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법을 잊었다
오치아이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가 쓴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읽다가 눈에 띈 <우는 법을 잊었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오치아이 게이코 씨는 작가이자 어린이 책 전문서점 크레용 하우스와 여성책 전문서점 미즈 크레용 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여성운동가인 것보다는 치매로 진단된 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간병했다고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작가가 발표한 작품목록을 보니 <어머니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나의 간병 일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우는 법을 잊었다>에는 작가의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운영하는 서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연인을 만나고 사별한 일이 짧게 소개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간병한다는 그녀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 간병을 집에서 하다니, 페미니스트인 네가 왜? 성별 분업을 노인 간병에 적용하는 거야? 네가 줄곧 반대하던 일이잖아. () 집에서 부모님 수발드는 건 페미니즘에 반한다고 생각해, 나는(46-47)”


옛날에는 치매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치매 환자를 집에서 모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게이코 씨처럼 직업을 가진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다행히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퇴근해서는 자신이 어머니를 돌보는 방식으로 간병을 했고, 주치의가 정기적으로 왕진을 와주는 일본식 치매환자 간병체계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왕진을 나온 의사도 집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는 게이코 씨의 입장에 찬성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사실 게이코 씨가 어머니 간병에 나선 것은 모녀에 얽힌 특별한 사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게이코 씨는 어머니가 22살 때 미혼모로 낳았던 것입니다. 외할머니 역시 서른 살 즈음에 사별하고 어렵게 네 딸을 키워왔던 것인데 맏이가 미혼모로 딸을 낳았으니, 모녀 삼대의 삶은 신산하기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에서 이런 대목도 썼을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남자는 모른다. 남자가 만들어놓은 틀을 믿고, 그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여자들 또는 외면하는 억압.. 그래서 딸인 나는 어머니가 내면에 쌓아놓았던 피로를 밖으로 표출하는 데 열중했는지도 모른다.(41)”


세상의 시선이 냉냉할수록 모녀 사이는 긴밀해져갔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안된다 생각했던 게이코 씨지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부터는 다른 이유로 살아야 하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시던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유로워졌다. 이제 고통을 겪을 일도 없다. 죽음이 어머니를 자유롭게 했다. 어머니는 삶을 내려놓고 자유를 얻었다.(176)” 게이코 씨가 우는 법을 잊었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데서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생전에 동거했던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은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고가 있을 무렵 게이코 씨는 광장이라는 서점을 확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울 여유도 없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슬픔을 보일 수는 없었다는데, 직원들 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었다는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어렸을 적 겪었던 동무와 장성했을 때 사랑하는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게이코 씨는 죽음을 애도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서점을 중견 직원에게 맡기고 나서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 울어도 돼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게이코 씨는 우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울기를 참아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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