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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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표지에 적힌 수백 명의 변사자를 마주하며 아로새긴 있었는데 사라진 존재들에 대하여라는 한 줄의 글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온 원고 청탁 전화에 하던 근력운동을 중단했다는 대목에서 공감을 한 것은 인기가 많은 운동기구를 점령하고 앉아서 운동은 안하면서 딴 짓을 하는 사람 때문에 속절없이 기다려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분이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근력운동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경찰공무원인 저자는 첫 번 째 책으로 <경찰관 속으로>라는 책을 낸 뒤로 경찰관의 삶을 다룬 책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접고 22개월에 걸쳐 23꼭지의 수필을 썼고 이를 모아 이 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기>에 아예 서문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서문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 분도 있습니다. <있었던 존재들>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점은 서문에서부터 느낀 것인데 단락들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갈피를 잡기 힘든 대목이 있었습니다.


두 번 째는 각각의 이야기에 붙여놓은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녹여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획의도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참신했지만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기획의도 가운데 하나인 작가가 매일 경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결코 일개 경찰관의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는데 , 공식적으로 규정된 경찰관 업무는 당연히 사사로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데 특별시 강조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과학수사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변사자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하여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업무라 할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30여 년 전에 법의부검을 4년 동안 맡아서 하면서 변사자의 사인을 규명하고 가해자가 있는 경우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경찰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소개하는 정황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리산 부근 어느 경찰서에서 일한 적이 있다하셨는데, 저 역시 지리산 부근에서  해당업무를 했기에 더욱  실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교통범죄수사팀(TCI)의 활약을 다룬 연속극 <크래시> 재방송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참 때부터 과학수사업무를 해왔다는 작가께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를 적발하는 업무를 했다는 이야기는 기획의도와는 다른 것으로 보였습니다.

흔히는 사건을 다루는 글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경향입니다만, 작가의 경우 유사 사례를 여러 건 가지고 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일이 적지 않구나 하는 생각은 할 수도 있겠으나 한 사건 만으로 설명을 해도 독자들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않을까 싶네요.


앞서 단락의 연결이 튄다는 느낌은 이운진 시인의 <슬픈 환생>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라는 시를 공동묘지 부근에서 불법적으로 매장된 사체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나오는데, 정작 강아지의 유골함이 발견되 이야기는 인용된 시 다음에 따로 소개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네요.


경찰서마다 과학수사 전담부서가 있는 줄 알았더니 과학수사대 하나가 여러 개의 경찰서를 지원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수사대가 행정적으로는 시청에 해당한다는 설명은 따로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있었던 존재였으나 지금은 삶이 끝난 변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다루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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