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뒤표지에 적힌 수백 명의 변사자를 마주하며 아로새긴 있었는데 사라진 존재들에 대하여라는 한 줄의 글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온 원고 청탁 전화에 하던 근력운동을 중단했다는 대목에서 공감을 한 것은 인기가 많은 운동기구를 점령하고 앉아서 운동은 안하면서 딴 짓을 하는 사람 때문에 속절없이 기다려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분이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근력운동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경찰공무원인 저자는 첫 번 째 책으로 <경찰관 속으로>라는 책을 낸 뒤로 경찰관의 삶을 다룬 책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접고 22개월에 걸쳐 23꼭지의 수필을 썼고 이를 모아 이 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기>에 아예 서문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서문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 분도 있습니다. <있었던 존재들>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점은 서문에서부터 느낀 것인데 단락들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갈피를 잡기 힘든 대목이 있었습니다.


두 번 째는 각각의 이야기에 붙여놓은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녹여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획의도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참신했지만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기획의도 가운데 하나인 작가가 매일 경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결코 일개 경찰관의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데 , 공식적으로 규정된 경찰관 업무는 당연히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데 특별시 강조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과학수사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변사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하여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업무라 할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30여 년 전에 법의부검을 4년 동안 맡아서 하면서 변사자의 사인을 규명하고 가해자가 있는 경우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경찰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소개하는 정황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리산 부근 어느 경찰서에서 일한 적이 있다하셨는데, 저 역시 지리산 부근에서  해당업무를 했기에 더욱  실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교통범죄수사팀(TCI)의 활약을 다룬 연속극 <크래시> 재방송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참 때부터 과학수사업무를 해왔다는 작가께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를 적발하는 업무를 했다는 이야기는 기획의도와는 다른 것으로 보였습니다.

흔히는 사건을 다루는 글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경향입니다만, 작가의 경우 유사 사례를 여러 건 가지고 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일이 적지 않구나 하는 생각은 할 수도 있겠으나 한 사건 만으로 설명을 해도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않을까 싶네요.


앞서 단락의 연결이 튄다는 느낌은 이운진 시인의 <슬픈 환생>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라는 시를 공동묘지 부근에서 불법적으로 매장된 사체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나오는데, 정작 강아지의 유골함이 발견되 이야기는 인용된 시 다음에 따로 소개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네요.


경찰서마다 과학수사 전담부서가 있는 줄 알았더니 과학수사대 하나가 여러 개의 경찰서를 지원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수사대가 행정적으로는 시청에 해당한다는 설명은 따로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있었던 존재였으나 지금은 삶이 끝난 변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다루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렘브란트 마지막 그림의 비밀
알렉산드라 구겐하임 지음, 모명숙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몇 년째 베네룩스 삼국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하여 15세기 무렵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이 지역의 화가들에 대하여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기대를 만족시켜줄만한 여행사 상품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마지막 비밀>도 그런 까닭에 읽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일찍이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는 아마도 직업 의식이 작동한 까닭에 좋아하는 작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렘브란트 마지막 비밀>을 쓴 알렉산드라 구겐하임은 대학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4년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와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쓴 첫 번째 소설이 <렘브란트 마지막 비밀>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렘브란트의 예술철학을 정리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가 연구한 렘브란트에 관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성하다보니 허구의 내용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가늠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렘브란트의 생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제자 사무엘 봄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가 보는 렘브란트는 작가 서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은 주변을 대단히 통찰력 있기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결코 거울에 비친 상처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섬세한 심리학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그 이전에 활동했던 어떤 화가보다도 감정의 깊이를 잘 표현했다. 그는 인간의 가장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영혼을 묘사할 줄 알았다.(6)”


작가는 렘브란트의 제자였다고 하는 사무엘 볼이 남긴 일기장을 바탕으로 하여 렘브란트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재구성한 것 같습니다. 꽃을 그리는 화가 사무엘 볼은 72세가 되던 해에 렘브란트와 관련된 일을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열여섯 살이 되던 1668년에 조이데르 해 남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을 떠나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제자가 되었을 때로부터 렘브란트가 죽음을 맞은 1670년까지 렘브란트와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성실한 사무엘은 스승을 속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열심히 도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화실을 정리하고, 그림을 그릴 아마포를 만드는 일이며 원료를 빻아 물감을 만들어 렘브란트가 제때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행하였습니다. 스승이 건강을 잃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대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당대의 네덜란드 미술계에서는 그림을 주문받으면 기본 틀을 화가가 만들어내지만 색칠이라거나 하는 등의 부분은 제가가 나누어 맡아 진행하는 공방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렘브란트가 외과 길드의 수석 외과의사 아드리안 반 캄펜 교수의 주문에 따라 그의 해부학 강연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작가는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에서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부학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해부 대상이 될 신선한 사체를 구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사체 해부는 사형을 받은 범죄자에 한한다는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주문받은 그림이 거의 완성되기 직전에 해부에 사용된 사체가 적접하게 사형이 집행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그 충격으로 렘브란트가 죽음에 이르고 사무엘은 거의 완성된 그림을 칼로 찢고 불태운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인위적으로 추가한 내용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렘브란트의 유명한 미술작품에 대한 화가의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서 렘브란트의 예술철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들의 유령
크리스토프 보르트베르크, 만프레트 타이젠 지음, 이광일 옮김 / 느림보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미오와 줄리엣 백경 등과 같은 고전문학의 주인공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줄거리와는 전혀 딴판의 내용이 되겠지요? 줄거리가 달라지면 책을 읽어 얻는 감동도 달라질 듯합니다.


<책들의 유령>은 색다른 시간과 공간여행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흔히 시간여행이라 함은 과거와 미래의 세계로 순간 이동하여 그 세계를 경험하는 일을 다루기 마련인데, <책들의 유령>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로 이동한다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끌어온 셈입니다.


시간여행을 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유명한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경우는 자동차와 기차가 그와 같은 장치입니다. <책들의 유령>에서는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가 만들었다는 팔각형 아물렛에 들어있는 신비한 힘이 그와 같은 장치입니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대물림되어 전해진다는 아물렛은 훈장과 같은 명예의 상징이자 의무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문학을 수호하고 아물렛을 훔치려는 악인 곤다르로부터 책들의 세계를 수호하는 사명(131)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물렛은 시간의 고향과 같은 장치로 그것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손에 넣을뿐더러 생명과 역사를 손에 쥐는 셈(143)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허먼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인디언 퀴퀘그를 비롯하여 조나단 스위프트의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프라이데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천공의 성>에 나오는 구두장이도 아물렛을 알아보는 것을 보면 위대한 작가들에게만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나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들의 유령>은 아물렛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 벤의 이모가 누군가에게 납치되면서 반쪽의 아물렛을 남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모가 남긴 반쪽의 아물렛의 힘으로 소설의 세계로 들어간 벤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떨어지는데 현실의 과거가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주인공 로미오가 회색 옷을 입은 자들에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벤은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와 함께 줄리엣을 구출하여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 머큐시오 그리고 줄리엣과 함께 시작하는 여행은 <백경>, <로빈슨 크루소>, <암흑의 핵심>, <돈키호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걸리버 여행기>, <유희의 끝>, <전쟁과 평화>, <올리버 트위스트>,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 <몽테크리스토 백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함정과 진자>, <신곡> 등을 비롯하여 영화 <천공의 성>까지 모두 20개의 작품의 세계를 넘나들게 됩니다. 대부분 읽어보았습니다만, <암흑의 핵심>, <유희의 끝>,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 <함정과 진자> 4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세 사람은 신곡에 이르러 단테를 만나게 되는데 단테는 줄리엣에게 아물렛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학의 세계에 평형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는 늘 새로운 세계에 빠지는 법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세계는 작가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반면에 현실은 점점 흐릿해지고 생기를 잃으며 공허해진다.(230)”


이야기의 끝에서 벤은 악의 축인 곤다르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가 곤다르의 하수인이었다는 반전이 일어나지만 머큐시오도 결국 곤다르에게 반기를 들어 아물렛을 지키는 사람들의 승리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곤다르의 수하들이 회색옷을 입은 것이나 아물렛이 시간의 고향이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와 닮은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21세기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설명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고전독서회에서 <죄와 벌>을 읽고 토론하면서 저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동기는 물론, 범행과정, 범행 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야간 비행>의 주인공 마크 크라머가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물론 범행과정, 수습하는 과정 등은 죄와 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금전적 동기에서 출발하여 노파를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과정에서 노파를 사회악으로 규정하여 그의 범행에 타당성을 성립시키려는 해석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마크 크라머는 먼 친척이면서 자신의 책을 출판해주고 자서전 집필 건을 연결해준 후원자라할 수도 있는 야콥 뢰더를 자신이 쓴 소설의 원고가 형편없다고 평가했다는 이유로 때려죽입니다. 독일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뢰더가 소개해준 자서전 집필 의뢰자 카를 프라이킨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이유는 프라이킨의 젊은 아내 사라를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마크가 사라를 유혹하는 장면도 독일인답지 않아서 어색합니다. 프랑스 남자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뢰더가 충동적 살인이었다면 프라이킨의 경우는 치밀한 장치를 마련하여 자살을 위장하였습니다. 게다가 독일에서 남프랑스로 가는 도중에 만난 남자를 살해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보면, 야간 여행의 주인공 마크 크라머는 소위 신념에 의하여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석되는 라스콜리니코프와는 달리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해야  한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에서도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나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진의 대응이 미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야간 여행의 살인자 마크 크라머는 완전범죄를 노린다면서 살인 현장의 정리가 미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가가 완전범죄에 대한 자료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데서 오는 미숙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양동이로 내려 쳐서 뢰더를 살해했다면 당연히 현장에 많은 피가 흩뿌려졌을 것이며 범인인 마크의 옷가지나 손 역시 피범벅이 됐을 것인데 어떻게 정리를 했다는 서술이 없습니다. 또한 양동이를 들어 가격을 하는 것으로 절명하지 않은 경우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신체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프랑스까지 찾아온 독일경찰은 마크의 진술만 청취하고는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독일경찰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 째 살인의 경우도 마크가 권총을 들어 카를의 관자놀이를 쏜 다음에 권총을 닦아 카를의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자살이 성립되었다고 보기가 어렵겠습니다. 과학수사대에서 카를과 마크의 손이나 윗옷의 팔부위에서 화약흔을 검사해보면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카를을 직접 사살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서 총알에 맞는 순간 튀는 핏방울이 옷에도 튀었을 것이고 뒤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고 찾아온 경찰이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수집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것은 작가가 프랑스 경찰을 우습게 안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수사가 종료됐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추후에 마크의 범행을 인지하고 압박해 들어올 여지는 남았다 싶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범행과 수사당국의 수사진행이 미흡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뢰더가 마크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은 어떤 장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듯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의 심리변화 역시 라스콜리니코프의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간결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코의 유쾌한 암투병 일기 - 괜찮아, 잘 될 거야!
자오따비 지음, 은송희.정선옥 옮김 / 넥서스BOOKS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프랑수아즈 사강의 마약중독 투병기 <해독일기>에 이어 읽은 책입니다. <왕코의 유쾌한 암투병 일기>는 타이완의 젊은이가 호지킨 림프종으로 진단받고 항암치료가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투병일기는 대부분 의사 등 의료인이 쓴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의학적인 내용들이 중심을 이루는 경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타이완의 자오따비와 같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투병기에서는 치료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의 변화가 중심이 되는 경향입니다.


자오따비군은 25살 난 젊은이입니다. 대학을 마치고 가장 힘들다는 해군 의장대에서 복무를 하던 중에 목에 땅콩만한 결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위내시경검사를 한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위내시경을 할 때 진정제를 맞고 수면내시경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타이완에서는 진정제 없이 그냥 하는 모양입니다. 자오군은 '강간당하는  기분이었다'고 적었는데 겪어보지 못했을 강간에 비유한 것은 과장이 지나친 듯합니다. 저 역시 아주 오래 전에는 진정제를 맞지 않고 내시경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견딜 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식도내시경검사를 받았을 때도 마취주사를 맞았다면 조직검사를 하는지 마는지 알 수도 없었을 텐데 마취에서 깨어날 때 숨을 쉴 수가 없었다는 것도 과장이 지나친 듯합니다. 어쩌면 저자의 이런 호들갑이 독자들에게 먹혀 인기를 끌게 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럭저럭  하다가 두 달이 훌쩍 지나갔는데 목에 생기 결절이 갑자기 훌쩍 자라서 골프공 크기가 됐더랍니다. 그때서야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아서 암센터를 찾게 되었답니다. 어떻든 그렇게 찾아가 병원에서 당장 입원하라 해서 16일 동안 입원하는 사이에  두 차례 수술을 포함해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 반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는 강제로 입원을 당했다고 합니다만, 정신질환도 아닌 일반 질환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나라는 없을 듯합니다.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조직검사결과를 듣고 자오군은 '청천벽력'  무언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에 한번 씩 아침에 일어나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저 역시 건강검진의 결과가 수상하게 나왔을 때부터 일기를 썼습니다.


치료과정을 보면 2주일에 한번 꼴로 항암치료를 받고 후반에 가서는 방사선 치료도 받게 되는데 중간에 한 차례 외박을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도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많이 다른 점입니다. 열두 번의 항암치료 과정 가운데 절반인 여섯 차례를 마치는 동안 109일이나 입원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항암치료를 입원이 아니라 낮 병동에서 받고 바로 퇴원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든 자오군은 입원해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대학에 다니는 애인과 부모님 등 가족즐의 헌신적인 돌봄을 받게 됩니다. 그런 점에 자오군의 낙천적인 성향이 어우러져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지 싶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오군은 일기를 쓴 것은 가족들이 읽고 치료과정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고백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남습니다. “글 속에서는 일부러 더 재미있게, 별일이 아니라는 듯 잔뜩 여유를 부린다. 부디, 이 글을 읽고 가족들이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길 바라면서...(34)”라고 일기를 쓰게 된 이유를 적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젊은이의 감각적인 글과 사진 만화 등이 듬뿍 들어있어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암질환은 중년 이상의 나이든 환자가 많은 점을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지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