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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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0년이나 지났습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 차를 몰고 가족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여행을 오려면 비용이 많이 들 터이니,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풍족하지 않은 생활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빠듯하게 써야했습니다. 식사는 쌀과 반찬을 준비해서 직접 해먹었습니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행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은 기름 값과 숙소비용입니다. 기름 값도 거의 고정비용이라서 숙소의 비용이 가변적인 것이었습니다. 좋은 숙소에 들면 좋지만 비싸고, 허름한 숙소는 묵는데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어서 적당한 수준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시세로 40불 내외의 숙소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는 모텔들은 방 앞에 바로 차를 댈 수가 있어서 짐을 옮기기도 수월합니다.


시골에 있는 모텔을 이용하다보면 한국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미국 사람들이었는데,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1시간 내외로 모텔에 드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모텔 라이프>를 고른 것은 그때의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던 까닭입니다. 책의 뒷장에 적힌 모텔을 전전하는 비루한 청춘, 하지만 어딘가 빛은 있다라는 구절이 와 닿았던 것입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앞부분은 공감이 가지만 뒷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텔 라이프>는 일종의 거리의 인생을 다룬 영화(road movie)의 소설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부류를 모노미스(monomyth)라고 한다는데, 딱 맞는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나 호머가 남긴 오디세이아와 같은 영웅신화에서 나온 단어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텔 라이프>에 등장하는 인물을 영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싶습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에 담긴 서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텔 라이프>의 주인공 프랭크와 형 제리 리는 결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우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있었지만, 두 아이를 거둘 형편이 안됐고, 입양기관의 위탁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만 얻었을 뿐입니다. 결국 두 아이는 어머니가 남긴 약간의 유산으로 모텔을 전전하면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마약까지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술에 의지하여 버티는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미국에서 살아나온 것이 천행이다 싶습니다. 주인공 형제는 물론 등장인물 상당수가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리 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자전거를 타는 소년을 치어 숨지게 만들었습니다. 소년을 구호하지 않고 차에 태우고 다니다가 유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는 동생과 함께 도피에 나섰지만 두 사람은 숨어 살 곳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리 리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다리를 쏘고 말았습니다. 자살을 결행할 용기도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입원치료를 받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프랭크와 함께 병원을 탈출하여 모텔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상처가 덧나서 죽음에 이르기는 합니다.


<모텔 라이프>에서 딱 하나 새겨둘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프랭크가 일하던 중고차 업체 사장 얼 헐 리가 프랭크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자네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자네가 원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라네.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자네가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해보게. 목장? 해변의 집? 전망이 끝내주는 건물 꼭대기의 고급 주택? 그게 어디든 상관은 없지만 자네가 완벽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해.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그곳에 가는 거지. 그럴싸한 곳을 찾았는데 나중엔 위로가 안된다? 그럼 그냥 바꿔. 상황에 따라, 자네 기분에 따라 바꾸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행운이 저절로 들어올 걸세. 근사한 장소, 자네에게 힘을 주는 곳,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곳을 마련하게. 그러면 모두가 자넬 엿 먹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을 때마다, 거기에 가면 돼.(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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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법을 잊었다
오치아이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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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가 쓴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읽다가 눈에 띈 <우는 법을 잊었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오치아이 게이코 씨는 작가이자 어린이 책 전문서점 크레용 하우스와 여성책 전문서점 미즈 크레용 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여성운동가인 것보다는 치매로 진단된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간병했다고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작가가 발표한 작품목록을 보니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나의 간병 일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우는 법을 잊었다>에는 작가의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운영하는 서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연인을 만나고 사별한 일이 짧게 소개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한다는 그녀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 간병을 집에서 하다니, 페미니스트인 네가 왜? 성별 분업을 노인 간병에 적용하는 거야? 네가 줄곧 반대하던 일이잖아. () 집에서 부모님 수발드는 건 페미니즘에 반한다고 생각해, 나는(46-47)”


옛날에는 치매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치매 환자를 집에서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게이코 씨처럼 직업을 가진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다행히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퇴근해서는 자신이 어머니를 돌보는 방식으로 간병을 했고, 주치의가 정기적으로 왕진을 와주는 일본식 치매환자 간병체계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왕진을 나온 의사도 집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는 게이코 씨의 입장에 찬성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 게이코 씨가 어머니 간병에 나선 것은 모녀에 얽힌 특별한 사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게이코 씨는 어머니가 22살 때 미혼모로 낳았던 것입니다. 외할머니 역시 서른 살 즈음에 사별하고 어렵게 네 딸을 키워왔던 것인데 맏이가 미혼모로 딸을 낳았으니, 모녀 삼대의 삶은 신산하기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에서 이런 대목도 썼을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남자는 모른다. 남자가 만들어놓은 틀을 믿고, 그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여자들 또는 외면하는 억압.. 그래서 딸인 나는 어머니가 내면에 쌓아놓았던 피로를 밖으로 표출하는 데 열중했는지도 모른다.(41)”


세상의 시선이 냉냉할수록 모녀 사이는 긴밀해져갔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안된다 생각했던 게이코 씨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부터는 다른 이유로 살아야 하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시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유로워졌다. 이제 고통을 겪을 일도 없다. 죽음이 어머니를 자유롭게 했다. 어머니는 삶을 내려놓고 자유를 얻었다.(176)” 게이코 씨가 우는 법을 잊었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데서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생전에 동거했던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은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고가 있을 무렵 게이코 씨는 광장이라는 서점을 확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울 여유도 없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슬픔을 보일 수는 없었다는데, 직원들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었다는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어렸을 적 겪었던 동무와 장성했을 때 사랑하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게이코 씨는 죽음을 애도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서점을 중견 직원에게 맡기고 나서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 울어도 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이코 씨는 우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울기를 참아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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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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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얼마 전에 읽은 이희인의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 다룬 책입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읽을 만한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동유럽 여행길에서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가물거립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일종의 추억여행입니다. 저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작가는 잊고 지냈던 친구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추억여행을 하고 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작가는 열 살 때부터 열네 살 때까지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습니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는 소련 외교부가 직접 운영하였는데, 외국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들만 수학할 수 있었고, 50여국 출신의 학생들이 다녔다고 합니다.


작가는 프라하에 있던 각국 공산당의 이론 정보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에 일본 공산당을 대표하여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프라하에 갔다고 합니다. 작가는 러시아어로 하는 수업을 듣게 되면 훗날 러시아어를 전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아 소비에트 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결국 러시아어 동시통역가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닦은 셈입니다.


아버지가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함에 따라 일본에 돌아온 뒤로는 소비에트의 친구들과 연락도 잦아들면서 종국에는 소식이 끊어졌던 모양입니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의 공산 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는 상황이 되면서 옛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고 합니다만, 그들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는 소비에트 학교 시절 특히 친했던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인 아냐,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를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소비에트 학교에서 동무를 만나 친하게 지내던 기억으로부터 그 동무를 찾아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의 친구 야스나를 찾아 나선 시기는 1991년 시작하여 2001년에 종료된 유고내전이 한창일 때라서 위험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세 동무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를 비롯한 네 명의 동무들이 함께 어울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여러 나라에서 모이다보니 작은 무리를 이루기보다는 개별적으로 친소관계가 만들어졌던 모양입니다.


표지를 보면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소녀들을 통해 동유럽 현대사를 그렸다라고 요약했습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십대 소녀들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살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면서도 소련의 압제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커져갔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레닌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보여주었을 때, 그리스에서 온 리차는 마리, 레닌은 꽤나 잘 살았나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역설한 레닌이 평생 동안 노동을 해본 적이 없고, 지주로서 소작료를 받아 살았다는 사실도 작가는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연예인이 될 것 같던 리차는 의사가 되어 독일에서 개업을 하고 있고, 열혈 애국주의자였던 아냐는 영국으로 유학하여 영국의 귀족출신 남자와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동무 야스나는 아버지 라이프 디즈다레비치가 내전이 한창이던 유고연방의 마지막 대통령을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스나는 유고내전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보스니아 출신이었던 것입니다. 어수선하기만 했던 베오그라드까지 찾아가 야스나를 만났던 작가입니다만, 1999년 나토군이 베오그라드를 폭격한 뒤의 야스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추억을 소환하고, 그 추억이 담긴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추억여행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 어디에도 이데올로기의 냄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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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판다 - 수출기업을 위한 글로벌 마케팅 필살기
강대훈 지음 / 스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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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블로그 이웃이신 아자아자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살아야 판다>라는 제목을 보면 우한폐렴으로 질곡을 헤매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수출기업을 위한 글로벌 마케팅 필살기라는 부제를 보면 성격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조업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다가 ICT, 바이오, 화학, 플랜트 등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제품을 해외에 파는 수출 마케터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한국무역협회의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7만 회원사의 해외무역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살아야 판다>는 저자가 해외무역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바를 정리하여 사업 대상을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참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수출에서 영업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먹고사는 것도 힘든 시기를 벗어내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수출입국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전회장이 조선소를 건립하기 위한 자금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과연 한국의 조선소에서 대형 상선을 제작할 수 있겠냐고 거절하는 상대방에서 500원 지폐에 그려진 지폐를 보여주면서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거북선 신화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사라진 율산그룹이 중동수출의 암초였던 항구의 체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갑판에 불을 지르거나 상륙정과 헬기를 동원하여 하역을 했다는 일화는 우리나라의 무역 역사에 신화로 남아있습니다.


<살아야 판다>는 모두 139꼭지의 글을 14개의 장으로 구분해놓았습니다. 서문을 보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기업과 종사자들을 위해 쓴 일기라고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모험인 상황이라서인지 해외영업 오디세이라고 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썼다는 서사시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다룬 <일리아스>에 이어, 트로인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귀향길 10년에 겪은 모험담을 담았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국내기업이 웬만하면 해외기업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담았습니다. 영업 현장의 어려움도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해외영업의 달인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요즘도 누리망과 정부기관 등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해외영업에 나선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지의 사정을 직접 체감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지 사정을 직접 살펴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이 해외영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디세이라고 이름붙인 매 꼭지의 글들이 길지 않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아도 쉽게 읽히고 공감을 하게 됩니다. 해외영업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학계에서 활동하다보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인연을 맺고 교류하는 과정과 흡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인구가 1억 명이 넘어야 내국인들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이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시동을 걸었던 1967년에 3013만명이던 인구가 1980년대 들어 성장세가 꺾이면서 2017년에 5136만명으로 겨우 절반을 넘겼습니다. 2020년 인구성장률이 0.14%, 5년 뒤에는 0.02%를 기록하고는 음의 성장률를 보이면서 2067년에는 인구가 3929만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향을 보면 다시 수출에 매달려야 나라가 유지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기반을 강화하기보다는 그동안 벌어놓은 것을 까먹는 재미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태계에서는 강한 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봅니다. 강한 자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강하다는 것이 힘에 세다는 것 말고도 끈기라던가 임기응변이 뛰어난 것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야 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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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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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었습니다. 국일미디어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은 아내가 결혼할 때 가져온 것입니다. 11권이나 되는 무게감에 눌려 읽기 시작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던 것 같습니다. 무려 28년 동안 쌓여온 먼지를 털어가면서 완독하기까지 무려 6개월이 걸렸습니다. 모두 11편의 독후감을 적었습니다만, 그저 읽어낸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012년 민음사에서 새롭게 번역해서 내놓기 시작할 때부터 다시 읽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 10권째가 나왔고, 이제는 마지막 되찾은 시간을 남겨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음사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기까지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음사판을 읽어갈 때는 국일미디어판을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손에 잡히는 무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소개된 책들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글들을 모아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궁금해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도 그런 배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은 저자가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갇혀있을 때 했던 강의록을 책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19399월 독일군이 침공하자 폴란드군 장교로 동원되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혔습니다.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폴란드 장교들은 지적 노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전시에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군인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지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자가 수용되어있던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4천명의 수감자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79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폴란드 장교들 가운데 일부가 군사학 역사, 문학 등을 강의하는 모임을 꾸렸던 것인데, 수용소 당국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기획한 사람들을 어디론가 보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은 은밀하게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듬해 봄에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대부분의 인원은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400여명만이 인근의 그랴보베츠 수용소에 남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지적노동은 그랴조베츠 수용소에서도 이어졌는데, 당국의 감시 아래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강의록을 사전에 제출하여 감수받아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프랑스와 폴란드의 회화 그리고 프랑스의 문학을 맡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폴란드군에 동원되기 전에 읽었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1924년 파리에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922년 프루스트가 사망한 다음에 파리에 도착해서 그의 작품들을 읽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머물지 않고,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프랑스 사회적 분위는 물론 문학, 철학, 예술 사조까지 상당히 깊숙하게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프루스트의 삶은 물론 가족들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도 다루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작가의 삶을 되짚어 본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긴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소설의 구성상 빼놓은 이야기도, 추가한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과 작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바가 도출해냅니다. ‘독자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사유와 감정능력을 일깨우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의 작가가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듣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뜻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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