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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
승계호 지음, 석기용 옮김 / 반니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는 미국 텍사스의 오스틴대학 교양학부의 승계호 교수의 책입니다. 법학과 철학을 전공한 승계호교수는 문헌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그 문헌의 문화적 주제의 모체, 즉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주제들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해석학에서 기호학과 주제학>에서 제기한 문화 주제학적 방법론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는 이와 같은 문화 주제학적 방법을 스피노자적 서사시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업에 적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주제를 낭만주의적 자연개념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천이 되었던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토대로 해석했습니다. 저자는 1677년에 발표된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에서 고통 받는 영혼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다섯 단계의 서사시적 여정을 설명했는데, 이 여정은 인간 실존의 보편적인 극의 스피노자의 도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파우스트나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지크프리트의 삶을 스피노자의 도식으로 설명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승교수가 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순서로 맥락을 이어간 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1772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832년에 완성이 되었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1883년에 시작하여 1885년에 완성되었으며, 그리고 네 개의 악극으로 구성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이 경우 1854년에 라인의 황금, 1856년에 발퀴레, 1871년에 지크프리트 그리고 1874년에 신들의 황혼이 완성되었습니다.
주요 활동이 시기로 보아도 괴테(1749~1832)-바그너(1813~1883)-니체(1844~1900)의 순서임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와 니체의 순서를 바꾸어 놓은 것은 바그너와 니체와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매료되어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녹여냈다고 하는데 ‘음악가가 무슨 철학을?’하는 인식이 퍼지면서 바그너가 일방적으로 니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일반화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는 철학적 관점에서 세 작품을 해석하고 있어 이해는 물론 읽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머리말에 이은 본문은 모두 열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1~4까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5~8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9는 괴테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신비적 자연주의를 그리고 마지막 10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앞서 이해는 물론 읽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은 600쪽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이 일종의 독후감처럼 읽혀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특별한 대목에서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 혹은 주석을 달아가는 방식이었는데, 그 정도가 방대하여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한참 만에 줄거리로 돌아오곤 하기 때문에 <파우스트>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미 읽은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쫓아 가는 것도 힘겨웠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파우스트의 초입에 나오는 ‘천상의 서곡’에 나오는 ‘관념’이라는 단어를 ‘영원의 영역에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형상)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초월적인 존재자로 부활시켰으며, <판단력비판>에서는 이데아를 내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파우스트>가 스피노자주의에 충실하면서도 괴테의 플라톤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우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개의 이야기들을 다시 읽은 다음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