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현 / 인디펍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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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다녀오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건너 방에 가듯 쉽게 다녀오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는 국악을 전공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발령을 받기 전에 유럽을 두루 구경한 끝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한 경험을 담아낸 책입니다.


작가가 세운 여행 목표는 제가 보기에도 아주 간결하고 젊은이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셀로나에서는 동네 산책, 요가, 미사, 햇빛 쬐기, 자전거 타기, 밥지어 먹기, 낮잠 자기 등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굳이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할까 싶은 대목입니다.


스페인 와인 마구마시기가 할 일 목록에 있는 것처럼 술에 관해서는 철학이 뚜렷해 보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2.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주종 가리지 않고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꽃말처럼 술말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참신한 착상도 선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인용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고전요리 책 작가, 펠레그리노아르투시는 살면서 때때로 젤라또를 먹는 기쁨을 누리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등입니다.


저는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만, 빠에야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고 하는데, 제가 즐기는 단체여행에서 하루 한 끼 빠에야를 먹었다면 여행사에 전화를 했을 것 같습니다. 비빔밥이라면 하루에 한 끼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빠에야는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교단에 서실 분이라서인지 대체적으로 원샷이라던가 쎄비다’(그나마 쌔비다가 옳은 속어표현이군요)와 같은 속어 혹은 한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리하겠습니까?


사실은 준비하고 있는 책에서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야기도 다룰 예정이라고 읽게 되었습니다만, 바르셀로나에서 압생트를 마실 수 있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프랑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압생트를 죽음과 영감의 술이라고 했습니다.“독하고 값싸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술이었다는 그 압생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기 전에 마셨다는 그 압생트. 마시면 초록 요정이 보인다는 그 압생트. 오스카 와일드가 마시곤 바닥에서 튤립이 피는 것을 보았다는 그 압생트. 내가 그 술을 마실 줄이야!”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방법도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바르셀로나를 그저 한나절 구경하는 것으로 끝났던 여행이 몹시 아쉬웠던 탓에 바르셀로나에서 무려 한 달씩이나 살았다는 작가가 경험하거나 겪어본 것이 너무 소박하더라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것들을 눈에 담아보는 일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그것도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라서 아쉬웠습니다. 부피도 많지 않아서 단숨에 읽어내기는 했습니다만, 크게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는 듯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피게레스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에 다녀오셨다는데 카탈루냐 미술관과 현대미술관 등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술관에는 다녀오셨는지 ,언급이 없어서 궁금합니다. 하지만 기차여행에 관하여 적어놓은 대목은 새겨볼 만했습니다. “나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은근한 소음과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는 느낌. 조용히 하는 주변 관찰. 무엇보다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한번 지나간 창밖 풍경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진 찍을 걸!’하는 포토제닉한 순간이 많지만 실제로는 다 놓친다. 한 지점을 자세히 관찰하기 어렵고 그림을 그릴수도 없다. 구름은 계속해서 바뀐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눈으로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무엇보다 말미에 정리해놓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상의 편린들을 보면 작가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일상이 그보다 더 평범할 수는 없을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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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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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이 물었다>라는 제목만으로는 헷갈릴 수 있습니다. 동명의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라는 부제까지 붙여야 아나 아란치스가 쓴 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A MORTE E UM DIA QUE VALE A PENA VIVER>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죽음은 살 가치가 있는 날의 하나라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완화의료를 전공한 저자가 20여년이 넘도록 임종을 맞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면서 깨닫게 된 성찰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저자는 아주 어렸을 적에 말초동맥질환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의사기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의사가 되어 해부학실습을 처음 받던 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기 마련입니다만, 저자는 실습을 하게 될 시신을 지켜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정말 특별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구나 싶습니다. 임상실습을 처음 나가서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던 순간도 회고하고 있어서 저의 기억도 되살려 보았습니다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4학년 때는 집안 사정도 있었지만, 유난히 많은 죽음을 지켜보던 끝에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소명을 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에 1년 뒤에 학업에 복귀하여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적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인용한 사람들은 이유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이든 견뎌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은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완화의료라는 분야는 생소할 것 같습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성인을 위한 완화의료의 개정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80)”


세계보건기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완화의료에서는 죽음에 맞서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까지도 해결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하는 부제를 죽음이 물어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살아온 날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곳곳에서 죽음과 관련한 좋은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꼽은 말씀을 지우베르투 지우라는 분의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나는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으나, 죽는 것은 두렵다. / 죽음은 사후의 문제지만, / 죽는 것은 나이고, / 그것은 나의 마지막 행위이며, /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해야만 한다. /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 대통령처럼, / 나는 떠난다는 것 알면서, 살면서 죽어야 한다.(90)”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호스피스 활동을 해온 김여환 선생님의 추천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죽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흰 머리카락이나 주름살 같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박완서 작가가 <보시니 참 좋았다>에서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 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된다라고 한 것처럼 웰다잉은 삶의 골동품 같은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무엇인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살명서 차곡차곡 더께가 되어 얻는 삶의 결과물인 셈이다.(12)“ 명품이라 할 수 있는 골동품은 일단 태어날 때부터 명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세월의 더께가 더해지면서 가치가 더 높아지는 셈이겠지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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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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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과는 다른 형식의 책을 읽었습니다. 독일 작가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아마도 작가일수도) 화자가 벨기에에서 만난 영국의 건축사가 아우스터리츠를 처음 만난 뒤로 가끔씩 만나서 들은 그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듯하다가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라고 서술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에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라거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는 과정은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의 녹투라마 동물원이아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모습을 서술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시선은 아주 세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차가 양쪽에 기이한 뾰족탑이 달린 아치를 지나 어두운 정거장으로 서서히 들어와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 당시 벨기에에서 보낸 시간 내내 떠나지 않던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라고 적은 대목처럼 풍경은 물론 화자 자신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4살이던 1939년 가을 영국 구조단체의 유대어린이 호송작전(Kindertransport)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당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되기 전입니다)의 수도 프라하에서 영국으로 보내져 웨일스 지방의 칼뱅파 목사 부부의 슬하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데이비스 얼라이스라는 영국식 이름을 얻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프라하에서의 기억은 조금씩 잊게 되었습니다. 양부모가 아우스터리츠의 과거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아우스터리츠의 행보를 화자가 받아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자가 전하는 아우스터리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작업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공간을 찾아가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것입니다. 저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저의 삶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경관기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업은 아직은 현장을 찾아가는 단계가 아니라 남아있는 기억을 글로 옮기는 단계입니다만, 어느 정도 뼈대가 잡히면 현장도 찾아가보려 합니다.


아우스터리츠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여러 도시의 공간에 흩뿌려져 있어, 기억의 조각들을 조각그림맞추기 하듯 이어붙여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저자는 “‘시간의 외부에 있는 존재( Das Außer-der-Zeit-Sein)’는 시간의 배열이 아닌 공간적 배열 원칙을 따르게 된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성장과정의 기억을 짜 맞추는 작업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실제로는 공간의 배열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름 아우스터리츠(Austerlitz)는 나폴레옹 시기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라고 합니다.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은 물론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리엔바트의 아우쇼비츠(Auschowitz) 샘물, 테레지엔슈타트의 바우쇼비츠(Bauschowitz) 분지 등의 이름에서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를 암시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아무래도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전자책은 물 흐르듯이 읽어낼 수 있지만 흐름을 되돌려서 음미하듯이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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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치유를 파는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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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파는 찻집이라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치유를 어떻게 파는가 해서 말입니다. 알록달록한 표지도 눈길을 끌었음을 고백합니다. 작가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으로는 <치유를 파는 찻집>이 처음입니다. 치유를 판다는 찻집 쇼와당에서는 커피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사장 키리코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치유사 노릇을 하는데 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 기상천외하다는 것입니다. 일용직으로 들어왔다가 점장으로 승격한 캇키가 사장을 대신하여 맛있는 차를 만들어 내고 있을 뿐 아니라 키리코의 치유작업에 보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치유보조 역할을 하는 인물로는 자칭 영능력자라고 하는 뉴도씨, 퀵서비스 일을 하는 료 등이 있다. 그밖에도 쇼와당의 단골손님들이 사건에 따라서 보조 역할을 맡아 한답니다.


캇키씨가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전수받은 것은 우연히 한적하고 아름다운 곶에 있는 찻집을 방문했다가 소소한 마법이라는 비법을 배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작가의 다른 작품 <무지개 곶의 찻집>에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등장인물은 물론 장소 역시 서로 연계되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어찌되었거나, 쇼와당에 가면 고민거리를 해결해준다는 소문이 꽤나 널리 퍼져 있는 모양입니다. 남편과 쇼와당이 공식적으로 심리치료소나 탐정사무소를 표방하지 않는 찻집임에도 치유를 판다고 하는 이유는 찻집에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 사장 키리코 씨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종의 선수금조로 찻집의 계산대 옆에 있는 감실에 모신 신 앞에 있는 새전함에 헌금을 하도록 강요(?)할 뿐 아니라 고민이 잘 해결되었을 때는 큰 돈을 내도록 역시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사별한 뒤로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유리코 씨의 고민이 <치유를 파는 찻집>에서 처음 등장하는 치유의 사례입니다. 키리코씨가 준비한 문제해결방식은 유리코와 시어머니가 정면에서 맞붙는 방식이었습니다. 상대의 단점을 열 개씩 적고 비난하는 방식을 몇 차례 반복하도록 만들어 더 이상 단점을 발굴해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한 뒤에는 장점을 적어 칭찬하도록 한 것입니다. 결국 유리코와 시어머니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고부간의 갈등이 종료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연은 쇼와당의 단골인 시오리의 언니 키라라가 어떤 남자가 치근대고 있어 문제가 된다는 사연입니다. 역시 쇼와당의 단골인 전직 킥복싱선수이자 화과자 가게의 사장인 세이스케씨가 치유보조자로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사례의 반전은 키라라씨가 따르는 남자로부터 금품을 우려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연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료타로가 의뢰한 고민으로 어머니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새전을 낼 여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치유보조자들이 새전을 대신하여 내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사례를 해결하는 방식도 당사자를 만나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었는데, 료타로의 어머니 마사코씨는 부유한 집안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벽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키리코씨는 행복은 얻는 게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 몸의 가치를 떠올리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의 값으로 환산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고 행복한지 기억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네 번째 사건은 역시 쇼와당의 단골로 53살 된 회사원 코헤이씨가 조기 퇴직 이후의 삶으로 고민한다는 내용입니다. 코헤이씨가 고민하는 것은 가족들을 위하여 재취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젊었을 때 꿈꾸었던 록큰롤 가수로 새 출발할 것인가 였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코헤이씨의 가족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 사연은 캇키의 절친인 양과자점의 치카가 결혼을 앞두고 사기를 당해서 돈을 잃은 것도 모자라 부모님까지도 돈을 잃게 되자 죽음을 생각하게 된 사연입니다. 치카가 의뢰한 것은 아니지만 낌새를 눈치 챈 캇키가 키리코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캇키의 사연과 키리코 사장의 사연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치유사와 보조치유사도 문제를 안고 살아왔던 것이고 모두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한다는 행복한 결말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키리코가 악착같이 새전을 모으는 이유도 밝혀집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작가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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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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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트루게네프의 대표작입니다. 박시하의 <지하철 독서여행자; https://blog.naver.com/neuro412/223546649728>에 나온 이야기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트루게네프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게 된 책입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첫사랑>에는 표제작 첫사랑을 비롯하여 귀족의 보금자리, 무무 등을 담은 소설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어찌 보면 황당한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정혼한 여자를 가로채는 그야말로 황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버지와 아들이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트루게네프의 <첫사랑>은 한 여자와 아버지의 삼각관계를 다루었습니다. 아들이 연모하는 여성이 아버지와 사랑을 나눈다는 선택을 한 셈이니 아버지는 아들이 그 여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들이 연모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여성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에는 부자간의 천륜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1883년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집 곁채에 몰락한 공작부인 가족이 세 들어옵니다. 담 너머로 공작부인의 딸 지나이다를 보게 된 블라지미르는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스물한 살이라는 그녀는 여러 남자들의 애정공세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대목을 보면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 모두를 밧줄에 묶어 자기 발밑에 꿇어 엎드리게 했다. 그녀는 그들의 마음속에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기분 내키는 대로 그들을 조롱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52)”


다섯 살이라는 나이차가 있는 블라지미르도 그녀의 어장관리 대상이 되어 몰입해야 할 대학입시도 팽개치게 됩니다. 그녀의 밀당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이겠지요. 그런 그녀가 몸과 마음을 준 사람은 알고 보니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였습니다. 지나이다와 아버지의 애정행각이 드러나고 어머니는 시내로 이사를 가면서 지나이다와 블라지미르의 관계는 소원해지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블라지미르의 지나이다에 대한 사랑은 여성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풋사랑이었다면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에 대한 지나이다의 사랑은 현실적인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대상이 유부남인 것과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가진 남자를 차지하겠다는 빗나간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사랑이 아닐까요?


두 번째 소설 <귀족의 보금자리> 역시 사랑이야기입니다. 변방에 있던 러시아에 유럽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혼란에 빠지던 1840년대의 러시아의 귀족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른다섯 살인 라브레츠키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바람이 난 아내를 두고 러시아로 돌아왔는데, 4촌인 마리아 드리트리예브나의 어린 딸 엘리자베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됩니다. 엘리자베타는 <첫사랑>의 지나이다와는 달리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까닭에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다보니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신문에 죽었다는 기사가 떴던 라브레츠키의 아내 바르바라가 딸과 함께 돌아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남편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라브레츠키의 아내로 돌아오려고 모사를 꾸미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숙과 조카딸의 사랑도 깨지고 엘리자베타는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을 터입니다만 엘리자베타가 꼭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세 번째 <무무>는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이 우연히 발견한 강아지 무무를 돌보면서 생기는 여주인과의 갈등을 안타깝게 마무리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앞선 두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무무>는 사람과 개 사이의 진심이 통하는 사랑이야기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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