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에 관한 일반론 - 2017 더블린 인터내셔널 문학상 수상작,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작
주제 에두아르두 아구아루사 지음, 이지민 옮김 / 구민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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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기억이라는 화두에 오랫동안 매달려왔습니다. 기억이 만들어지는 기전은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을 되살리는 기전도 궁금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만든 기억이 사라지는 기전도 흥미롭습니다. 망각이 단순하게 기억의 반대 개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제대로 못하는 건망증 환자는 기억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만,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기억이 신이 준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말도 있나봅니다.


조제 에두아르도 아구알루사가 쓴 <망각에 관한 일반론>은 개인적인 관심사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앙골라의 우암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포르투갈계 그리고 아버지는 브라질계입니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입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의 고등농업학교에서 농업을 공부한 뒤에 언론계에서 일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2010년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생을 마감한 포르투갈 출신 여성 루보비카 페르난데스 마누가 남긴 일기, , 그림과 설명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하면서도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루도비카는 하늘을 마주하기 싫어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루도비카는 어린 시절 뒤에서 밝혀지는 그 사건을 겪고부터는 세상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언니 오데트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언니가 앙골라 출신의 사업가 오를란두와 결혼하게 되면서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75년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던 앙골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의 독립운동을 중국, 소련 그리고 쿠바 등을 비롯하여 미국 등 서방세계도 성향에 따라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했습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제2공화국 독재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으로 붕괴되고 들어선 신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앙골라도 1975년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독립전쟁을 주도하던 단체들끼리의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앙골라의 독립 이후 앙골라에 거주하던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식민지배 당시의 수탈을 주도했던 것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했기 때문입니다. <망각에 관한 일반론>은 앙골라가 독립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오데트는 앙골라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떠나자고 오를란두를 재촉하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는 오를란두는 버티기로 일관하다가 결국은 떠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떠나기로 한 전날 송별회에 참석했다가 두 사람 모두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바깥출입을 하지 않던 루도빌라는 언니와 함께 살던 아파트의 입구를 벽돌을 쌓아 막고 스스로를 격리해버렸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라고 찾아온 남자를 살해하여 텃밭에 묻은 뒤에 말입니다. 아파트의 14층에 시체를 묻을 수 있는 텃밭이 어떻게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만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식량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텃밭에 채소를 키우고 노대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다이아몬드로 꼬여 잡아먹으면서 버티기를 30년을 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물이나 전기를 사용하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루도빌라가 스스로를 격리하고 지내는 사이에 루도빌라와 간접적으로 인연의 고리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앙골라 사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루도빌라가 살고 있는 집에 어린 소년 사발루가 무언가를 훔치러 들어왔다가 두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야기가 발전해가고 루도빌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의 이야기 끼어들게 됩니다.


이야기의 어디에도 기억이나 망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성폭력, 배신, 살인, 고문 등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합니다. 성폭력의 피해자인 루도 역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루도를 구원해준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심과 사랑으로 충만한 꼬마 사발루였습니다. 끔찍한 짓을 반성하고 망각을 통하여 내적으로 성장해나간다는 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주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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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9 - 현제賢帝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9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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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9>현제의 세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처럼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오현제 시대 가운데 트라야누스(서기 98~117), 하드리아누스(서기117~138) 그리고 안토니누스 피우스(서기138~161) 황제의 치세를 다루었습니다. 오현제라는 용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 티투스를 제외하면 혈연관계의 세습을 통해 제위에 오른 황제들이 모두 암군이었던 반면, 네르바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양자 관계로 제위에 오른 황제들은 모두 명군이었다.”라고 하면서 시작된 표현이라고 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만약 누군가에게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기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도미티아누스의 죽음부터 콤모두스의 등극 사이의 시기(오현제의 시기)를 고를 것이다하고 했다는데, 이는 로마제국의 시민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 인류 전체로 범위를 넓혔을 때고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는 5현제 가운데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고 중간의 세 황제의 시기만을, 떼어 현제의 세기라는 부제를 달았을까? 그리고 세 황제 가운데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는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에게 할애한 분량의 6~7분의 1에 불과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네르바 황제는 오현제에 포함하지만 제위기간이 짧고 번영의 세기를 열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8>에 포함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번영을 구가한 시기였지만, 번영의 몰락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11>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다섯 황제들 가운데 네르바를 제외하고는 트라야누스를 중심으로 한 친인척관계, 즉 같은 집안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하고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들여 제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제위를 물려받을 사람이 거대한 로마제국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잘 가늠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정체하면 썪는다.’는 자연의 섭리처럼 황금 같은 세월을 보낸 오현제의 시기에 앞서부터 쌓여오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싹이 보이던 문제점을 조기에 잘라내지 못했을 뿐더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가 결정한 잘못된 정책이 더해지면서 로마제국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요? 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를 읽다보면 자식을 적게 낳으려는 로마제국 본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알리멘타 정책을 내놓았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시작되어 이제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우리나라의 저출산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요즈음의 발칸반도의 북쪽 지역을 로마제국의 영역에 포한시키기 위한 과정은 5월에 발칸반도 여행을 정리하면서 그 흔적을 뒤쫓아 볼 생각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에 머문 시간보다 속주를 돌면서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한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앙 해외여행을 하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발길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도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트나에 오른 이유는 애트나에서 해돋이를 보려함이라고 했는데, “에트나 화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일곱 빛깔의 일출이라 하여, 고대에는 유명한 장관의 하나로 꼽혔다(313)”는 것입니다. 여행사를 통하거나 자유여행을 하더라도 보기 힘든 그런 장관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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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4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장영재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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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과는 결이 다른 톨스토이의 단편들을 읽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나와서 읽어보기로 했던 것인데 어느 책이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표제작 세 가지 질문을 비롯하여 모두 9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탓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생각입니다만, 당대의 독자들, 특히 노동자, 농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면 세상이 잘 돌아갈까요? 한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사는 일이 재미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세 가지 질문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궁금해진 왕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은사를 찾아간 왕은 고랑을 파는 은사를 도와주면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그 답은 결국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는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면 그것들이 쌓여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가질 수 있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보았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영지에서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펼치는 등의 활약을 했다는 톨스토이는 주요 작품들을 집필한 뒤에 삶에 대한 회의에 빠져 정신적 위기를 겪기도 했다는데, 1880년 이후에는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단편들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러시아 정교라는 체계 안에서 규격화된 틀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세 죽음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 단편에서는 귀족 부인, 마부 그리고 나무 등 세 생명체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귀족부인은 병명이 분명치 않은 난치병에 걸려 모스크바에서 잘 알려졌다는 치료제를 써보거나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사업상의 이유로 궂은 날씨 등을 핑계로 결국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마부 역시 역참의 마부 숙소에서 돌보는 이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하게 바라는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나무의 죽음은 마부의 장화를 얻은 세료가가 세우기로 약속한 비석 대신 십자가를 만들기 위하여 잘라내는 바람에 죽음을 맞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생명의 죽음을 두고 굳이 가치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등급을 매길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다만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이나 그러한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 역시 마음에 맺히는 바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귀족 부인이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났더라면, 영약이라는 약제를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더라는 것입니다.

죄인은 없다라는 단편에서는 러시아의 귀족, 부자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부자들의 추악하고 나태한 삶은 이런 노예 같은 사람들의 끝없고 과도한 노동이 뒷받침되어야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사모바르, 은제 접시, 마차, 기계,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쉼 없이 일하는 수많은 노예들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107)” ‘촛불이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마름 역시 농민들을 착취하는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재화의 분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던 시절의 사회적 폐습으로 훗날 사회의 체제에 따라 급진적 혹은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나아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자들의 대화에 나오는 한 대목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미 멍에를 매었으니 짐을 끌어야 해요. 모든 남자는 자기 가족을 책임지고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느낄 때, 당신처럼 혼자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 자신의 영혼이나 구하고 싶다고 말하겠죠. 그건 정말 그릇되고 비겁한 일이에요.(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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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 되찾은 시간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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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를 새롭게 번역해서 내놓은 것이 20128월이었고 마지막 13권을 내놓은 것이 202211월이니 10년이 넘게 걸린 셈입니다. 추가 번역분이 나올 때마다 읽었으니 저 역시 마지막을 읽고 독후감을 마무리하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책읽기를 마무리하기는 했습니다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읽다보니 앞에 읽은 내용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어서 다시 읽어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고전독서회에서 7개월에 걸쳐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되찾은 시간2’의 독후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투병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게르망트 대공부인이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과정에서 콩브레의 종탑에 관한 기억을 비롯하여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문학작품의 모든 소재는 내 지나간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마침내 작가로서의 길을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자네는 몸이 아프지만 그래도 정신의 기쁨을 향유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네를 동정할 수는 없을걸세라고 한 베르고트씨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 것은 마르셀 스스로 글 쓰는 재능이 없어서 문학이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과거의 동일성에 의해서만 나타난 존재는 삶을 영위하고 사물의 본질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환경에서만, 다시 말해 시간 밖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라고 자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프티트 마들렌의 맛을 무의식적으로 알아보던 순간, 왜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멈추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36)”


병약한 마르셀은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서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초시간적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곱씹어보기도 합니다만, 마루셀처럼 초시간적 존재까지는 몰라도 제가 존재했었다는 흔적이 후세에 남아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르셀은 예술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정리한 문학작품이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길임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제일 어렸을 적의 일들을 되짚어보기도 합니다만, 마르셀처럼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마르셀보다 훨씬 나이들어 해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르셀은 자신의 모든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스완 덕택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르셀은 되찾은 시간에서 이제 나는 늙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134)’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마르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함께 지내던 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늙음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이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하거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는다는 것, 즉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긴 삶을 이야기하는 마무리단계에서 끝으로 이 시간의 관념이 가진 마지막 가치는 삶의 자극제라는 점이었다.(305)”라고 적은 부분을 생각해보니, 일찍부터 매 순간마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말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나날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7개월간의 장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구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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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아도 좋아
용수.박산호 지음 / 선스토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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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같이 일하면 좋겠다 싶은 과장님을 만나 설득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망설이고 계신 듯합니다. 사실 제 경우는 16년이나 현업을 떠나 있다가 복귀한 바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보더라도 다시 시작하셔도 잘 하실 수 있으니 힘을 내보시라고 격려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유비 현덕은 제갈량의 집을 세 차례나 찾아간 끝에 함께 하겠다는 뜻을 얻었다고 해서 삼고초려라는 사자성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집까지 찾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니 결심이 설 때까지 식사를 모시면서 설득을 이어갈 요량입니다. 용수스님과 박산호 작가의 대담집 <이대로 살아도 좋아>는 그 분이 선물해주신 책입니다. 가톨릭 신자라고 하시는데 평소 용수스님의 말씀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용수스님은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유타주립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2001년 우연히 달라이라마의 강의를 들은 것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달라이라마의 제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인도로에 갔다가 티베트 역경원의 창시자인 뻬마 왕겔 린포체를 만나 출가했다고 합니다. 남프랑스 티베트 불교선방, 화계사, 무상사 등에서 수행했습니다. 티베트 닝마파 한국지부인 세첸코리아를 설립하여 티베트불교를 한국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사회관계망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서 독자들과 소통해오고 있는데, 스스로를 인간 되는 중, 착해지는 중, 스님 되는 중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용수스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좋아>는 스님이 사회관계망에 올리는 글을 본 출판사 선스토리의 대표께서 스님께 연락을 넣어 책을 만들어보자고 청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꾸며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박산호 작가와 함께 하면 더 현실적이고 풍성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겠다하여 함께 하기를 청하였다고 합니다.


이리 하여 용수스님과 박산호작가님 그리고 출판사 대표님, 이렇게 세 분이 틈틈이 만나 나눈 이야기가 이 책으로 엮어졌다는 것입니다. 외로움, 분노, 질투, 수치스러움, 중독 등 용수스님의 사회관계망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감정들을 다루는 지혜를 나누었고, 그것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장은 사회관계망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2장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3장은 행복해지려면 죽음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큰 주제에 속하는 이야기 거리를 두고 박산호작가님이 용수스님에게 질문을 하면 용수스님이 답을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1장에서 논의되는 사회관계망 활동에 관한 이야기의 핵심은 사회관계망 활동은 어쩔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어떻게 활동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20여 년 전에 누리사랑방을 운영하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방문객이 천만을 넘어 그 누리사랑방 무리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 누리사랑방이 사라지고 새로 만든 누리사랑방은 상업적인 색채가 진한 까닭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그저 제가 쓰는 글들을 모아 관심을 주시는 독자들과 교감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집착을 버리고,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는 평정심을 이루었다고 하겠습니다.


젊어서는 명예를 쫒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단속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 뒤로는 그마저도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요즈음에는 그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그러려니 하면서 말입니다.


3장의 화두 죽음은 많이 공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암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역시 암으로 진단받아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암진단을 받았을 때는 바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 또한 예정된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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