의 행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종전 방식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인류학적 접근법으로 우리가 각자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의 순간과 움직임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22쪽)”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수가 아닌 복수의 행복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인생에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이 행복은 어떤 풍파에도 버티고 살아남아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된다.(24쪽)”라고도 했습니다. 그 찰나의 행복이 품고 있는 비밀은 그 행복이 사라진 뒤에야 우리가 그 진가를 절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행복의 형이상학’을 정립하기보다 행복한 순간, 찰나의 감상, 변하기 쉬운 추억을 다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이란 정의하기 어렵고,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손에 잡기도 어렵다.”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저자는 사람들은 어떤 정황과 여건에서 행복을 또렷하고 섬세하게 감지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문학작품, 샹송과 음식, 여행과 영화 등을 인용하여 설명했는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 즉 일상속에서 느끼는 작고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던 행복, 여행과 만남, 그리고 첫 번째 경험, 글쓰기를 통한 창작, 노래부르기, 심지어는 늙어감도 작은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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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해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장홍규 옮김 / 소화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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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선가 나와서 읽어보게 된 책입니다. 어렵게 책을 구해 읽기 시작하면서 <검푸른 해협>은 고려 충렬왕 때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이야기는 1214년 금의 중도를 함락시키고 중국의 동북면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던 몽골은 1225년에 발생한 몽골 사신 저고여의 피살사건을 구실로 1231년 살례탑이 이끄는 군대를 보내 고려를 침공한 1차 침략을 시작으로 1254년 차라대의 6차 침입이 1259년까지 이어졌다. 무려 29년에 이르는 기간 간헐적으로 고려를 침입하여 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2321차 침입한 몽골군이 퇴각한 뒤에 고려 조정은 강화로 천도하여 해군이 없는 몽골의 침략에 대처하게 되었다.


<검푸른 해협>의 이야기는 1259년 오랜 계속된 몽골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고려 내부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몽골과의 화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시작합니다. 몽골은 고려와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중국 본토에서도 송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고종의 태자 전(원종)은 고려의 항복 의사를 전하기 위해 몽골에 갔을 때 몽골의 헌종이 죽고 세조(쿠빌라이)가 제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원종은 세조에게서 따듯한 느낌을 받아서 오랫동안 세조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고려에서 제안한 화친을 받아들이면서도 고려를 지배할 야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고려인들 가운데는 몽골에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최탄이라는 자는 60개 성을 들어 몽골에 투항하여 고려의 영토를 몽골에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조이라는 자는 일본과의 통교를 세조에게 권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조는 일본으로 가는 사신을 안내할 것을 원종에게 명령하였고, 일본이 통교를 거부하자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고려에서 담당할 것을 명령합니다. 결국 고려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골의 일본 정벌을 전적으로 지원하게 되는데, 두 차례의 출전은 때마침 닥친 태풍으로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에 따르면 <검푸른 해협>은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 <몽골침략의 신연구(元寇新硏究>에서 영감을 얻어 분에이노에키(文永)와 코안노에키(弘安)라고 하는 두 차례의 몽골침략이 이루어진 과정을 고려 측의 입장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는 물론 <고려사(高麗史)><원사(元史)>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원제목은 <후토(風濤)>라고 했는데, 이는 원 세조가 고려 원종에 조서를 내려 원이 일본에 보내는 국사의 길잡이를 하는데 있어 파도와 바람이 험하여(風濤險阻)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일찍이 통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삼지 말지어다.”라고 한 문장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붙인 <검푸른 해협>이라는 제목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모두에 태자 전(원종)이 몽골에 입조하기 위하여 강화를 나서는 장면에서 나오는 섬의 북단 산리포(山里浦)에서 한강 하구로 배를 띄웠다. 강화도와 본토 사이의 수역은 이 근처가 가장 넓었다. 그리고 한강의 물줄기와 조수가 만나는 곳에서, 검푸른 파도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 기슭 사이를 넘나들었다.(13)”라는 대목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2차 정벌에서 실패한 김방경이 전장을 회고하는 장면 시체는 모두 반라 상태로, 머리를 바닷물에 처박은 것처럼 바다 속에 잠겨 있었고, 시체와 시체 사이에는 검푸른 바닷물이 일렁거리며 서로 부딪쳤다.(337)”라는 대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역사소설 <검푸른 해협>은 오랜 저항 끝에 원나라에 복속하여 원나라의 압제에 놓인 고려의 비극을 태평양전쟁에서 패하여 미군에게 점령된 일본의 사정에 비유한 우의(寓意)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제외하고는 일본 본토에서 전투가 치러진 유일한 외란이었던 원구(元寇) 혹은 몽골습래(蒙古襲來)라고 하는 국가적인 난을 당사국이 아닌 조정국으로서, 그리고 몽골의 일본정벌의 전진기지로서 가혹한 수탈을 당해야 했던 고려의 사정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일본에서는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몽골의 침입, 삼별초의 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 정도로 이해하고 있던 당시의 사정을 삼자의 시각, 조금은 고려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서에 가까운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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