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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관한 일반론 - 2017 더블린 인터내셔널 문학상 수상작,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작
주제 에두아르두 아구아루사 지음, 이지민 옮김 / 구민사 / 2018년 1월
평점 :
개인적으로는 기억이라는 화두에 오랫동안 매달려왔습니다. 기억이 만들어지는 기전은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을 되살리는 기전도 궁금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만든 기억이 사라지는 기전도 흥미롭습니다. 망각이 단순하게 기억의 반대 개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제대로 못하는 건망증 환자는 기억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 마련입니다만,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기억이 신이 준 선물이라면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말도 있나봅니다.
조제 에두아르도 아구알루사가 쓴 <망각에 관한 일반론>은 개인적인 관심사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앙골라의 우암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포르투갈계 그리고 아버지는 브라질계입니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입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의 고등농업학교에서 농업을 공부한 뒤에 언론계에서 일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2010년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생을 마감한 포르투갈 출신 여성 루보비카 페르난데스 마누가 남긴 일기, 시, 그림과 설명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하면서도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루도비카는 하늘을 마주하기 싫어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루도비카는 어린 시절 뒤에서 밝혀지는 그 사건을 겪고부터는 세상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언니 오데트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언니가 앙골라 출신의 사업가 오를란두와 결혼하게 되면서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575년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던 앙골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의 독립운동을 중국, 소련 그리고 쿠바 등을 비롯하여 미국 등 서방세계도 성향에 따라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했습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제2공화국 독재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으로 붕괴되고 들어선 신정부가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앙골라도 1975년 독립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독립전쟁을 주도하던 단체들끼리의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앙골라의 독립 이후 앙골라에 거주하던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식민지배 당시의 수탈을 주도했던 것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재산을 몰수했기 때문입니다. <망각에 관한 일반론>은 앙골라가 독립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오데트는 앙골라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떠나자고 오를란두를 재촉하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는 오를란두는 버티기로 일관하다가 결국은 떠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런데 떠나기로 한 전날 송별회에 참석했다가 두 사람 모두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바깥출입을 하지 않던 루도빌라는 언니와 함께 살던 아파트의 입구를 벽돌을 쌓아 막고 스스로를 격리해버렸습니다.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라고 찾아온 남자를 살해하여 텃밭에 묻은 뒤에 말입니다. 아파트의 14층에 시체를 묻을 수 있는 텃밭이 어떻게 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만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식량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텃밭에 채소를 키우고 노대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다이아몬드로 꼬여 잡아먹으면서 버티기를 30년을 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물이나 전기를 사용하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루도빌라가 스스로를 격리하고 지내는 사이에 루도빌라와 간접적으로 인연의 고리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앙골라 사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루도빌라가 살고 있는 집에 어린 소년 사발루가 무언가를 훔치러 들어왔다가 두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야기가 발전해가고 루도빌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의 이야기 끼어들게 됩니다.
이야기의 어디에도 기억이나 망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성폭력, 배신, 살인, 고문 등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합니다. 성폭력의 피해자인 루도 역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루도를 구원해준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심과 사랑으로 충만한 꼬마 사발루였습니다. 끔찍한 짓을 반성하고 망각을 통하여 내적으로 성장해나간다는 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주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