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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 낯선 곳에서 생각에 중독되다
김경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10월
평점 :
젊었을 때의 여행은 주로 일과 관련된 것이라서 여행 중에도 일에 관한 생각에 빠져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주로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여행이 되다보니 구경거리에 대한 공부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사유에 양념을 풍성하게 뿌려주는 기막힌 발명품이다. 낯선 곳과 마주하면 그곳의 이야기들이 또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라고 한 김경한님의 말씀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김경한 님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장소를 찾아가고 정제된 사유를 통해 아름답게 살다 가는 것.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일상의 경계 밖으로 끝없이 나를 몰아세우는 일을 채무처럼 안고 지내왔다(9쪽).”고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그 땅을 관찰하면 현실의 고단한 나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속세의 상처를 치유 받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곤 했다.”는 것입니다.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는 그런 여행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럽, 미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여행지에 대한 기록을 나누어 담았습니다. 젊어서 체력이 될 때 먼 곳을 먼저 구경하기로 한 탓에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가본 곳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쳐도, 유럽이나 미국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작가가 언급한 장소들 가운데 제가 가본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여행지를 고르거나, 여행지에서 찾아가는 곳을 고르는 기준이 저와는 다른 탓이겠습니다.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를 적을 때는 사실관계의 확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작가 역시 오랜 세월을 기자로 활동해온 까닭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듯 합니다만, 타이타닉호가 리버풀에 있는 앨버트독에서 건조되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타이타닉호가 리버풀을 모항으로 하였기 때문에 리버풀에 타이타닉 박물관도 있다고 합니다만, 타이타닉호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버풀, 코츠월드, 더불린으로 이어지는 도시에서 저자가 사유의 샘에서 길어 올린 생각들을 영화, 희곡, 소설, 음악 등 다양한 소재에서 끌어온 이야기와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가끔은 지나치다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아틀란티스 북스는 에게 해의 기적으로 불린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에 남아있는 서점으로 전 세계 작가 지망생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145쪽).” 저도 산토리니 섬을 여행하면서 들러보았습니다만, 작가가 추켜올린 만큼의 서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글은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러나는 듯한 대목도 있습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에 있는 아부다비 루브르의 건축에 관한 이런 대목입니다. “돔형 지붕 전체를 스테인리스 스틸과 철,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무수하게 교차시켜 시공했다. 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은 태양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쫓아가면서 매일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낙하시키고 있었다.(255쪽)”
매년 봄이면 우리나라를 습격(?)하는 황사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초원의 황사는 매년 봄마다 한반도까지 밀려온다. 그 미세먼지 속에 몽골초원의 탱그리 정신이 묻어있는지도 모른다.(261쪽)” 황사는 중국이나 몽골의 사막지역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건조한 사막지역에 쌓인 먼지가 거센 바람에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니 초원에서 황사가 일 까닭은 없을 것입니다.
보르네오의 키나발루의 풍광에 감동을 받은 작가가 인용한 일본의 국민작가라는 시바 료타료의 글도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었습니다. “산은 허물어지고 내는 흘러 길이 새롭고, 돌은 묻혀 흙에 덮이고, 나무는 늙어 새 나무로 대체되니 시간 흐르고 대가 바뀌건만 그 자취 찾기 어려울 뿐”이라는 대목을 ‘광대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던가’라는 생각에서 인용한 것 같습니다만 구절을 새겨보면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다양한 소재들을 인용하여 잘 버무려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