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과 다른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4
세스 노터봄 지음, 지명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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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노터봄의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기록문학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소설이나 여행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바가 있지만, 꾸준히 읽다보면 통하는 때도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필립과 다른 사람들>은 필립이라는 주인공이 소년기와 성년기로 나뉜 삶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열 살 때 그리고 열여섯 살 때 네덜란드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 호이에 살고 있는 안토닌 알렉산더 삼촌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었습니다. 별난 삼촌에 조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촌을 처음 만났을 때, 만남을 축하하자면서 네가 즐겨하는 게 뭐지?”라고 묻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축하연에서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행각한 필립은 저녁 늦게 아니면 한밤중에 버스 타고 다니는 것, 물가에 가 앉아있는 거, 비맞고 쏘다니는 거, 그리고 가깜 누군가와 뽀뽀하는 거라고 답합니다. 삼촌은 이내 필립이 즐겨하는 것을 해보자고 집을 나섭니다. ‘버스를 타고 먼저 루넌으로 갔다가 다시 로스드레흐트로 되돌아와서 호숫가에 앉아있다고 뭘 좀 마시든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는 것입니다.


필립이 버스를 타고 느낀 점이 독특합니다. 야간버스는 흡사 혼자만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섬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주로 하지만 버스로 출퇴근 하던 시절에 어떤 생각을 했던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출퇴근 버스을 타는 분들은 대부분 타자마자 잠을 청하기 때문에 필립이 느낀 것처럼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6년 뒤에 다시 만난 삼촌은 열여섯이 된 필립에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인간은 신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어. 그리고 동시에 또 죽기 위해서. 이거야 말로 이율배반적인 명제라서 환장할 노릇이지.(33)”이라고 말입니다. 죽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이 되기 위한 존재라는 것은 더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필립이 두 번째로 삼촌을 만났을 때는 2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호이에서 지내면서 만난 친구들도 독특한데 친구들 이야기는 길지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삼촌과 함께 한 시간들을 1장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서는 본격적인 여행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그렇게 만난 사람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 그렇다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지역을 휘돌아다니는데, 처음에는 여행길에 만난 인연으로 다음 여행지로 향하던 것이 나중에는 목적지도 분명치 않아서 즉흥적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중국인 소녀를 만나기 위하여 헤매는 주인공을 대하면서 책읽기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필립의 여행지 대부분은 제가 가보지 않은 곳입니다만, 그래도 아는 장소가 나오면 반갑기도 합니다. 아를의 포럼 광장에서는 재클린이라는 여자와 춤을 추기도 합니다. 아를의 포럼광장은 포럼광장에 시인 미스트랄의 동상이 서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미스트랄의 만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마반테르라는 사람을 만나 함께 찾아간 프로방스의 산간벽지에서 만난 목사는 미스트랄 시인의 미레유라는 시에서 찬미한 술을 이야기합니다. “자 보아라, 프로방스의 자랑거리 / 영혼의 안식을 위한 최고의 기호품 / 봄머의 사행포도주는 역시 루 흐리골레가 그만 / 자 보아라(62)”


어쩌면 필립은 삶을 여행으로 보낸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해리성 둔주(遁走)라는 정신질환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병명이지만 여행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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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까지 걷기 -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함께한 긴 산책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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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보아서는 걷기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함께 한 긴 산책이라는 부제에서 뭐지?’하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녁까지 걷기>피카소-자코메티 전시가 열리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홀로 밤을 보내면서, 예술작품이 보관된 장소에 갇히는 경험을 글로 써보라는 기획에 따른 글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기획이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 속 인물들이 자정이 되자 내려와 살아 움직이고, 이들과 나눈 대담을 적어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기획안을 받은 작가 리디 살베르는 프랑스로 망명한 스페인의 공화주의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난민촌에서 태어나서 툴루즈 대학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정신의학을 전공하여 의사로 활동하다가 작가로 변신하였습니다. 그런 작가는 미술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장소에 너무 많은 아름다움이, 너무 많은 천재성이, 너무 많은 우아함이, 너무 많은 재치가, 너무 많은 광휘가, 너무 많은 부가, 너무 많은 벌거벗은 몸이, 너무 많은 가슴이, 너무 많은 엉덩이가, 너무 많은 경이로움이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밀집된 작품들이 한 곳에 빽빽하게 몰아놓은 가축 떼처럼 서로를 짓누르다보니 각 작품 고유의 특성들은 이내 질식해버리고(7)”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기획안을 받아들고 미술관에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이 기획이 리디 살베르에게 제안된 것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에 열정을 품어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탈리아계의 스위스 조각가이자 미술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후기 인상파 화가인 조반니 자코메티의 아들입니다. 인간의 신체를 가느다랗게 늘여 표현한 작품들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리디 살베르는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사람>에 대하여 인간의 조건을 가장 적확하고 가장 가슴 저미는 방식으로 말해주는 작품 같았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무한한 고독과 무한한 취약성을, 취약하지만 삶을 이어가려는 끈질긴 고집을, 분별없이 삶에 집착하는 고집을 보여준다.(15)”라고 설명했습니다.


“<걷은 사람>은 꼼짝 못하게 굳어 있는 동시에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이 마치 넘실대는 수간 추위에 얼어버린 바다의 파도 같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한 밤의 미술관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감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은 그녀를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코메티의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앞에 놓은 야전침대에 앉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상들을 수첩에 적다가 잠든 그녀는 7시에 갇혀있던 피카소 미술관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현재에 대하여 따로 적은 바는 없지만, 항암주사를 맞는다는 것을 보면 유방암 수술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걷는 사람>은 나처럼, 우리처럼 죽음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았고. 안다는 사실이 그의 등줄기를 휘게 했고, 무한히 겸손하게 만들었다.(184)”라고 적었습니다.


<걷는 사람>이나 작가 자신 역시 죽음을 향하여 걷는 존재였습니다. 걷기를 멈추는 순간 죽음에 이르는 셈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라진 뒤 내 뒤를 이어갈 아이를 두지 않은 걸 자책했습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에 빠진 비혼주의자들이 새겨들어볼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요즈음 부쩍 건강을 챙기고 살아오면서 남겼던 삶의 흔적을 정리하고 있는 저 역시 <걷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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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연구 - 방법서설ㆍ성찰, 개정판
르네 데카르트 지음, 최명관 옮김 / 창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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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추천한 철학책들을 따라 읽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성찰>을 읽기 위하여 고른 책은 최명관교수님의 <데카르트 연구>입니다. <방법서설><성찰>을 번역하고, <데카르트의 중심 사상과 현대적 정신의 형성><데카르트의 생애>를 더하여 한 권으로 묶어놓은 것입니다. 원전과 함께 데카르트에 대한 옮긴이의 해석을 함께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방법서설><성찰>그리고 <데카르트의 생애>을 처음 묶어 냈던 <데카르트 선집1>에 붙였던 서문을 인용해두었는데, 그 내용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암흑을 헤치고, 정신의 힘만으로 끈기 있게 사색하여, 밝은 빛으로 나아간 독창적인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 가운데는 오늘날에 이르러 타당성을 잃은 것이 적지 않지만, 그의 줄기찬 철학적 사색의 자세와 정신은 지금도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에게 극히 부족한 과학적 사고방식을 기르는 데 있어, 우리는 데카르트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데카르트 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라는 유명한 경구로 기억됩니다. 오랜 사유 끝에 자신의 철학의 제1원리로 정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쥬 봉스 농 쥬 지위(Je pense, donc je suis)라는 프랑스어로 적었다가 뒷날 출간한 <철학원리>에서 dubito, ergo cogito, ergo sum(두비토, 에르고 코기토, 에르고 숨)” ,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데카르트 사유의 기본이 된 이 명제는 근세 철학과 과학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가 되었습니다.


<방법서설>은 근대과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철학서들과는 달리 내용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법서설>6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최명관 교수님은 이 책의 얼개를 1부는 일종의 자서전적 고백이다. 2부에서는 학문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방법의 네 규칙을 제시한다. 3부에서는 도덕상의 격률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격률들은 신중한 고려와 겸허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4부는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룬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는 곳은 바로 여기다. 5부에서는 갑자기 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끝으로 제6부에서는 학문 탐구의 모든 조건이 서술되어 있다.(45)”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은 제4부와 제2부인 셈입니다. 특히 제2부의 방법론의 네 규칙을 이렇게 요야했습니다. 1. 의심할 여지가 엇을 정도로 명증적으로 진리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 것. 속단과 편견을 피할 것, 2.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것을 분할할 것. 이것은 분석의 규칙이다, 3.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를 것. 이것은 종합의 규칙이다, 4. 문제의 모든 요소를 다 열거하고 그 중의 단 하나라도 빠트리지 말 것, 등입니다.


<방법서설>5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혈액의 순환론의 내용은 용어 등에서 지금의 내용과 다소 차이가 느껴집니다. 또한 신이 현존함을 입증하려는 <성찰><방법서설>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제대로 따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파리 신학부에 보내는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이라는 문제는 신학보다는 철학적으로 논증할 문제라고 적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다루었습니다만, 인간의 영혼이란 실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활동을 이르는 것이라고 본다면 신체와 함께 공멸하는 운명으로 영생불사의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내가 인식하고 있으며, 나라는 존재는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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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5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석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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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으로 처음 만난 가즈오 이시구로는 난해하면서도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 <녹턴> <나를 보내지 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가즈오 이시구로 전작 읽기의 과정입니다.


199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저명한 피아니스트 라이더씨가 연주회에 초청받아 중부 유럽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서 시작하여 도시를 떠날 때까지 34일 사이에 벌어지는 해괴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라이더씨는 이 도시를 처음 찾는다고 합니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시감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영국인 친구들을 다수 만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피아노연주가를 초대하였다면 일정을 관리해주는 누군가가 배치되어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고 일정을 관리해 줄만도 한데, 이 책에 나오는 도우미는 이야기 앞부분과 끝부분에 잠깐 나타나는 것으로 끝입니다. 화자의 행보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면 연주회장을 점검하고 연주할 피아노의 상태도 확인할 겸해서 연습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연주회 당일 겨우 두 시간의 연습시간을 낼 수 있었고, 연주회장의 피아노는 확인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라이더씨가 숙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만나는 사람들이 그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그런 식입니다. 심지어는 누군가와 함께 일을 보러가는 라이더씨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동행하던 사람을 기다리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더구나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서 길사정도 모르는 그가 전차나, 버스 심지어는 차를 운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라이더씨가 방문하는 장소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옛 시가지와 주거지 그리고 황량한 시 외곽 지역까지 두루 섭렵하는데, 우연의 연속인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중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중간에 내려 찾아가도록 방치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막무가내이다 보니, 읽는 제가 화가 치밀 지경입니다. 그런가 하면 호텔의 포터인 구스타프는 딸과 외손자를 만나달라고 하는데, 구스타프의 딸 소피와 그녀의 아들 보리스를 만나면서 그들이 아내와 아들이라는 관계로 전개가 됩니다. 그렇다면 구스타프가 장인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보리스의 친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상황이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이어가는 라이더씨이지만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하늘에 여명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광장을 계속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점점 화가 치밀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온갖 일에 휘말려 가장 우선해야 할 일들은 뒷전으로 돌려버리고 엉뚱한 데에만 정신을 쏟았다. 게다가 내 평생 가장 중요한 밤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절망감이 분노와 뒤섞였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2192)”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일에 휩쓸려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도시 사람들 모두 라이더씨를 마치 영웅처럼 대우해주었지만, 이야기 끝에 이르면 평범한 것도 부족해서 무시를 당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라이더씨의 관심을 끌어 무언가 부탁을 하려는 모습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인 까닭을 알 듯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각자 속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라이더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의욕만 앞섰을 뿐 해답을 주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요약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구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머물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빚어내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고독의 하모니라는 구절에 함축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독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입니다.


사람들도 라이더씨의 연주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과연 라이더씨는 일정이 잡혀있던 연주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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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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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가 2012년에 기획한 여름 특집 문학방송 <몽테뉴와 함께 하는 여름>이 대중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방송 내용은 몽테뉴와 함께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이라는 부제를 단 <인생의 맛>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습니다. <인생의 맛>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몽테뉴 수상록>을 읽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앵테르의 기획은 프루스트, 호메로스,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등 10 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나라에 소개 되는대로 따라 읽고 있습니다.


<파스칼과 함께 하는 여름>은 지난해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습니다. <인생의 맛>을 맡았던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앙트완 콩파뇽교수가 맡았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의 말미에 방송에 나간 서른다섯 편에 여섯 편을 더하여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한편을 마지막에 썼다고 하는데 맞춰보라고 했지만, 저는 짐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파스칼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바로 <팡세>에 나오는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대목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인간은 사유하는 능력을 제외하고는 힘이 없는 약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팡세(Pensée)>의 원래 제목은 <종교 및 기타 주제에 대한 파스칼의 팡세>였던 것을 <팡세>로 줄였다고 합니다. ‘팡세는 사상, 생각, 회상, 금연 혹은 사색집이라는 의미입니다. 1662년에 파스칼이 죽은 뒤에 가족들이 발견한 유고를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 모두 924꼭지의 글이 담겨있습니다. 주로 기독교를 옹호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파스칼과 함께 하는 여름>의 머리말에서는 <팡세><몽테뉴를 반대함>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다룬 거의 모든 주제가 몽테뉴가 틀렸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몽테뉴의 <수상록>과 같은 형태를 따랐다는 점입니다. <수상록>을 읽는데 몇 년이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팡세> 역시 만만치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몽테뉴가 틀렸다를 전제로 한 글쓰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구절을 소개했습니다만, <팡세>에는 기억해둘만한 문구가 많다고 합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어를 제대로 사용한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도 수학자이며, 탁월한 물리학자, 철학자이면서도 독보적인 신학자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천재가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앵테르 방송의 ‘~와 함께 하는 여름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방송되는 것입니다. 책은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을 거친다고는 하지만 몇 쪽 분량의 짧은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주체가 되는 인물이 발표한 주요 작품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한편, 그 내용이 소략하다는 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을 담당한 앙투안 콩파뇽을 파스칼의 사유를 다양한 이들의 생각과 비교하고 있어서 다른 인물에 비하여 이야기의 범위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스칼의 <팡세> 읽기에 도전해보려는 이유입니다.


<팡세>에서는 생각하는 법, 글 쓰는 법, 읽는 법에 관한 글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파스칼의 글은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소개하고, 두 주장이 다 틀렸음을 제시하고, 둘 중 각각의 올은 것은 간직하고 틀린 것은 거부하면서 둘을 조합하여, 결국 그 둘을 지양(止揚)하는 제3의 주장을 제안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제가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유해물질>을 쓰면서 채택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팡세>를 읽기로 한 성과가 더해지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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