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인생의 의미 -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찾은 가슴 벅찬 7가지 깨달음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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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횡재를 한 느낌이 든 책읽기였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르웨이 오슬로대학교 사회인류학과의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교수가 쓴 책입니다. 그는 삶의 의미라는 주제는 언제나 존재했다. 인간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과 방향성을 찾으려 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40여년을 사회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접촉을 통하여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특히 2016년 암이 발생한 것으로 진단받아 투병하면서 삶의 의미라는 주제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문에 들어있는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다름이다.”라고 한 점입니다. 남들이 하는 것이 좋아 보여 따라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는 삶의 선하고 유용한 의미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7가지의 공통점을 관계, 결핍, , 느린 시간, 순간, 균형, 실 끊기 등의 주제어로 풀어 설명합니다. 이런 대목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지속 가능하고 중립적이며 자유롭다. 삶의 의미는 관계로 이루어진다.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후, 우리 자신을 주위의 모든 것과 연결하는 실에 대한 긴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가는 실들이 모여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그 촘촘한 관계망 안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거대한 합창단을 이루며, 그 안에서 우리는각자 작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실타래가 바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첫 번째 주제 관계를 생각해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계는 동물세계는 물론 식물세계에서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Carla Bley)<혼자 하는 식사 Dining Alone>을 인용하는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원이란 음식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했습니다.


단조롭게 느껴지는 반주 속에서 식사를 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노랫말은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지만 사실을 혼밥의 쓸쓸함을 애써 감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만, 저에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인용들이 생소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외부와의 관계를 최소화하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꼭 틀렸을까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저자의 동료는 술에 취해 인생의 의미는 신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말이다. 반드시 자신의 생물학적 자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 경험하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배려, 겸손, 자기 확신은 더 없이 소중한 삶의 덕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주제에서도 느낀 바가 많았지만, 마지막 주제 실 끊기는 저자가 말기암 병동에 입원해서 가진 사유의 시간을 통하여 얻는 바를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 끊기는 모두에서 이야기한 관계를 통하여 형성한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이해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삶을 달관했을 노인이 젊은이들만큼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했고, 오히려 노인보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한 힌두교와 불교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좋은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모든 것의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며, 죽음의 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라는 대목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좋은 죽음이란 잘못을 보상하고,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후에 맞이하는 죽음이다.”라는 대목에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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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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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인지 <카사노바 호텔>, <바깥 일기>, <단순한 열정> 등 몇 권을 읽었습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느 책에선가 발견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8312월에 시작하여 86428일까지 불규칙하게 이어진 일기로 구성된 이야기형식이 독특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느끼게 된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한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과 자신과 함께한 어머니로서 그녀의 삶을 <한 여자>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알츠하이머 병으로 투병하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어머니와 함께 한 삶을 담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16-17)”이라고 적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29)”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 참으로 지난했음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647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145)”라고 절망적인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름이 지나서 부터의 심경을 정리하여 <한 여자>라는 작품을 구성한 모양입니다.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내 몸이 둘로 쪼개져 있다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면서도 그녀였다.(21)”라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런 인식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 나는 지금 분리된 상태에 있다.(159)’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에 이별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때로 뒤따라 세상을 하직하기도 합니다만, 과연 돌아가신 분이 남은 분에게 바라는 일일까 싶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탈출한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머니가 남겨놓은 편지에 적혀 있는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15)”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가끔 속옷을 적시기도 하고 집에 가자고 조르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보입니다.


의료진에 대한 불만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얀 잠옷을 간호사에게 주었는데, 어머니가 이 옷을 입고 땅속에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가가 직접 환복을 해드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고향을 찾아간 작가에게 이모와 사촌들이 넌 네 엄마를 쏙 빼닮았어. 꼭 네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아!(123)”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조금 울컥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닮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일 것 같습니다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재종 형님댁을 찾아갔습니다. 형님과 석양을 함께 바라보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형님께서 꼭 선친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목소리가 선친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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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 마음이 그림과 만날 때 감상은 대화가 된다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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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술관에 가기도 합니다만, 미술이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술 수필 분야를 개척해왔다는 이주헌님이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에서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풍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지만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그와 같은 배경 지식이 없더라고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처럼 내 안에서 떠도는 느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미술품 감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용한 다양한 작품들에 얽힌 다양한 배경지식을 들려주었습니다. 많은 그림들이 인용되고 있는데, 가끔은 저도 아는 그림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새로이 만나는 그림들이 대부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표식을 남긴 그림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독서하는 여인>입니다. 제가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보다도 책을 읽는 일은 빛을 찾고 만나는 일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어떤 거이어야 하는지, 우리는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알아갑니다. 등대가 뱃길을 알려주듯 책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환하게 비춰줍니다.”라는 책읽기 예찬론이 더 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구인지, 화가와 그녀의 관계는 물론 그녀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표식을 남긴 부분은 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혜로운 여행자의 가방은 가벼운 법입니다. 뒤피는 예술을 한다며 쓸데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니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긍정하고 밝게만 살고 싶었습니다.”라는 대목입니다. 야수파의 거장 라울 뒤피의 작품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네 삶이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긴 여행이라고 한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표식은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에 남겨놓았습니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멜쇠이의 책상 앞에 서 있는 이다를 설명하면서 인용한 시인데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책상 앞에 서서 무언가를 쓰는 모습인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곧 소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는 대목을 고독한자의 행복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하여 그림의 설명으로 곁들인 것입니다.


네 번째 표식은 클로드 모네에 대한 풍경은 하룻밤 사이에 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글이었습니다. 표지를 해놓은 이유는 제가 준비하고 있던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편에서 미셀 뷔시의 <검은 수련> 읽기와 모네가 작품활동을 하던 지베르니를 방문했을 때의 느낌을 보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초고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표식을 남긴 부분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세운 순진무구한 거짓말쟁이라는 제목으로 앙리 루소를 소개한 부분입니다. 작가는 앙리 루소를 못그린 그림으로 훌륭한 화가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작가는 여기에서 잘 그린 그림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소개합니다. “일단 시각적으로 매우 세련되고 조화로원 보기에 즐거울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일반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라고 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수정한 기준은 그 나름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조형적,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앙리 루소의 그림은 잘 그린 그림 같아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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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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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을 쓴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는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가수입니다. 이 책은 미셸이 H마트라는 한인 잡화점에서 장을 보면서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되살린다는 내용의 수필을 <뉴요커>에 기고하여 수많은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H마트는 한아름 마트를 줄인 것으로 미국 14개 주에 걸쳐 70여개의 가게가 영업중이라고 합니다. 이 가게예서는 만두피, , 뻥튀기, 조리퐁을 비롯하여 갖가지 밑반찬 등 한국 먹거리를 팔 뿐만 아니라 식당가에서는 뚝배기에 담은 찌개는 물론 떡볶이까지 파는 한국 음식 전문점과 탕수육, 짬뽕, 볶음밥과 짜장면 등 한국식 중식당이 있어서 그야말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보물창고와 같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근무하던 미국 남자와 결혼한 엄마는 작가가 한 살 때 한국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오레곤 주의 유진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는데,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엄격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자녀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미국 엄마들과 달리 딸의 외모, 화장, 옷차림, 공부 등 사사건건 간섭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엄마의 간섭에 딸은 저항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다만 먹는 것만큼은 한국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간섭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동부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호사다마라고 엄마가 암으로 진단을 받게 됩니다. 유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간병하기 시작했지만 엄마는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잃고서도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맛을 기억하는 작가는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기억만은 생생히 남았다. 이제 엄마를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라고 시작하는 <H마트에서 울다>는 작가의 절절한 사모곡인 셈입니다.


막내 이모가 대장암으로 타계한 2년 뒤에 이번에는 엄마가 췌장암으로 진단받은 것입니다. 평소에 배가 아팠는데도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은 때가 되면 낫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옛날 사람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아마도 한의원이든 병원이든 가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을 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췌장암 4기로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존율이 3퍼센트라고 했습니다.


대서양 연안의 필라델피아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그녀는 공연을 접고 태평양 연안의 유진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 간병에 나섰습니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서울에 있는 이모를 만나 함께 제주로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작별하는 과정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으로 한국에 도착해서는 입원을 해야 했고, 병세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유진으로 돌아가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카펜터스의 <비오는 날과 월요일, Rainy Days And Mondays>에 맞춰 첫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비내리는 월요일 아침,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는 노랫말인데도 결혼식에서 들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떻든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결혼도 하고 간병도 한 그녀의 효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얼마가 지나 엄마가 타계하였습니다. 아내를 잃은 아빠는 술에 의지하는 날이 많았지만, 그녀는 엄마를 생각하면 한국 음식을 만들고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 무렵 엄마는 간병하는 동안 고향집에서 만든 노래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악단 이름을 일본식 아침식사( Japanese Breakfast)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한류의 열풍이 불기 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H마트에서 울다>를 통하여 암환자를 간병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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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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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광우병이 위세를 떨치던 2000년 무렵 유럽에서 수입된 육골분이 가축사료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제1차 광우병파동이 일었습니다. 그 무렵 식약청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일본에서 열리는 해면상뇌증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우리나라의 광우병 관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이중섭 화백의 소 연작을 살펴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한 점을 자료에 넣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이중섭 화백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를 뒤쫓은 김탁환 작가의 <참 좋았더라>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현대의 국내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김탁환 작가의 작품은 <혁명>을 비롯하여 여러 편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책 <읽어가겠다>의 독후감을 김탁환 작가님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할 만합니다.”라고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잘 읽히고 울림을 느끼는 그런 작품들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중섭 화백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참 좋았더라>는 제목처럼 참 좋았습니다. 역사소설의 대가라고 명성처럼 이중섭이 머물고, 걷고, 바라봤을 풍경을 뒤쫓아 전국 곳곳을 누비면서 현장을 취재하고 관련 인물들을 면담하고, 이중섭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여 이야기를 엮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탁환 작가는 화가로서 진면목을 드러낸 때와 장소, 또 그와 같은 솜씨를 선보인 과정과 까닭에 천착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중섭 화백의 삶은 기구했던 것 같습니다. 해방 전에는 부유한 집안의 배려로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6.25동란으로 겨우 몸만 빼내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오면서부터는 어려운 생활을 영위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과 두 아들(태현, 태성)을 외가인 일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홀로 한국에 남은 그는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림으로 돈을 벌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궁리를 하였지만 여의치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산에서 고군분투하던 그는 통영의 공예가 유강렬의 초대가 가뭄의 단비였을 것 같습니다. 경상남도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이중섭은 공예가 유강렬, 화가 유택렬, 김용주, 최영림, 박생광, 시인 김춘수, 구상 등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수차례의 전시를 열었다. 당시 문인이나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분위기를 보면 서양의 근대미술의 사조를 우리 전통예술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통영에서 그의 수발을 든 남대일에게 가르쳐 줄 선생 잇구, 배울 교실 잇구, 아틀리에에 연필과 물감과 종애래 함깅도 말로 수두구리한데, 어케 여구메가 지옥이네? 하루하루 소중히 하라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아니라 턴국에서 보낸 한 철이니까니라고 미술수업에 전념하라 설득하는 모습을 보면, 강습소의 학동들에게 미학사를 가르치는 일도 소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해돋이보다는 해넘이에 의미를 두어왔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붉은 하늘을 그렸다. 지금까진 뜨거운 낮을 보내고 스러져가는 저물녘을 담으려 했다. 노을이 아무리 붉어도, 수평선 바로 아래엔 막막한 어둠이 뱀처럼 도사렸다. 허전하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물녘을 동틀 녘으로 바꿨다. 시작하기 직전의 붉음이요, 점점 밝아지는 붉음이요, 채워가는 붉음이다. 몸도 마음도 차오를 때, 소의 뿔과 입술에도 힘이 실린다. 첫 숨을 토한다.”라는 대목 때문입니다. 하늘가의 붉음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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