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21세기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설명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고전독서회에서 <죄와 벌>을 읽고 토론하면서 저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동기는 물론, 범행과정, 범행 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야간 비행>의 주인공 마크 크라머가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물론 범행과정, 수습하는 과정 등은 죄와 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금전적 동기에서 출발하여 노파를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과정에서 노파를 사회악으로 규정하여 그의 범행에 타당성을 성립시키려는 해석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마크 크라머는 먼 친척이면서 자신의 책을 출판해주고 자서전 집필 건을 연결해준 후원자라할 수도 있는 야콥 뢰더를 자신이 쓴 소설의 원고가 형편없다고 평가했다는 이유로 때려죽입니다. 독일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뢰더가 소개해준 자서전 집필 의뢰자 카를 프라이킨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이유는 프라이킨의 젊은 아내 사라를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마크가 사라를 유혹하는 장면도 독일인답지 않아서 어색합니다. 프랑스 남자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뢰더가 충동적 살인이었다면 프라이킨의 경우는 치밀한 장치를 마련하여 자살을 위장하였습니다. 게다가 독일에서 남프랑스로 가는 도중에 만난 남자를 살해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보면, 야간 여행의 주인공 마크 크라머는 소위 신념에 의하여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석되는 라스콜리니코프와는 달리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해야  한 것 같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에서도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나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진의 대응이 미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야간 여행의 살인자 마크 크라머는 완전범죄를 노린다면서 살인 현장의 정리가 미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가가 완전범죄에 대한 자료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데서 오는 미숙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면 양동이로 내려 쳐서 뢰더를 살해했다면 당연히 현장에 많은 피가 흩뿌려졌을 것이며 범인인 마크의 옷가지나 손 역시 피범벅이 됐을 것인데 어떻게 정리를 했다는 서술이 없습니다. 또한 양동이를 들어 가격을 하는 것으로 절명하지 않은 경우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신체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프랑스까지 찾아온 독일경찰은 마크의 진술만 청취하고는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독일경찰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 째 살인의 경우도 마크가 권총을 들어 카를의 관자놀이를 쏜 다음에 권총을 닦아 카를의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자살이 성립되었다고 보기가 어렵겠습니다. 과학수사대에서 카를과 마크의 손이나 윗옷의 팔부위에서 화약흔을 검사해보면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카를을 직접 사살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서 총알에 맞는 순간 튀는 핏방울이 옷에도 튀었을 것이고 뒤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고 찾아온 경찰이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수집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은 것은 작가가 프랑스 경찰을 우습게 안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소설이 끝날 때까지 수사가 종료됐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추후에 마크의 범행을 인지하고 압박해 들어올 여지는 남았다 싶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범행과 수사당국의 수사진행이 미흡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뢰더가 마크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은 어떤 장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듯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의 심리변화 역시 라스콜리니코프의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간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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