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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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과는 다른 형식의 책을 읽었습니다. 독일 작가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아마도 작가일수도) 화자가 벨기에에서 만난 영국의 건축사가 아우스터리츠를 처음 만난 뒤로 가끔씩 만나서 들은 그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듯하다가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라고 서술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에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라거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우스터리츠를 만나는 과정은 화자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의 녹투라마 동물원이아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모습을 서술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시선은 아주 세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차가 양쪽에 기이한 뾰족탑이 달린 아치를 지나 어두운 정거장으로 서서히 들어와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 당시 벨기에에서 보낸 시간 내내 떠나지 않던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라고 적은 대목처럼 풍경은 물론 화자 자신의 미묘한 감정까지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4살이던 1939년 가을 영국 구조단체의 유대어린이 호송작전(Kindertransport)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당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되기 전입니다)의 수도 프라하에서 영국으로 보내져 웨일스 지방의 칼뱅파 목사 부부의 슬하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데이비스 얼라이스라는 영국식 이름을 얻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프라하에서의 기억은 조금씩 잊게 되었습니다. 양부모가 아우스터리츠의 과거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아우스터리츠의 행보를 화자가 받아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자가 전하는 아우스터리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작업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공간을 찾아가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것입니다. 저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저의 삶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경관기행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작업은 아직은 현장을 찾아가는 단계가 아니라 남아있는 기억을 글로 옮기는 단계입니다만, 어느 정도 뼈대가 잡히면 현장도 찾아가보려 합니다.


아우스터리츠에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여러 도시의 공간에 흩뿌려져 있어, 기억의 조각들을 조각그림맞추기 하듯 이어붙여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저자는 “‘시간의 외부에 있는 존재( Das Außer-der-Zeit-Sein)’는 시간의 배열이 아닌 공간적 배열 원칙을 따르게 된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성장과정의 기억을 짜 맞추는 작업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실제로는 공간의 배열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름 아우스터리츠(Austerlitz)는 나폴레옹 시기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라고 합니다.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은 물론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리엔바트의 아우쇼비츠(Auschowitz) 샘물, 테레지엔슈타트의 바우쇼비츠(Bauschowitz) 분지 등의 이름에서 이 책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를 암시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아무래도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전자책은 물 흐르듯이 읽어낼 수 있지만 흐름을 되돌려서 음미하듯이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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