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양장)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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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를 처음 만난 것은 <바깥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무렵 지하철 등 공공의 장소가 마치 개인 사무실이라도 된 양 커다란 목소리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겨워하던 중에 떠오른 신박한 생각을 구체화하던 때입니다. 그렇게 떠드는 목소리를 녹음해서 한 편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침 <바깥일기>는 그런 생각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자전적 소설, 사회적 전기형 자서전, 일기 등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하는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지난 세기 말부터의 프랑스문학을주도한 이런 흐름은 '자아의 글쓰기'라고 요약된다고 합니다. 기억. 치매, 암 등 아니 에르노가 다루었던 주제들은 저 역시 관심이 많은 것들입니다. 아마도 단순한 열정을 읽게 된 것도 아니 에르노에 대한 관시미 최근에 높아졌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든 생각이자,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불륜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들어가기에 해당하는 글을 "올여름 나는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9)"라고 시작합니다. 성에 대하여 관대한 프랑스라고 해도 설마 공영방송에서 도색영화를 상영한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작가가 도색영화의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은 자신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하여 꼬투리를 풀어내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실제로 작가는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10)"라고 들어가는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사랑이야기를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11)"로 시작합니다. 청춘이건 장년이건, 노년이건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있건 그렇지 않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상황은 대부분의 사회에서지탄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건데, <단순한 열정>의 작가는 배우자가 있는 남자와의 사랑놀음을 까발리기로 한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자아 글쓰기'의 주제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불륜상대의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심모원려를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화자는 자신의 불륜에도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가 깊어지면 배우자가 있는 쪽이 혼인관계를 파하고 불륜 상대와 혼인관계를 맺으려 들 때 파국적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불륜관계를 이어 간다는 것은 두 사람이 진정 사랑은 한 것일까요?

두 사람의 관계도 남자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화자는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온몸이 아팠다고 했다. 처음에는 고통이 극심했지만 사람은 변하는 사정에 맞춰 살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과의 지난 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상실감을 달래다가 결국 그 사람과 공유했던 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단순한 열정>이 된 셈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순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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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사하라, 발칸, 아나톨리아 음악기행
신경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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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여행길에 두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적지 않고, 시차때문에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시간에 책을 읽는 만큼 완독에 이틀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읽고, 독후감은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에서 썼습니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작가 부부가 서아프리카의 말리, 세네갈, 모리타와, 모로코, 발칸의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마지막으로 아나톨리아의 터키와 쿠르디스탄 등의 오지를 여행하면서 민속음악을 영상으로 채록하는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발칸여행을 앞두고 우연히 눈에 띄어 여행길의 동반자로 삼게 되었습니다.

노동요와 같은 민요를 채록하는 작업을 하는 분들 이야기를 간혹 들었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의 민요를 비롯하여 민속악기 연주 등을 채집하는 여행을 해오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신정아 작가는 어려서부터 여행과 음악을 좋아했다는데 프랑스에 본사를 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던 중에 파리 본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외국 음악의 공연을 찾아다니다가 민속음악을 채록하는 일을 하는 남편을 만난 것이 이색적인 여행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그렇게 채록한 민속음악의 내용을 분석한 학술적 내용이라기 보다는 여행과정을 비롯하여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음악을 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지구촌 어디나 세계화의 물결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라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민속음악을 만나기 위해서는 오지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안정적인 상황이 유지되는 발칸지역이 아닌 서아프리카와 아나톨리아 등지의 경우처럼 심각한 내전상태인 나라를 여행할 때는 신변의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오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체로 소문으로 듣는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작가 부부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오지여행을 기획하는데 인연이 인연을 낳는 방식으로 오지여행을 이어오고 계신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서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신다는 것인데 외교부에서 알면 여행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만난 오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라는 쇙각때문인지, 아니면 오지사람들 특유의 선한 마음때문인지 처음 만나는 동아시아 끝에서 온 작가부부를 편하게 맞아 그틀이 사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두분이 하고 계시는 세계의 민속음악과관련된 내용을좈 소개하면 아프리카 민속음악의 특징은 악보가 있거나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니라 연주를 이끄는 사람이 즉흥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또한 음악에 사용되는 악기 또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가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아프리카 음악은 타고난 끼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두분의 여행이 일반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른 탓에 여행을 하면서 얻는 감정도 특별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다카르에서 카자망스로가는 배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대개 낙조를 바라볼 때는 대책 없는 감상에 빠지기 마련이지만, "아프리카에서보는 대서양의 낙조는 세상의 끝인 것만 같아서 황량하고 쓸쓸하고 무서웠다.(83)"

그리스를 비롯해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끔찍한 인종분쟁을 겪은 발칸 지역에서는 살고 있던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일구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슬람, 기독교 그리고 동방정교에 유대교까지 다양한 종교가 뒤섞이던 발칸 지역에서 민족을 앞세운 내전이 일어나면서 종교까지 개입하게 되니 이주해온 사람들을 맞는 원주민들의 감정도 복잡다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삶어 터전을 일구어야만했던 이주민들은 서로의지하고 똘똘 뭉치게 되었는데 고유한 민속음악이 힘을 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세계화의 영향이 거세지면서 이들의 민속음삭이 변질되어 가고 그나마 명색마저도 끊어질 지경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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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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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9개국 여행을 앞두고 구입한 책입니다. '여행에 지친 여행자는 이 미친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더는 알지 못한다'라고 뒷면에 적힌 글이 눈길을 사로 잡았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부다페스트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면서 읽기 시작해서, 탑승 직후 그리고 착륙하기 전까지 읽어냈습니다.

1915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난 저자는 1935년 나치당이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을 제정하자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이주했다가 노르웨이를 거쳐 프랑스로, 벨기에를 거쳐 영국으로 전전하는 가운데 소설을 써갔다고 합니다. 1938119일밤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을 박해하는 '수정의 밤'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4주 만에 <여행자>를 써냈다고 합니다.

수정의 밤 사이에 독일의 유대 사회가 입은 피해는 공식적으로는 91명이 사망하고 7500개 사업체와 267개의유대인교회와 마을회관이 파괴됐다고하는데 사학자들은 1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400개소의 유대인교회와 마을회관이 파괴됐다고 합니다.

<여행자>에서는 나치당이 본격적으로 유대인 탄압에 나서던 혼란스럽던 독일사회의 상황을 당대에 기록한 최초의 소설이란 역사성 뿐 아니라 문학성까지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1939년 영국에서, 1940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적국인으로 분류되어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동안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이어갔는데 1942년 영국으로 귀환하던 그는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고 침몰하면서 27살어 나이에 죽음을 맞고 개정된 원고와 함께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여행자의 독일어로 쓴 초고가 1938년 발견되었지만 출간이 미루어지다가 80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오토 질버만은 독일인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에두아르트를 파리로 유학을 보낸 상황에서 본격적인 유대인 탄압을 맞게됩니다. 일찍 독일을 탈출하지 못한 것은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나치당원 베커와 동업하는 고철사업을 비롯해서 집 등, 상당한 재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치 돌격대원들의 유대인 습격이 본격화 되면서 20만 마르크 상당의 집을 헐값에 가져가려는 핀들러의 검은 속셈에 비하면 8만마르크의 거래대금을 수금한 베커가 41500마르크를 건네준 것은 그나마 양심적인 것이었습니다.

핀들러와 집을 넘기는 거래를 하는 와중에 돌격대의 습격을 받은 질버만은 극적으로 탈출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위험한 집 말고 호텔에도 들어가보았지만 위험하기는 매한가지, 결국베를린에서 열차를 타고서 함부르크로, 다시 베를린으로, 도르트문트, 아헨, 다시 도르트문트 그리고 베를린으로 떠돌면서 나치돌격대를 피할 궁리를 합니다. 사실은 국외탈출의 기회를 엿보는 것인데, 열차에서 만난 사람으로 부터 사들인 정보에 따라 도르트문트에 산다는 중개업자를 만나러 갔지만 이미 체포된 뒤라서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역시 열차에서 만난 여인의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벨기에 국경을 넘었지만 벨기에 경찰에 들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들고 다니던 42천 마르크를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이 질버만의 발버둥이 끝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을 바라보는 독일 사람들의 인식은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핀들러만해도 "나는 유대인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뭔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유감이긴 하지만 놀라지는 않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래요. 한쪽이 파산하면 다른 쪽은 성공하는 버비입니다.(30)"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경에 빠진 유대인을 도와주는독일인도 분명 있었습니다.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실패하는 것을 보면 질버만은 치밀하지도 결단력도 부족한 듯합니다. 결국 그의 여행은 '평온을 벗어나려고, 평온을 찾아가는 것(260)'이었던 셈입니다.

발칸 역시 나치독일의 도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발칸에 살던 유대인들 역시 지난한 고통을 받았던 만큼 역사의 현장을 찾는 여행길에 의미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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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이기숙 옮김 / 그러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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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슈틸리히가 <존재의 박물관>에서 소개하여 읽게 된 책입니다. <들판>을 읽었더니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이라는 부제가 달린 <존재의 박물관>에서 <들판>을 인용한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들판>의 목차를 보면 모두 30꼭지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그들 목소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29꼭지의 글 제목은 모두 남자와 여자의 이름입니다.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하는 의문 속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목소리남자는 앞쪽 풀밭에 흩뿌린 듯 박혀 있는 비석들을 내려다보았다.”로 시작합니다. 화자가 와 있는 장소는 조그마한 마을 파울슈타트의 공동묘지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냥 들판이라고 불렀던 곳인데, 페르디난트 요나스라는 목장주의 휴경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들판이라고 불렀던 것인지, 시에서 그 휴경지를 사들여 공동묘지로 만든 뒤에 생긴 이름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특이하게도 화자는 들판이라고 불리는 공동묘지를 매일 찾아 자작나무 아래 앉아 죽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공동묘지에 묻혀있는 많은 이들은 화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거나 살면서 적어도 한번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완성한 그림이 바로 <들판>이 된 셈입니다. “남자는 죽은 이들의 말소리가 들린다고 굳게 믿었다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화자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 목소리에 이어지는 29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장삼이사의 삶에서 툭 튀어나오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저 스스로 공감하게 됨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암은 악마같이 끔찍한 병입니다. 수년간 몸 안에 암을 품고 다니면서도 아무 것도 모르다가 갑자기 발병하거든요.(110)”라는 대목인데, 아마도 제가 암을 진단받아 수술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늙어서 하찮아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하찮음을 인정하는 것(178)”이라는 대목도 제가 늙었기 때문에 공감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를 찾아 체스를 두는 소냐 마이어스는 액자에 끼워진 할머니의 사진 뒤에 적힌 글을 읽게 됩니다. “III/3/21 / 나는 병을 얻고 / 내 비극에서 / 주인공 역할을 하다가 / 죽었다. / 비극의 제목은 이렇다. /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할머니의 삶이 짧지 않았을 터인데 그 긴 삶을 왜 비극이라고 했을까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낸 세월이 그저 헛되기만 했을까요? “나는 인생이 살아볼 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르트 잉걸란트의 생각을 적은 화자라면 소냐 마이어스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라서 그 이유를 밝혔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주 신박한 대목도 있습니다. 시력이 나빠졌지만 안경 쓰기를 거부했다는 화자의 이야기입니다. “누가 안경 이야기를 꺼내면, 어차피 이렇게 살아온 데가 이젠 주변 사물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학생 때부터 안경을 써온 저로서는 세상이 흐릿해 보이는 것이 그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노안이 올 때까지도 기를 쓰고 나빠지는 시력을 보정하려 안경 돗수를 올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고도근시가 되고 말았기 때문에 이제는 안경을 벗어던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삶을 같이 할 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작은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네게 맞는 여자를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 그런 여자는 없어. 너한테 맞는 여자를 찾았다고 믿는 순간, 그 여자는 너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날 거야. 어쨌든 맞지 않더라도 그 여자와 좋은 점을 많이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실제로도 그렇고.(55)” 어찌 보면 저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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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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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를 여행한 것도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의 폐지를 선언하고서도 사반세기가 지나 고민할 것도 없이 여행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1917년에 처음 등장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1948년 아프리카너가 주도하던 극우 국민당 정권에 의하여 법률로 공식화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얻은 바에 따르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다음에 오히려 아프리카너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범죄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97년에 발표된 <소년 시절><청년 시절(2002)> <서머타임(2009)>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받은 J.M. 쿳시의 자전적 소설 3부작의 첫 작품입니다. 작가가 1940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소년시절은 아파르트헤이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시기의 아프리카너 소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소년 시절>은 아버지가 케이프에서 우스터로 직장을 옮김에 따라 가족들이 우스터로 이사를 한 1949년부터 아버지가 케이프타운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여 플럼스테드로 이사를 한 1952년 무렵까지의 시기에 겪은 일들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9살 때부터 12살 때까지의 일을 회상하여 기록한 셈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시기입니다. 생각해보니 이 시기에 저에게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기록으로 옮길만한 기억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의문입니다.


<소년 시절>은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니라 소설과 자서전의 중간쯤에 있는 자전적 소설로 보아야 한다고 옮긴이는 말합니다. 자서전이라면 일인칭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나 저자는 화자를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시제를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하여 과거를 현재화하면서 단순한 복원대상이 아니라 현재에서 바라보는 과거이며 현재와 연결된 과거임을 보여주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기억 깊은 곳에 숨어있던 과거의 경험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던 것과는 다른 시도라는 생각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이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과는 달리 <소년 시절>의 주인공 존은 과거의 자신을 포함하여 부모 등 주변인물 모두의 왜곡된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아름답게 채색하려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인종차별로 얼룩진 남아프리카 역사와 연계하여 윤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카너 사회는 모계사회였나 보다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실 그에게는 아버지가 무슨 자격으로 거기에 있어야 하지도 분명하지 않다. () 그의 집에서, 그리고 두 이모의 집에서, 핵심은 어머니와 아이들이고 남편은 부속물에 불과하다. 돈을 내는 하숙인처럼 살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22)”


작가의 아버지는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 즉 아프리카너의 후손이었고, 어머니는 지금의 폴란드에 귀속된 동독 지역에서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백인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그의 가족 혹은 친지들은 비백인인 토착민들에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시중을 자연스럽게 받는 것을 보면 백인과 유색인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옮긴이는 작가는 <소년 시절>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고 했지만, 사실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여인은 그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목적만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ㄷ고 그는 믿고 싶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253)”


작가가 소년시절에 가졌던 생각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후속작인 <청년 시절>을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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