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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평점 :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인지 <카사노바 호텔>, <바깥 일기>, <단순한 열정> 등 몇 권을 읽었습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느 책에선가 발견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83년 12월에 시작하여 86년 4월 28일까지 불규칙하게 이어진 일기로 구성된 이야기형식이 독특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느끼게 된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한 여자로서 어머니의 삶과 자신과 함께한 어머니로서 그녀의 삶을 <한 여자>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알츠하이머 병으로 투병하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어머니와 함께 한 삶을 담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16-17쪽)”이라고 적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를 간병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29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 참으로 지난했음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6년 4월 7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145쪽)”라고 절망적인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름이 지나서 부터의 심경을 정리하여 <한 여자>라는 작품을 구성한 모양입니다.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내 몸이 둘로 쪼개져 있다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면서도 ‘그녀’였다.(21쪽)”라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런 인식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 ‘나는 지금 분리된 상태에 있다.(159쪽)’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에 이별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때로 뒤따라 세상을 하직하기도 합니다만, 과연 돌아가신 분이 남은 분에게 바라는 일일까 싶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탈출한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머니가 남겨놓은 편지에 적혀 있는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15쪽)”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가끔 속옷을 적시기도 하고 집에 가자고 조르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보입니다.
의료진에 대한 불만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얀 잠옷을 간호사에게 주었는데, 어머니가 이 옷을 입고 땅속에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가가 직접 환복을 해드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고향을 찾아간 작가에게 이모와 사촌들이 “넌 네 엄마를 쏙 빼닮았어. 꼭 네 엄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아!(123쪽)”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조금 울컥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닮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일 것 같습니다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재종 형님댁을 찾아갔습니다. 형님과 석양을 함께 바라보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형님께서 꼭 선친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목소리가 선친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