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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민음사판을 기준으로 전4권의 분량이 2988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여 읽기를 주저한 것도 사실입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1805년부터 1820년에 이르고, 모스코바, 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지역과 러시아가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투가 벌어진 지역을 아우릅니다. 등장인물도 559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일일이 헤아려볼 수도 없습니다. 제목 그대로 치열한 전투현장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헛되고도 헛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1권은 1부에서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모스크바의 사교계를 그려냈습니다. 주인공들을 서로 엮기 위하여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셈입니다. 또한 당대의 풍운아 나폴레옹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인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귀족들이 주로 참석하는 러시아 사교계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려내고 있는 프랑스 사교계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물론 등장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점은 별도로 하더라고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문학, 음악, 미술 등이 화제가 되고 관련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도 참석하여 화제를 풍성하게 하는 반면,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이런 점이 부족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혼담이나 인사청탁이 오가는 분위기입니다. “이곳 모스크바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만찬과 험담으로 바쁩니다.(138쪽)”라는 보리스의 설명이 정확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2부는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 분위기를 다루었습니다. 초반에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로 러시아 군이 밀리는 분위기이지만 밀리면서도 반전을 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3부는 전투장면과 후방의 사교계의 분위기가 섞입니다. 하지만 동맹국이라는 오스트리아가 러시아를 대하는 것을 보면 러시아가 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나섰는지 그 이유가 실감되지 않습니다. 결국 3부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러시아의 대패로 마무리가 되고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이 공작도 부상을 입고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2권은 1부에서 5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로 러시아군은 보급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제가 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프랑스와 러시아는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전장에 나섰던 청년들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안드레이 공작도 나폴레옹의 배려로 살아 돌아오지만 아내는 산후 합병증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정전이 된 다음부터는 돌아온 청년들이 짝을 찾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그 과정에서 사냥이나 가면놀음가 같은 러시아 귀족들의 놀이문화가 소개됩니다. 그런가하면 일부 젊은이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피에르의 아내 엘레나는 염문을 뿌린 결과 피에르가 결투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남동생 아나톨 역시 방탕하고 난잡한 생활을 벌이다가 안드레이 공작의 약혼녀 나타샤를 유혹하여 납치하려 들었다가 발각나서 모스크바에서 추방되기도 합니다. 물론 안드레이 공작과 나타샤와의 결혼에 부친이 반대하는 바람에 외국으로 요양을 떠나 소식이 끊어진 것이 원인이 된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사랑은 현실적인 것만큼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3권은 1부에서 3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편을 통해 전투장면이 긴박하게 펼쳐집니다. 앞서 강화조약을 맺었던 나폴레옹이 서유럽의 군사를 규합하여 1812년 6월 12일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시작하고 1부에서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황제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입대를 자원하는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알렉산드르 황제의 러시아 역시 대응하기 위하여 동원령을 내려 편성한 군대를 서쪽으로 보내지만 전투마다 패하면서 밀리고 밀려 모스크바까지 내주게 됩니다.
마지막 4권은 1부에서 4부에 이르러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에필로그1부와 에필로그2부가 더해집니다. 1부에서는 프랑스군에게 점령된 모스크바에서 탈출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황망한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그러는 와중에 전쟁을 수행해야 할 러시아 군대는 파벌을 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피에르는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혔고, 안드레이 공작은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결국은 나타샤와 마리아 공작영애의 돌봄 속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2부와 3부에서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군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철군을 시작하고 퇴각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군은 퇴각하는 프랑스군과 싸워야 한다는 측과 쿠투조프처럼 전투 없이 추격하는 측으로 나뉩니다. 쿠투조프는 파멸해가는 프랑스군과 충돌하여 남는 것은 병력의 손실이라는 계산입니다. 프랑스 측의 강화조약을 맺자는 요청도 거절합니다. 4부에서는 러시아군이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추격하여 파리에 이르는 한편, 러시아 내부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수습하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가운데 안드레이 공작은 죽음을 맞았고, 피에르와 나타샤, 니콜라이와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맺어질 것을 예감합니다.
에필로그1부와 2부는 <전쟁과 평화>를 쓰게 된 작가의 역사철학을 소개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4명의 주인공의 결혼과 전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여기까지 이야기의 전반을 따라가다 보면 전투현장과 후방에서 전쟁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길게 이어지는 반면,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있는 듯 없는 듯합니다. 작가가 고려했다는 제목, ‘세 시기’,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등도 좋아 보이는데 굳이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을 선택한 깊은 뜻이 와 닿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전쟁과 평화>에 덧붙이는 말’이라는 부록을 달은 듯합니다. 작가로서 이 작품에 대한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설명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역사 사건들에 대한 나의 기술과 역사가들의 해석 사이에 놓인 차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4권 677쪽)’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사료가 과연 정확한 것인가에 의문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