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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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이 물었다>라는 제목만으로는 헷갈릴 수 있습니다. 동명의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라는 부제까지 붙여야 아나 아란치스가 쓴 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A MORTE E UM DIA QUE VALE A PENA VIVER>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죽음은 살 가치가 있는 날의 하나라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완화의료를 전공한 저자가 20여년이 넘도록 임종을 맞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면서 깨닫게 된 성찰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저자는 아주 어렸을 적에 말초동맥질환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의사기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의사가 되어 해부학실습을 처음 받던 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기 마련입니다만, 저자는 실습을 하게 될 시신을 지켜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정말 특별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구나 싶습니다. 임상실습을 처음 나가서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던 순간도 회고하고 있어서 저의 기억도 되살려 보았습니다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4학년 때는 집안 사정도 있었지만, 유난히 많은 죽음을 지켜보던 끝에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소명을 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에 1년 뒤에 학업에 복귀하여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적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인용한 사람들은 이유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이든 견뎌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은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완화의료라는 분야는 생소할 것 같습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성인을 위한 완화의료의 개정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80)”


세계보건기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완화의료에서는 죽음에 맞서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까지도 해결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하는 부제를 죽음이 물어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살아온 날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곳곳에서 죽음과 관련한 좋은 말씀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꼽은 말씀을 지우베르투 지우라는 분의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나는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으나, 죽는 것은 두렵다. / 죽음은 사후의 문제지만, / 죽는 것은 나이고, / 그것은 나의 마지막 행위이며, /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해야만 한다. /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 대통령처럼, / 나는 떠난다는 것 알면서, 살면서 죽어야 한다.(90)”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호스피스 활동을 해온 김여환 선생님의 추천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죽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흰 머리카락이나 주름살 같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박완서 작가가 <보시니 참 좋았다>에서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 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된다라고 한 것처럼 웰다잉은 삶의 골동품 같은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무엇인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살명서 차곡차곡 더께가 되어 얻는 삶의 결과물인 셈이다.(12)“ 명품이라 할 수 있는 골동품은 일단 태어날 때부터 명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세월의 더께가 더해지면서 가치가 더 높아지는 셈이겠지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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