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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현 / 인디펍 / 2023년 6월
평점 :
해외여행을 다녀오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건너 방에 가듯 쉽게 다녀오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해외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는 국악을 전공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발령을 받기 전에 유럽을 두루 구경한 끝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살기를 한 경험을 담아낸 책입니다.
작가가 세운 여행 목표는 제가 보기에도 아주 간결하고 젊은이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셀로나에서는 동네 산책, 요가, 미사, 햇빛 쬐기, 자전거 타기, 밥지어 먹기, 낮잠 자기 등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굳이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할까 싶은 대목입니다.
스페인 와인 마구마시기가 할 일 목록에 있는 것처럼 술에 관해서는 철학이 뚜렷해 보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2.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주종 가리지 않고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꽃말처럼 술말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참신한 착상도 선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인용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고전요리 책 작가, 펠레그리노아르투시는 ’살면서 때때로 젤라또를 먹는 기쁨을 누리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등입니다.
저는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만, 빠에야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고 하는데, 제가 즐기는 단체여행에서 하루 한 끼 빠에야를 먹었다면 여행사에 전화를 했을 것 같습니다. 비빔밥이라면 하루에 한 끼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빠에야는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교단에 서실 분이라서인지 대체적으로 ‘원샷’이라던가 ‘쎄비다’(그나마 ‘쌔비다’가 옳은 속어표현이군요)와 같은 속어 혹은 한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리하겠습니까?
사실은 준비하고 있는 책에서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야기도 다룰 예정이라고 읽게 되었습니다만, 바르셀로나에서 압생트를 마실 수 있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프랑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압생트를 ’죽음과 영감의 술‘이라고 했습니다.“독하고 값싸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술이었다는 그 압생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기 전에 마셨다는 그 압생트. 마시면 초록 요정이 보인다는 그 압생트. 오스카 와일드가 마시곤 바닥에서 튤립이 피는 것을 보았다는 그 압생트. 내가 그 술을 마실 줄이야!”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방법도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바르셀로나를 그저 한나절 구경하는 것으로 끝났던 여행이 몹시 아쉬웠던 탓에 바르셀로나에서 무려 한 달씩이나 살았다는 작가가 경험하거나 겪어본 것이 너무 소박하더라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것들을 눈에 담아보는 일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그것도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라서 아쉬웠습니다. 부피도 많지 않아서 단숨에 읽어내기는 했습니다만, 크게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는 듯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피게레스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에 다녀오셨다는데 카탈루냐 미술관과 현대미술관 등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술관에는 다녀오셨는지 ,언급이 없어서 궁금합니다. 하지만 기차여행에 관하여 적어놓은 대목은 새겨볼 만했습니다. “나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은근한 소음과 이리저리 몸이 흔들리는 느낌. 조용히 하는 주변 관찰. 무엇보다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한번 지나간 창밖 풍경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진 찍을 걸!’하는 포토제닉한 순간이 많지만 실제로는 다 놓친다. 한 지점을 자세히 관찰하기 어렵고 그림을 그릴수도 없다. 구름은 계속해서 바뀐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눈으로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무엇보다 말미에 정리해놓은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상의 편린들을 보면 작가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일상이 그보다 더 평범할 수는 없을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