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독서 여행자
박시하 지음, 안지미 그림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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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두 번씩 갈아타고 출퇴근을 한지도 벌써 2년 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환승이 불편한데도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시 무렵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은 부족한 잠을 벌충하고 있거나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지만 드물게는 책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이분들은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박시하 시인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지하철 독서여행자를 썼다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읽고 찾아 읽었습니다. 특히 서울에 사는 보통사람들의 대분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책읽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런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나 관심을 가지게 됐고그들을 모습을 비롯하여 그들이 읽는 책과 관련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을 살펴왔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한 해 동안을 그리했던 모양으로 모두 25꼭지의 이야기를 모았고 이를 4계절로 나누어놓았습니다. 봄에 5꼭지, 여름에 6꼭지, 가을과 겨울에 7꼭지 등인데 겨울을 8꼭지로 늘렸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어떻든 시인은 지하철을 타면서 모두 25명의 책 읽는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읽고 있던 25권의 책의 주제와 책 읽는 이의 행색으로 미루어 그 책을 읽게 된 사유를 유추하고, 거기에 시인이 그책을 읽고 느낀 점을 더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주제와 관련된 시인의 경험까지도 더합니다. 때로는 동떨어진 듯한 이야기도 같이 섞어 넣기도 합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제가 읽은 책도 꽤나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헤아려보니 25권들의 책 가운데 제가 읽어 본 책은 10권에 불과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것처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읽는 책도 다양해서 소설이 주류를 이루기는 해도, 교양서는 물론 철학, 시집, 만화, 동화, 심지어는 학습서도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학원들이 밀집해 있어선지 지하철에서 학습서를 읽는 학생들을 가끔 보기도 합니다.


시인이 지하철에서 만난 책 읽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모습은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 https://sarak.yes24.com/blog/yang412/review-view/19343775>가 연상됩니다. <바깥 일기>를 읽고서 따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책의 말미를 보면 시인이 지하철에서 만난 책들의 목록이 덧붙여져 있는데 읽어보지 못한 책인 경우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구매해서 읽어보신 것 같습니다. 그밖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하여 인용한 책들도 밑줄 긋기라는 제목으로 목록을 만들어두었습니다. 시인이 밑줄을 그어놓은 글 가운데 눈길이 가는 몇 대목을 적어두려 합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띤 대목은 파스칼 키냐르가 <옛날에 대하여>에 적었다는 시간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땅(Terra invisibilis)”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묘한 느낌이 드는 대목도 있습니다. 여름의 첫 번째 꼭지는 유난히 바람이 불던 가을이었다. 깊고 허무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그 계절 동안 나는 절망을 새로 익혔다. 절망은 왜 늘 새로운가. 나는 슬픔에 차서 죽음을 꿈꿨다.(69)” 여름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가을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생뚱맞다는 느낌과 함께 시인이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가을의 두 번째 꼭지에서도 만났습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삶보다는 죽음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146)” 이어 나오는 설명이 충분히 공감되지 않는 것은 지하철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하철에 타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보게되었다. 그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그들이 아름답다거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하철 속의 사람들이 불행해 보였기 때문이고, 그들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237)”라는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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