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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강민경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4월
평점 :
백운거사 이규보하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기억합니다. 1168년에 태어나 1241년에 작고하였으니 800년전 고려시대를 살던 분입니다. 의종22년에 태어나 명종, 신종, 희종, 강종을 지나 고종 29년에 작고를 하였는데, 의종24년에 무신정변이 일어나 100년간 이어진 무신정권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231년에는 몽골이 침입하여 이듬해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전하던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기도 했습니다.
고려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드문 가운데 이규보는 자신의 시를 포함하여 전, 설, 서 등에 관한 방대한 글을 53권 13책에 담은 <동국이상국집>을 남겨 당대의 사회상은 물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이규보는 자신의 글을 모아둔 바가 없어 <동국이상국집>은 이규보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함(涵)이 1241년(고종 28) 8월에 전집(全集) 41권을, 그 해 12월에 후집(後集) 12권을 편집, 간행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가 썼던 글들은 이보다도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강민경 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에서 ‘이규보가 살면서 붓 가는대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풀어 놓은 시와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고려라는 왕조를 살았던 한 지식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라고 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역사는 사건 중심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 당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담아내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의 우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800년 전의 고려 사람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단순히 <동국이상국집>을 오늘날의 언어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림과 사진 등, 내용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들을 더하여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서설을 통하여 백운거사 이규보를 설명한 다음에는 일종의 자서전 같은 내용을 시작으로 이규보가 살아가던 방식, 이규보를 둘러싸고 있던 가족, 친구 그리고 친지에 관한 내용, 이규보의 글짓기, 이규보의 행적,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유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가에 대한 작가적 상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80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가는 대목이 너무 많았습니다. 배경이 없어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청년시절, 거칠 것이 없는 성격으로 그나마 얻은 관직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말년에는 권력자의 눈에 들어 고위관직에도 올랐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정하면 또한 사람을 이긴다”라는 <사기; 오자서 열전>에 나오는 유자의 언명을 인용한 이규보의 자기 성찰에 저 역시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다만 자신의 실패가 사람이 하늘을 이긴 셈이라면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이규보와는 달리 저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 과오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이 과히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에 나오는 ‘저문 봄 강가에서 그대를 보낸 뒤 느낌이 있어(暮春江上 送人後有感)’이 <동문선 권19, 칠언절구>에 나오는 정지상의‘그대 보내며(送人)’을 떠오르게 한다는 대목이 마음이 걸립니다.
“늦은 봄에 가는 그대 보내고 돌아오니 / 눈에 가득한 방초(芳草)에 마음 상하네 / 마들날 조각배가 돌아온다면 / 뱃사공에게 알려주리라 / 이내 낀 강 천리에 아득한데 / 마음은 버들개지인 양 어지러이 날린다 / 하물며 꽃 지는 시절에 / 그대 보내고 서운하지 않으랴 / 석양 놀 해에 비쳐 불그레하고 / 멀리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름을 다툰다 / 강가 버들 휘늘어진 가지를 / 가는 손 얽매어 떠날 줄 모르누나 (176쪽)
”비 개인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 그대 보내는 남포에서 슬픈 노래 울먹이네 / 대동강 물은 그 어느 때에 마르려는가 /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에 더하고 더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