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살아내야지!
황영희 지음 / 베다니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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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처음 출간한 졸저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의 세 번째 개정판 <치매 고칠 수 있다>를 출간하였습니다. 새로 근무하게 된 병원의 간부님들께 인사를 겸해서 한 권씩 드렸는데, 명예이사장님께서 <아프지만 살아내야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황영희 명예이사장님은 제가 일하고 있는 샘병원을 설립하신 분입니다. 명예이사장님께서는 산부인과를 전공하셨습니다. 그리고 산부인과를 전공하신 분들 가운데 큰 병원과 의과대학을 설립하신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전공하겠다는 의사가 없어서 어려운 분위기입니다만 한때는 가장 잘 나갔던 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용을 읽으면서 가슴이 울컥하는 대목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된 이야기가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안양은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의료환경은 그리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불모지에 의원을 열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기 시작한 끝에 종합병원으로 발전시켜낸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의술이 아닌 돌봄과 베푸는 의술을 추구해 오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대입을 앞둔 고3시절에 시작한 신앙생활은 명예이사장님의 삶을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프지만 살아내야지!>에 담으신 당신의 삶의 족적의 대부분은 신앙에 대한 굳건한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범인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안양에 처음 세운 의원이 안양샘병원으로 발전하고 지금은 군포 지샘병원, 샘여성병원, 샘한방네트워크, 샘국제병원 등 모두 1,000개 병상을 가진 병원그룹으로 발전하면서 선교병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질병과 힘들게 투쟁하는 환자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한 원내 선교활동과 제3세계의 주민들을 위한 지원과 선교를 활발하게 전개해오셨다고 합니다.


명예이사장님께서 추구해 오신 삶의 기조는 예수 사랑은 근간으로 한 치료치유그리고 회복이었다고 합니다. 세 가지의 기조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치료라 함은 말 그대로 육신의 질병이나 상처를 잘 다스려 낫게 하는 행위이다. ‘치유는 치료와 비슷한 의미를 가졌지만, 심리적인 안정감과 더불어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상태라 하겠다. 거기에 더해 회복이란, 영육간에 상호보완적인 치료와 치유를 통해 한 개인의 삶이 두루 균형 잡힌 상태를 말한다.(184)”


전인치유, 통합치유의 개념입니다. 최근에 많은 중증의 암환자 진료에 이런 개념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치료법이 나오고 건강검진 등을 통하여 조기에 암을 발견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말기암으로 병원을 처음 찾는 암환자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증으로 병원을 찾는 암환자는 암을 치료하기 위하여 정신적으로 안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샘병원의 통합암진료체계는 암환자들이 치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군포에 있는 지샘병원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샘병원이란 이름에 담긴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과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라는 이사야서 제5811절의 대목에서 영감을 얻으셨다고 하는데, 안양샘병원이 자리한 안양 5동의 옛이름이 냉천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연을 듣고 보니 요르단의 페트라로 가는 길에 들렀던 와디 무사에서 모세의 샘을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샘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물이 없어 고통 받는 민족을 위해 바위를 쳐서 물길을 만든 모세는 결국 여호아의 명을 어긴 셈이었습니다. 그 발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이 질병의 고통으로 영혼이 메마른 환자들에게 정신적 갈증을 풀어주는 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의료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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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나날 - 프루스트 첫 단편소설집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최미경 옮김 / 미행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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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째 읽고 있습니다. 국일미디어판으로 처음 읽었고, 민음사판이 나오면서 따라 읽고 있습니다. 민음사판은 갇힌 여자까지 나와있어서 사라진 알베르틴되찾은 시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프루스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쾌락과 나날>1896년에 출간된 프루스트의 첫 번째 작품집으로 시, 산문, 단편들이 담겼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느낀 점이었는데, <쾌락과 나날>에서도 살롱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프루스트와 함께 살롱을 드나들던 작곡가 레날도 안과 그의부인 마들렌 르메르도 한 몫을 참여했습니다. 안은 악보를 르메르는 꽃을 그린 삽화를 여러 장 그려준 것입니다. 프루스트는 부유한 부모 덕에 젊었을 적부터 귀족들의 살롱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작가, 예술가들을 만나 어울리면서 사교계의 딜레탕트로 유명세를 떨쳤다고 합니다.


딜레탕트는 향락적 문예도락이라고 옮기는 딜레탕티즘의 성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딜레탕티즘은 예술이나 학문, 특히 음악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열렬한 애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라고 나무위키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즐기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딜레타레(dilettare)에서 나온 이탈리아어 딜레탄테(dilettante)에서 온 단어있습니다. 딜레탕테는 ‘~덕후라는 요즘 쓰는 말로 설명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딜레탕트의 개념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도락가라고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즐거움과 나날>이라고도 하는 <쾌락과 나날>은 당대의 문호 아나톨 프랑스가 서문을 쓸 정도였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비평가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작가 장 로렌과는 총으로 결투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프루스트의 부탁으로 서문을 쓴 아나톨 프랑스는 그의 책은 보기 드문 매력과 정교한 우아함이 넘치는 젊은이의 얼굴과 가다. 이 책을 자연스럽게 진가를 발휘하고, 스스로를 알리고 추천한다라고 적었습니다.


프루스트는 이 작품집을 젊은 나이에 이질로 사망한 영국 문인 윌리 히스에게 헌정한다고 적었습니다. 병약했던 프루스트는 젊은 친구가 죽음을 맞은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 속에, 아니 죽음이 다가오는 방식조차도 감춰진 힘, 비밀스런 조력,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은총이 있었던 것이다. 연인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 시인들이 노래할 때, 그리고 병으로 고통을 느낄 때 영혼을 더욱 가까이 느끼듯 말이다(13)”라고 적은 것을 보면 친구의 죽음에서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고결한 양심을 가진 존재들의 영원히 죽기 않는 영혼을 그렸다. 또한 선하게만 그리기에는 부족하고, 악만을 향유하기에는 고귀한 그들의 고통을 아는 나는, 진심 어린 연민으로 그들을 그리며, 이 짧은 작품집이 연민으로 정화되지 않도록 애썼다.(15)”라고 적었습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글들의 대부분은 스무살에 썼고, 몇 작품은 스물세 살 무렵에 적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히스가 죽은 뒤에 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작품집의 첫 번째 작품, ‘실바니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과 마지막 작품 질투의 종말이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작품집을 내기 위하여 새로이 쓴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화자를 아껴준 실바니 자작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았고, 마지막 작품은 오노레를 빌어서 화자가 스스로의 죽음을 느끼는 바를 적은 것 같습니다.


과연 죽음을 순간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일요일 밤에 질식하는 꿈을 꾸었고 그는 가슴이 짖눌리는 걸 () 그는 숨이 막혔다. 갑자기 그 무게에서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의 무거운 짐이 멀어지고 멀어져서 거기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죽었구나!’ 그를 짓누르며 숨 막히게 하던 모든 것들이 몸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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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동서문화사 월드북 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손명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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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http://blog.yes24.com/document/15617533>에서 추천한 철학책들을 따라 읽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그리고 시학을 한권에 묶어놓은 동서문화사 판을 골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세운 학당 리케이온에서 한 강의원고들이라고 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정리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은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혹은 관조적 생활 가운데 어느 하나의 형태로 살아가지만, 모든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선 가운데 최고의 것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최고의 선을 정의하고자 하였습니다. 먼저 헤시오도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치는 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고, 남의 옳은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도 훌륭한 사람이지만, 스스로 깨우치지도 못하고, 남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줄도 모르는 이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다.(15)”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 제3권의 5장까지는 원리론을 논하였고, 36장부터 끝까지는 덕의 현상론을 다루었습니다. 최고의 선은 덕에 기반한 활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덕은 사고능력과 관련된 것과 인품과 관련된 것으로 나뉜다고 하였고, 첫 번째 덕은 교육을 통하여 길러지고, 두 번째 덕은 습관을 통하여 길러진다고 하였습니다. 덕에 대하여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배운 덕이 몸에 배여 습관이 되도록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덕에 관한 사항을 실천함에 있어 중요한 점은 바로 중용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어떤 생활을 하는가를 정의하였다면, <정치학>은 국가(폴리스)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길을 논하였습니다. <정치학>에서 다룰 내용을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말미에 요약해두었습니다. 첫째, 국가체계와 철학적 완성의 세부 주제에 관련하여 앞선 사람들이 남긴 해설이나 비평 가운데 유용한 것을 알아보고, 둘째, 우리가 수집한 국가체계의 유형을 연구하여, 국가의 보전과 명망, 또 바람직한 통치와 타산지석이 되는 지배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하여 최선의 국가체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로서 가정이나 마을보다 우수한 사회적 삶의 가장 수준 높은 형식으로 보았습니다. 다만 개인보다는 가정이 우선이며, 가정보다는 국가가 우선한다는 것으로, <대학>8조목에 나오는 수신제가평천하(修身濟家平天下)한다는 개념과는 다소 다른 듯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내세운 중용(中庸)이 동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과는 차별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동양의 경우는 규모가 큰 왕국의 형태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규모가 작은 도시국가의 형태로 발전해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사회구조를 보면 노예제로를 인정하고 자유시민의 자격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다소 개념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학>은 서양 최초의 문예비평서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시학은 모두 2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비극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희극을 다룬 2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의 비평사를 연구한 연세대학교의 이상섭 교수가 주석을 단 <시학; http://blog.yes24.com/document/7432094>을 읽은 바가 있어 두 번째 읽는 셈입니다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쓴 이유는 사람의 감정을 북돋운다는 이유로 문학의 유해성을 주장한 플라톤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은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야기, 성격, 문체, 사상, 시각효과, 작곡 등 6사지 요소가 비극을 구성하는 요소라 하여 설명하면서 이상적인 비극 행태를 제시하였습니다. <오이디푸스왕>을 여러번 인용하고 있어서 <오이드푸스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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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천재 시계사와 다섯 개의 사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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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를 수리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추억의 시간을 수리한다면 망각 속으로 사라진 추억을 되살리거나, 아니면 왜곡된 추억의 시간을 바로 잡는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환상소설 연작으로 인기작가의 대열에 오른 다미 미즈에(谷 瑞惠) 작가의 소설인 만큼 환상적인 요소가 있을 듯합니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의 화자인 아카리는 사내연애에 실패하고는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여름방학 때 잠시 머물던 할머니가 살던 집인데 1층은 미용실이고 살림집은 2층입니다. 이발사이던 할아버지와 미용사이던 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였습니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던지 아키리 역시 미용업계에서 일하던 참입니다. 동료 미용사였던 사랑이 떠난 뒤로 다시 미용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은 아카리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려 합니다.


할머니의 미용실이 있던 거리는 왕년의 활기가 모두 사라지고 문닫은 가게들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어있던 할머니의 집에 세를 얻은 아카리가 도착하던 날 맞은 편 시계가게의 진열대에 있는 추억의 시()를 수리합니다.’라는 광고문구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 시계포의 주인은 이다 슈지입니다. 고장난 시계를 수리해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시계제작을 공부한 실력파라고 했습니다.


활기가 사라진 상가골목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 얽혀있는 기묘한 사연들이 무려 다섯 꼭지나 펼쳐집니다. 아카리와 슈지 사이에도 얽혀있는 사연이 있지만, 등장인물 들 가운데는 생사가 분명치 않은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사연이 여기 상가골목과 연관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풀어내는 역할은 아카리와 슈지, 그리고 골목에 있는 쓰쿠모 신사에서 살고 있는 다이치입니다. 기묘한 사건과 사연들을 풀어내다보니 아키리와 슈지 사이에 숨겨진 과거사가 드러나고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の とき 修理します)>입니다. 시계방 진열대에 있던 장식에는 원래 시계(時計)’라고 적혀있던 것인데, 누군가 ()’자를 집어가는 바람에 시()만 남은 상태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시()를 시간(時間)으로 해석하게 된 모양입니다. 가게를 열었던 슈지의 할아버지조차도 시계는 오래 사용할수록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된다(191)’라면서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오래된 시계들은 대부분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 고장 난 시계를 고친다는 것은 잊힌 혹은 왜곡된 추억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아카리와 슈지 사이에 얽혀있는 사연도 그런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옮긴이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지 달아난 자를 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옮긴이의 설명 가운데 기억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손때 묻혀온 것들은 나름의 생명을 가진다. 물론 그것 자체의 생명력이라기보다 우리가, 인간이 불어넣은 생명력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마치 그것은 그것 스스로 살아 숨 쉬듯 우리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애당초 살아있던, 살아 숨 쉬고 있던 우리의 정신, 우리의 추억은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망각이라는 저 너머 세상에서 영영 우리와 인연을 끊고 만다. 슬픔은 기쁨이 되고, 기쁨이 슬픔이 되는 감정의 굴곡 속에서 일희일비하며 삶에 새살을 덧대어가는 우리에게 꼭 기억해야 할, 잊어서는 안될 추억이란 매우 소중한 통과의례일 터. 망각 속의 추억을 복원하는 일은 그래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된다.(328)’라고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이곳에 왔던 아카리의 기억에 골목길을 북적였고, 온갖 색깔의 간판과 조화장식이 넘쳤던 것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골목길은 쓸쓸하게 변해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처만 남은 아카리의 입장에서는 옛날 모습이 사라진 골목길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하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카리의 이런 기대는 슈지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미용실을 하던 헤어살롱 유이의 손녀딸이라고 말입니다.


상가의 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슈지는 골목길의 상권이 죽어있는 것조차 즐기는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문을 닫은 가게는 사실 잠자고 있을 뿐이야. 가끔은 졸다가 깨어나는, 그런 상가도 나쁘지 않잖아?(31)”라면서 말입니다. 아주 낙천적인 성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슈지 역시 아픈 연애사를 안고 있습니다. 슈지는 아카리의 잊힌 추억을 되살려내는 추억을 복원하는 시계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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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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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사건, 특히 범죄의 희생물인 사체를 두고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방에서 근무할 적에는 변사체를 부검하여 범행현장을 재구성하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죽은 이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흔적을 반드시 남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아내기 위하여 애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흔적들을 토대로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하고 범인을 특정함으로써 수사에 도움을 주는 그런 사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는 식물학을 전공하는 저자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식물학을 토대로 하여 살인의 마지막 순간을 증거하는 작업을 소개합니다. 수사관들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여 증거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저자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식물표본실의 학예사입니다.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저자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심하게 부패된 남성의 시체가 강가에서 발견되었는데, 식물들에 덮인 사체가 그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도 익사로 추정되는 사체를 부검한 적이 있습니다만, 익사 후 시간이 많이 경과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시작된 사체로부터 나오는 냄새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연에 방치된 사체는 동물을 물론 식물 그리고 미생물까지 간여하여 훼손이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인은 물론 사망 시각을 추정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테너시에는 사체를 다양한 조건으로 자연에 방치하여 사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시간대별로 관찰한다고 합니다. 법의학 분야의 전문적인 자료를 얻기 위하여 사후 신체를 기증하신 분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한때 법의부검을 해보았던 터라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가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법의 식물학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생겨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의 식물학이 자리를 잡으려면 우리나라 자연에 존재하는 토종 식물은 물론 도래종 식물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체계적으로 수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들이 법의학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대부분 영국의 자생종이거나 도래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를 읽다보면 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있는 식물들과 사체와의 관계를 보면 사체가 그 장소에 위치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체가 발견된 장소의 식생들을 고려한다면 범인이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그 장소에만 있는 나무의 잎이라거나 꽃가루, 심지어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털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사건들 가운데는 아직도 미해결인 사건들이 있어서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법의식물학자로서 자신이 자문을 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식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도 적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식물에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굳이 적었어야 하나 싶습니다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분의 일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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