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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새 30년이나 지났습니다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 차를 몰고 가족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여행을 오려면 비용이 많이 들 터이니,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풍족하지 않은 생활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빠듯하게 써야했습니다. 식사는 쌀과 반찬을 준비해서 직접 해먹었습니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여행에서 추가로 드는 비용은 기름 값과 숙소비용입니다. 기름 값도 거의 고정비용이라서 숙소의 비용이 가변적인 것이었습니다. 좋은 숙소에 들면 좋지만 비싸고, 허름한 숙소는 묵는데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어서 적당한 수준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시세로 40불 내외의 숙소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 있는 모텔들은 방 앞에 바로 차를 댈 수가 있어서 짐을 옮기기도 수월합니다.
시골에 있는 모텔을 이용하다보면 한국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미국 사람들이었는데,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1시간 내외로 모텔에 드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모텔 라이프>를 고른 것은 그때의 궁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던 까닭입니다. 책의 뒷장에 적힌 ‘모텔을 전전하는 비루한 청춘, 하지만 어딘가 빛은 있다’라는 구절이 와 닿았던 것입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앞부분은 공감이 가지만 뒷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모텔 라이프>는 일종의 거리의 인생을 다룬 영화(road movie)의 소설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부류를 모노미스(monomyth)라고 한다는데, 딱 맞는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나 호머가 남긴 오디세이아와 같은 영웅신화에서 나온 단어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텔 라이프>에 등장하는 인물을 영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싶습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에 담긴 서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텔 라이프>의 주인공 프랭크와 형 제리 리는 결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우다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있었지만, 두 아이를 거둘 형편이 안됐고, 입양기관의 위탁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만 얻었을 뿐입니다. 결국 두 아이는 어머니가 남긴 약간의 유산으로 모텔을 전전하면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마약까지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 같지만, 술에 의지하여 버티는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미국에서 살아나온 것이 천행이다 싶습니다. 주인공 형제는 물론 등장인물 상당수가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리 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자전거를 타는 소년을 치어 숨지게 만들었습니다. 소년을 구호하지 않고 차에 태우고 다니다가 유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는 동생과 함께 도피에 나섰지만 두 사람은 숨어 살 곳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리 리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의 다리를 쏘고 말았습니다. 자살을 결행할 용기도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입원치료를 받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프랭크와 함께 병원을 탈출하여 모텔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상처가 덧나서 죽음에 이르기는 합니다.
<모텔 라이프>에서 딱 하나 새겨둘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프랭크가 일하던 중고차 업체 사장 얼 헐 리가 프랭크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자네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자네가 원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라네.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 자네가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해보게. 목장? 해변의 집? 전망이 끝내주는 건물 꼭대기의 고급 주택? 그게 어디든 상관은 없지만 자네가 완벽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해.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그곳에 가는 거지. 그럴싸한 곳을 찾았는데 나중엔 위로가 안된다? 그럼 그냥 바꿔. 상황에 따라, 자네 기분에 따라 바꾸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행운이 저절로 들어올 걸세. 근사한 장소, 자네에게 힘을 주는 곳,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곳을 마련하게. 그러면 모두가 자넬 엿 먹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을 때마다, 거기에 가면 돼.(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