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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 - 되찾은 시간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민음사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2>를 새롭게 번역해서 내놓은 것이 2012년 8월이었고 마지막 13권을 내놓은 것이 2022년 11월이니 10년이 넘게 걸린 셈입니다. 추가 번역분이 나올 때마다 읽었으니 저 역시 마지막을 읽고 독후감을 마무리하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책읽기를 마무리하기는 했습니다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읽다보니 앞에 읽은 내용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어서 다시 읽어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고전독서회에서 7개월에 걸쳐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되찾은 시간2’의 독후감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투병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게르망트 대공부인이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과정에서 콩브레의 종탑에 관한 기억을 비롯하여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문학작품의 모든 소재는 내 지나간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마침내 작가로서의 길을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자네는 몸이 아프지만 그래도 정신의 기쁨을 향유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네를 동정할 수는 없을걸세”라고 한 베르고트씨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 것은 마르셀 스스로 글 쓰는 재능이 없어서 문학이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과거의 동일성에 의해서만 나타난 존재는 삶을 영위하고 사물의 본질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환경에서만, 다시 말해 시간 밖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라고 자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프티트 마들렌의 맛을 무의식적으로 알아보던 순간, 왜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멈추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36쪽)”
병약한 마르셀은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서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초시간적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 곱씹어보기도 합니다만, 마루셀처럼 초시간적 존재까지는 몰라도 제가 존재했었다는 흔적이 후세에 남아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르셀은 예술작품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정리한 문학작품이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길임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제일 어렸을 적의 일들을 되짚어보기도 합니다만, 마르셀처럼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마르셀보다 훨씬 나이들어 해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르셀은 자신의 모든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스완 덕택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르셀은 ‘되찾은 시간’에서 ‘이제 나는 늙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134쪽)’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마르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함께 지내던 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늙음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죽음이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하거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는다는 것, 즉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긴 삶을 이야기하는 마무리단계에서 “끝으로 이 ‘시간’의 관념이 가진 마지막 가치는 삶의 자극제라는 점이었다.(305쪽)”라고 적은 부분을 생각해보니, 일찍부터 매 순간마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말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나날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7개월간의 장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구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