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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9 - 현제賢帝의 세기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9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1월
평점 :
<로마인 이야기9>는 ‘현제의 세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처럼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오현제 시대 가운데 트라야누스(서기 98년~117년), 하드리아누스(서기117년~138년) 그리고 안토니누스 피우스(서기138년~161년) 황제의 치세를 다루었습니다. 오현제라는 용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 “티투스를 제외하면 혈연관계의 세습을 통해 제위에 오른 황제들이 모두 암군이었던 반면, 네르바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양자 관계로 제위에 오른 황제들은 모두 명군이었다.”라고 하면서 시작된 표현이라고 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만약 누군가에게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기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도미티아누스의 죽음부터 콤모두스의 등극 사이의 시기(오현제의 시기)를 고를 것이다”하고 했다는데, 이는 로마제국의 시민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 인류 전체로 범위를 넓혔을 때고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는 5현제 가운데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고 중간의 세 황제의 시기만을, 떼어 ‘현제의 세기’라는 부제를 달았을까? 그리고 세 황제 가운데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시대는 트라야누스와 하드리아누스에게 할애한 분량의 6~7분의 1에 불과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네르바 황제는 오현제에 포함하지만 제위기간이 짧고 번영의 세기를 열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8>에 포함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번영을 구가한 시기였지만, 번영의 몰락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11>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다섯 황제들 가운데 네르바를 제외하고는 트라야누스를 중심으로 한 친인척관계, 즉 같은 집안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하고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들여 제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제위를 물려받을 사람이 거대한 로마제국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잘 가늠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 정체하면 썪는다.’는 자연의 섭리처럼 황금 같은 세월을 보낸 오현제의 시기에 앞서부터 쌓여오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싹이 보이던 문제점을 조기에 잘라내지 못했을 뿐더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가 결정한 잘못된 정책이 더해지면서 로마제국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요? 트라야누스 황제의 치세를 읽다보면 자식을 적게 낳으려는 로마제국 본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알리멘타 정책을 내놓았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시작되어 이제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우리나라의 저출산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요즈음의 발칸반도의 북쪽 지역을 로마제국의 영역에 포한시키기 위한 과정은 5월에 발칸반도 여행을 정리하면서 그 흔적을 뒤쫓아 볼 생각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에 머문 시간보다 속주를 돌면서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한 점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앙 해외여행을 하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발길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도 그런 장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트나에 오른 이유는 애트나에서 해돋이를 보려함이라고 했는데, “에트나 화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일곱 빛깔의 일출이라 하여, 고대에는 유명한 장관의 하나로 꼽혔다(313쪽)”는 것입니다. 여행사를 통하거나 자유여행을 하더라도 보기 힘든 그런 장관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