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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첫사랑>은 트루게네프의 대표작입니다. 박시하의 <지하철 독서여행자; https://blog.naver.com/neuro412/223546649728>에 나온 이야기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트루게네프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게 된 책입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첫사랑>에는 표제작 첫사랑을 비롯하여 귀족의 보금자리, 무무 등을 담은 소설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어찌 보면 황당한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정혼한 여자를 가로채는 그야말로 황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버지와 아들이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트루게네프의 <첫사랑>은 한 여자와 아버지의 삼각관계를 다루었습니다. 아들이 연모하는 여성이 아버지와 사랑을 나눈다는 선택을 한 셈이니 아버지는 아들이 그 여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들이 연모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여성에게 접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에는 부자간의 천륜도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1883년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집 곁채에 몰락한 공작부인 가족이 세 들어옵니다. 담 너머로 공작부인의 딸 지나이다를 보게 된 블라지미르는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스물한 살이라는 그녀는 여러 남자들의 애정공세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대목을 보면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 모두를 밧줄에 묶어 자기 발밑에 꿇어 엎드리게 했다. 그녀는 그들의 마음속에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기분 내키는 대로 그들을 조롱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52쪽)”
다섯 살이라는 나이차가 있는 블라지미르도 그녀의 어장관리 대상이 되어 몰입해야 할 대학입시도 팽개치게 됩니다. 그녀의 밀당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이겠지요. 그런 그녀가 몸과 마음을 준 사람은 알고 보니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였습니다. 지나이다와 아버지의 애정행각이 드러나고 어머니는 시내로 이사를 가면서 지나이다와 블라지미르의 관계는 소원해지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블라지미르의 지나이다에 대한 사랑은 여성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풋사랑이었다면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에 대한 지나이다의 사랑은 현실적인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대상이 유부남인 것과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가진 남자를 차지하겠다는 빗나간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사랑이 아닐까요?
두 번째 소설 <귀족의 보금자리> 역시 사랑이야기입니다. 변방에 있던 러시아에 유럽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혼란에 빠지던 1840년대의 러시아의 귀족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서른다섯 살인 라브레츠키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바람이 난 아내를 두고 러시아로 돌아왔는데, 4촌인 마리아 드리트리예브나의 어린 딸 엘리자베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됩니다. 엘리자베타는 <첫사랑>의 지나이다와는 달리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까닭에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다보니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신문에 죽었다는 기사가 떴던 라브레츠키의 아내 바르바라가 딸과 함께 돌아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남편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라브레츠키의 아내로 돌아오려고 모사를 꾸미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숙과 조카딸의 사랑도 깨지고 엘리자베타는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을 터입니다만 엘리자베타가 꼭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세 번째 <무무>는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이 우연히 발견한 강아지 무무를 돌보면서 생기는 여주인과의 갈등을 안타깝게 마무리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앞선 두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무무>는 사람과 개 사이의 진심이 통하는 사랑이야기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