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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나날 - 프루스트 첫 단편소설집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최미경 옮김 / 미행 / 2019년 11월
평점 :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째 읽고 있습니다. 국일미디어판으로 처음 읽었고, 민음사판이 나오면서 따라 읽고 있습니다. 민음사판은 ‘갇힌 여자’까지 나와있어서 ‘사라진 알베르틴’과 ‘되찾은 시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프루스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쾌락과 나날>은 1896년에 출간된 프루스트의 첫 번째 작품집으로 시, 산문, 단편들이 담겼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느낀 점이었는데, <쾌락과 나날>에서도 살롱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프루스트와 함께 살롱을 드나들던 작곡가 레날도 안과 그의부인 마들렌 르메르도 한 몫을 참여했습니다. 안은 악보를 르메르는 꽃을 그린 삽화를 여러 장 그려준 것입니다. 프루스트는 부유한 부모 덕에 젊었을 적부터 귀족들의 살롱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작가, 예술가들을 만나 어울리면서 사교계의 딜레탕트로 유명세를 떨쳤다고 합니다.
딜레탕트는 향락적 문예도락이라고 옮기는 딜레탕티즘의 성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딜레탕티즘은 ‘예술이나 학문, 특히 음악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열렬한 애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라고 나무위키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즐기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딜레타레(dilettare)에서 나온 이탈리아어 딜레탄테(dilettante)에서 온 단어있습니다. 딜레탕테는 ‘~덕후’라는 요즘 쓰는 말로 설명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딜레탕트의 개념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도락가’라고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즐거움과 나날>이라고도 하는 <쾌락과 나날>은 당대의 문호 아나톨 프랑스가 서문을 쓸 정도였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비평가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작가 장 로렌과는 총으로 결투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프루스트의 부탁으로 서문을 쓴 아나톨 프랑스는 “그의 책은 보기 드문 매력과 정교한 우아함이 넘치는 젊은이의 얼굴과 가다. 이 책을 자연스럽게 진가를 발휘하고, 스스로를 알리고 추천한다”라고 적었습니다.
프루스트는 이 작품집을 젊은 나이에 이질로 사망한 영국 문인 윌리 히스에게 헌정한다고 적었습니다. 병약했던 프루스트는 젊은 친구가 죽음을 맞은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 속에, 아니 죽음이 다가오는 방식조차도 감춰진 힘, 비밀스런 조력,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은총’이 있었던 것이다. 연인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 시인들이 노래할 때, 그리고 병으로 고통을 느낄 때 영혼을 더욱 가까이 느끼듯 말이다(13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친구의 죽음에서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고결한 양심을 가진 존재들의 영원히 죽기 않는 영혼을 그렸다. 또한 선하게만 그리기에는 부족하고, 악만을 향유하기에는 고귀한 그들의 고통을 아는 나는, 진심 어린 연민으로 그들을 그리며, 이 짧은 작품집이 연민으로 정화되지 않도록 애썼다.(15쪽)”라고 적었습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글들의 대부분은 스무살에 썼고, 몇 작품은 스물세 살 무렵에 적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히스가 죽은 뒤에 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작품집의 첫 번째 작품, ‘실바니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과 마지막 작품 ‘질투의 종말’이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작품집을 내기 위하여 새로이 쓴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화자를 아껴준 실바니 자작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았고, 마지막 작품은 오노레를 빌어서 화자가 스스로의 죽음을 느끼는 바를 적은 것 같습니다.
과연 죽음을 순간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일요일 밤에 질식하는 꿈을 꾸었고 그는 가슴이 짖눌리는 걸 (…) 그는 숨이 막혔다. 갑자기 그 무게에서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의 무거운 짐이 멀어지고 멀어져서 거기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죽었구나!’ 그를 짓누르며 숨 막히게 하던 모든 것들이 몸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