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유령
크리스토프 보르트베르크, 만프레트 타이젠 지음, 이광일 옮김 / 느림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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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백경 등과 같은 고전문학의 주인공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줄거리와는 전혀 딴판의 내용이 되겠지요? 줄거리가 달라지면 책을 읽어 얻는 감동도 달라질 듯합니다.


<책들의 유령>은 색다른 시간과 공간여행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흔히 시간여행이라 함은 과거와 미래의 세계로 순간 이동하여 그 세계를 경험하는 일을 다루기 마련인데, <책들의 유령>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로 이동한다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끌어온 셈입니다.


시간여행을 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키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유명한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경우는 자동차와 기차가 그와 같은 장치입니다. <책들의 유령>에서는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가 만들었다는 팔각형 아물렛에 들어있는 신비한 힘이 그와 같은 장치입니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대물림되어 전해진다는 아물렛은 훈장과 같은 명예의 상징이자 의무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문학을 수호하고 아물렛을 훔치려는 악인 곤다르로부터 책들의 세계를 수호하는 사명(131)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물렛은 시간의 고향과 같은 장치로 그것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손에 넣을뿐더러 생명과 역사를 손에 쥐는 셈(143)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허먼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인디언 퀴퀘그를 비롯하여 조나단 스위프트의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프라이데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천공의 성>에 나오는 구두장이도 아물렛을 알아보는 것을 보면 위대한 작가들에게만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나 소설의 등장인물이라면 모두 아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들의 유령>은 아물렛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 벤의 이모가 누군가에게 납치되면서 반쪽의 아물렛을 남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모가 남긴 반쪽의 아물렛의 힘으로 소설의 세계로 들어간 벤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떨어지는데 현실의 과거가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주인공 로미오가 회색 옷을 입은 자들에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벤은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와 함께 줄리엣을 구출하여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 머큐시오 그리고 줄리엣과 함께 시작하는 여행은 <백경>, <로빈슨 크루소>, <암흑의 핵심>, <돈키호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걸리버 여행기>, <유희의 끝>, <전쟁과 평화>, <올리버 트위스트>,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 <몽테크리스토 백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함정과 진자>, <신곡> 등을 비롯하여 영화 <천공의 성>까지 모두 20개의 작품의 세계를 넘나들게 됩니다. 대부분 읽어보았습니다만, <암흑의 핵심>, <유희의 끝>, <마드무아젤 드 스퀴데리>, <함정과 진자> 4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세 사람은 신곡에 이르러 단테를 만나게 되는데 단테는 줄리엣에게 아물렛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학의 세계에 평형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는 늘 새로운 세계에 빠지는 법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세계는 작가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반면에 현실은 점점 흐릿해지고 생기를 잃으며 공허해진다.(230)”


이야기의 끝에서 벤은 악의 축인 곤다르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가 곤다르의 하수인이었다는 반전이 일어나지만 머큐시오도 결국 곤다르에게 반기를 들어 아물렛을 지키는 사람들의 승리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곤다르의 수하들이 회색옷을 입은 것이나 아물렛이 시간의 고향이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독일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와 닮은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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