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 메이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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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불치의 병을 앓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 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 임종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희망 속에서 가능한 한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합니다. ‘호스피스(hospice)’병원(hospital)’은 환대(hospitality)와 마찬가지로 호스페스(hospe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는데, 호스페스에는 집주인손님혹은 낯선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사이자 완화의료전문가인 레이첼 클라크가 완화의료현장에서 다양한 말기환자들의 임종과정을 돌본 경험과 특히 암에 걸린 아버지와의 작별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기록한 완화의료의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작가는 영국의 시골마을 윌트셔에서 지역보건 전문의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진료소에서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며 진료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랐습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고는 시사 기록물을 제작하는 기자로 일하면서 알카에다, 콩고내전 등을 취ㅐ하였습니다. 1999년 런던에서 일어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발사건에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는 사고를 겪으면서 뒤늦게 의학의 길에 투신합니다.


의사가 된 다음에는 응급실 근무를 거쳐 완화의학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온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214)”라는 완화의료 운동의 창시자인 데일 시슬러 손더스의 말을 인용하는 등, 완화의료의 정수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저자는 호스피스에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230)”라고도 말합니다.


외투를 입히다. 덮어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펠리에어(palliare)에서 유래한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1차 목표는 죽음의 증상을 숨기는 데 있음을 암시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저자가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것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환자중심의 진료를 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됩니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임종을 돌보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건강하였을 때 죽음 조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의사가 되어 모르핀을 처방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 때 혹시 아버지가 불치의 병에라도 걸리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즉 조력자살을 당부한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죽음 조약보다는 완화의료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생긴 불안감에서 죽음조약을 맺었지만, 대장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고서 죽음을 받아들인 덕분에 남은 순간을 음미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렵냐는 저자의 질문에 아니다. 증상은 두려울 수 있지만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더 지켜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 사는 데는 더 미련이 없단다. 이만하면 잘 살았으니까.(344)”라고 답합니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여 초연하게 죽음을 맞는 경지에 도달한 것을 보면 저자의 아버지는 득도를 한 셈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책과 영화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책들을 읽어볼 요량입니다. 저자가 의학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들은 아버지가 공부하던 시절과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만, 저자의 아버지의 경험은 저와 비슷한 점이 있어 저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산부인과를 전공하는 작은 아이에게도 추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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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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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치매환자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기억력 감퇴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치매환자에서는 왜 기억력이 감퇴되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 관한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아기 기억술사의 기억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yes24.com/document/7314893>와 질 프라이스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http://blog.yes24.com/document/7334212>가 있습니다. 두 책은 정말 모든 것을 기억하는 실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추리소설작가 데이비드 발다치가 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기억과잉증후군을 주제로 한 범죄수사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억과잉증후군은 대체로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후천적으로도 생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의 남자주인공으로 전직형사인 데커의 경우는 미식축구경기에서 일어난 충돌로 심장박동이 멈추었다가 소생한 뒤로 기억과잉현상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잔인한 연쇄살인을 이어가는 범죄자 역시 집단 강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 기억과잉현상이 생겼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데커에게 기억이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 있거나 아니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기억과잉증후군을 가진 사람도 보통 사람처럼 왜곡된 기억을 입력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맞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말을 바꿔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데커는 문제가 된 충돌사건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누구나 고도로 활성화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사용되지 않고 있다가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잠금해제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종의 후천성 서번트증후군이라고 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억과잉현상이 생긴 이유를 밝히고,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지연구소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는 기억과잉증후군을 가진 데커가 인지연구소에서 함께 치료를 받던 인물이 저지르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실 사건을 저지르는 쪽이 설계한 과정을 뒤쫓는 것은 쉽지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같은 상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설계한 살인을 뒤쫓는 것은 마치 투명인간에게 당하는 느낌이라고도 합니다. 투명인간이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평범해서 어디에나 잘 섞이고, 옆에 있어도 남의 이목을 끌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짓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인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데커와 연쇄살인마와의 대결은 경찰과 연방수사국이 공조하여 범인을 뒤쫓고 있지만, 범인이 일부러 남겨놓은 흔적을 뒤따라가기도 바쁘게 전개됩니다. 어느 시점인가 데커가 범인의 윤곽을 좁혀냈지만, 범인은 종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데커는 스스로는 미끼로 내놓아 범인과 접촉을 꾀합니다. 목숨을 건 도박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반전이 이루어지고 데커는 승기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의 독후감에 줄거리를 요약하지 않으려 합니다만, 범죄의 동기라는 것이 참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들이 다 나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참 어리숙한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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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 낯선 곳에서 생각에 중독되다
김경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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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의 여행은 주로 일과 관련된 것이라서 여행 중에도 일에 관한 생각에 빠져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주로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여행이 되다보니 구경거리에 대한 공부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사유에 양념을 풍성하게 뿌려주는 기막힌 발명품이다. 낯선 곳과 마주하면 그곳의 이야기들이 또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라고 한 김경한님의 말씀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김경한 님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장소를 찾아가고 정제된 사유를 통해 아름답게 살다 가는 것.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일상의 경계 밖으로 끝없이 나를 몰아세우는 일을 채무처럼 안고 지내왔다(9).”고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그 땅을 관찰하면 현실의 고단한 나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속세의 상처를 치유 받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곤 했다.”는 것입니다.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는 그런 여행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럽, 미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여행지에 대한 기록을 나누어 담았습니다. 젊어서 체력이 될 때 먼 곳을 먼저 구경하기로 한 탓에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가본 곳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쳐도, 유럽이나 미국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작가가 언급한 장소들 가운데 제가 가본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여행지를 고르거나, 여행지에서 찾아가는 곳을 고르는 기준이 저와는 다른 탓이겠습니다.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를 적을 때는 사실관계의 확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작가 역시 오랜 세월을 기자로 활동해온 까닭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듯 합니다만, 타이타닉호가 리버풀에 있는 앨버트독에서 건조되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타이타닉호가 리버풀을 모항으로 하였기 때문에 리버풀에 타이타닉 박물관도 있다고 합니다만, 타이타닉호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버풀, 코츠월드, 더불린으로 이어지는 도시에서 저자가 사유의 샘에서 길어 올린 생각들을 영화, 희곡, 소설, 음악 등 다양한 소재에서 끌어온 이야기와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가끔은 지나치다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아틀란티스 북스는 에게 해의 기적으로 불린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에 남아있는 서점으로 전 세계 작가 지망생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145).” 저도 산토리니 섬을 여행하면서 들러보았습니다만, 작가가 추켜올린 만큼의 서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글은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러나는 듯한 대목도 있습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에 있는 아부다비 루브르의 건축에 관한 이런 대목입니다. “돔형 지붕 전체를 스테인리스 스틸과 철,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무수하게 교차시켜 시공했다. 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은 태양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쫓아가면서 매일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낙하시키고 있었다.(255)”


매년 봄이면 우리나라를 습격(?)하는 황사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초원의 황사는 매년 봄마다 한반도까지 밀려온다. 그 미세먼지 속에 몽골초원의 탱그리 정신이 묻어있는지도 모른다.(261)” 황사는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지역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건조한 사막지역에 쌓인 먼지가 거센 바람에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니 초원에서 황사가 일 까닭은 없을 것입니다.


보르네오의 키나발루의 풍광에 감동을 받은 작가가 인용한 일본의 국민작가라는 시바 료타료의 글도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었습니다. “산은 허물어지고 내는 흘러 길이 새롭고, 돌은 묻혀 흙에 덮이고, 나무는 늙어 새 나무로 대체되니 시간 흐르고 대가 바뀌건만 그 자취 찾기 어려울 뿐이라는 대목을 광대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던가라는 생각에서 인용한 것 같습니다만 구절을 새겨보면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인용하여 잘 버무려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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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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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체중이 불어나면서 체중이 덩달아 높아지는 바람에 체중을 줄이기 위하여 걷기로 체중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걸을 때는 가급적이면 빠르게 걸으려 노력을 합니다. 한때는 느리기 걷는 즐거움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걷기 좋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풍광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걷는 즐거움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기도 했습니다.


모처럼 걷기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발걸음>으로 만나보았던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입니다. <마음의 발걸음>에서는 작가가 더블린을 출발하여 모허 절벽과 골웨이 등 아일랜드 서쪽 해안을 따라 걸으면서 아일랜드계로서의 정체성을 따져보고, 아일랜드의 역사, 문학, 정치를 되짚어보는 여행기였습니다. 저는 영국과 묶어서 아일랜드를 가보았습니다만, 벨파스트와 더블린을 연결하는 아일랜드의 동쪽 해안을 따라가는 단체여행이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의 고유한 정서를 엿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마음의 발걸음>의 역자후기에서 리베카 솔닛을 세계적인 작가로 이끌어낸 작품이 <걷기의 인문학>이라고 해서 읽게된 꼬리를 무는 책읽기였습니다. 정여울 작가는 솔닛의 글쓰기를 훔치고 싶었다라고 서두를 떼었습니다.


모두 4개의 묶음으로 나뉘어있습니다. 1부는 걷기의 통사에 해당하는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2부가 19세기의 시골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3부는 20세기 도시의 거리를, 4부는 21세기의 자동차도로의 풍경을 조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방랑벽(Wamderlust)>이라는 제목에 보행의 한 역사(A History of Walking)’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나 봅니다.


1부를 여는 1, 걸어서 곶까지 통사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서론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는 책을 쓸 때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보행의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17)’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시조가 걷기 시작한데서 보행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 육체적 보행의 역사는 직립보행과 인체 해부의 역사에 닿아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보행의 역사를 쓰려다말고 집을 나서서 산책에 나섰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북쪽에 있는 곶을 향하는 산책로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이러저런 생각들이 왔다가 가곤합니다. 아마도 보행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걷기만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2, 정신의 발걸음에서는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발이 움직여야만 내 머리가 움직인다(33)’라는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걷기에 관한 철학적 견해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의식적 문화행사로서 걷기 시작한 이는 루소였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소요학파에서부터 루소, 헤겔, 칸트, 키에르케고르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보행을 이야기합니다. 1부에서 육체적 보행을 이야기했다면, 2부에서는 정신적 보행을 살펴본 셈입니다.


3, 직립보행의 시작: 진화론의 요지경은 시각을 더 멀리 끌어올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행을 논합니다. 그리고 4, 은총을 찾아가는 오르막길: 성지순례에서는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순례길에 오로는 것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영혼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일이라면, 순례란 물질을 화해시키는 일이 아닐까?(90)” <걷기의 인문학>은 사유의 깊이가 상당한, 그래서 나름 난해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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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파이돈 향연, 문예교양선서 30
플라톤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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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현 선생님이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https://blog.naver.com/neuro412/222597548161>에서 추천한 책읽기의 세 번째 책으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를 골랐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내놓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이 실려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그리고 파이돈등 세편의 대화편은 고발을 당한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과정에서부터 사형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설을 담았습니다. 당시 아테네의 법정에 선 죄인들은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거나,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동원하여 죄를 사면받거나 감형받으려 노력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죄가 없음을 당당하게 설파합니다. 그런 점에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유죄판결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아테네의 규정에 따라서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30일 가량을 옥에 갇혀있었습니다. 크리톤을 비롯한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 찾아와 탈옥하기를 권하였지만 소크라테스는 정한 바에 따라 죽음을 맞겠다고 대답합니다. 탈옥을 권하는 크리톤과 소크라테스가 이를 거절하는 과정을 크리톤에 담았습니다. 법정에서 아테네 시민들과 신에게 한 약속을 어기고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는 국법에 따라 떳떳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이돈에는 사형이 집행되는 날 모여든 친구들과 작별을 하는 과정에서 소크라테스의 생사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으며, 사후에도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윤회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기독교가 그리스로 건너가면서 사후세계가 완성된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향연은 비극 시인 아가톤이 상을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친구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푼 날 사랑의 여신 에로스를 찬미하는 연설을 돌아가며 하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이날 연설에 나선 사람으로는 아리스토데모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릭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그리고 소크라테스 등입니다. 이들의 연설이 끝난 뒤에 늦게 찾아온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예찬하는 연설로 마무리됩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희곡에서 소크라테스를 조롱했다는데 아가톤의 잔치에서 같이 어울렸다는 것이 조금 이상해보입니다.


시인을 대표한 멜레토스, 장인들과 정치가들을 대표한 아니토스, 그리고 웅변가들을 대표한 리콘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하였습니다. 소장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며 괴상하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사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일들을 다른 ㅏ람들에게도 가르친다.(11)”하였습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죄를 범했다.(21)”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믿고 신들에게 공양을 바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다이몬(δαίμων)의 존재를 믿었던 것입니다. 다이몬은 죽은 영웅의 영혼과 같은 정령으로 인간과 신의 중간자적인 존재입니다. 죽은 인간의 영혼을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소크라테스를 오해하면서 증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중우정치 혹은 독재정치로 흐르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누적되어온 오해와 증오가 임계점에 도달하여 폭발한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법정에서도 당당했던 소크라테스의 변설을 읽으면 죽음을 피하여 요설을 설파하기 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을 변론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 끝에 사형판결을 받았음에도 당당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이를 담담하게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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