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과 다른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4
세스 노터봄 지음, 지명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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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노터봄의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기록문학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소설이나 여행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바가 있지만, 꾸준히 읽다보면 통하는 때도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필립과 다른 사람들>은 필립이라는 주인공이 소년기와 성년기로 나뉜 삶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열 살 때 그리고 열여섯 살 때 네덜란드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 호이에 살고 있는 안토닌 알렉산더 삼촌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었습니다. 별난 삼촌에 조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촌을 처음 만났을 때, 만남을 축하하자면서 네가 즐겨하는 게 뭐지?”라고 묻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축하연에서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행각한 필립은 저녁 늦게 아니면 한밤중에 버스 타고 다니는 것, 물가에 가 앉아있는 거, 비맞고 쏘다니는 거, 그리고 가깜 누군가와 뽀뽀하는 거라고 답합니다. 삼촌은 이내 필립이 즐겨하는 것을 해보자고 집을 나섭니다. ‘버스를 타고 먼저 루넌으로 갔다가 다시 로스드레흐트로 되돌아와서 호숫가에 앉아있다고 뭘 좀 마시든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는 것입니다.


필립이 버스를 타고 느낀 점이 독특합니다. 야간버스는 흡사 혼자만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섬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주로 하지만 버스로 출퇴근 하던 시절에 어떤 생각을 했던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출퇴근 버스을 타는 분들은 대부분 타자마자 잠을 청하기 때문에 필립이 느낀 것처럼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6년 뒤에 다시 만난 삼촌은 열여섯이 된 필립에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인간은 신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어. 그리고 동시에 또 죽기 위해서. 이거야 말로 이율배반적인 명제라서 환장할 노릇이지.(33)”이라고 말입니다. 죽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이 되기 위한 존재라는 것은 더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필립이 두 번째로 삼촌을 만났을 때는 2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호이에서 지내면서 만난 친구들도 독특한데 친구들 이야기는 길지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삼촌과 함께 한 시간들을 1장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서는 본격적인 여행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그렇게 만난 사람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 그렇다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지역을 휘돌아다니는데, 처음에는 여행길에 만난 인연으로 다음 여행지로 향하던 것이 나중에는 목적지도 분명치 않아서 즉흥적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중국인 소녀를 만나기 위하여 헤매는 주인공을 대하면서 책읽기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필립의 여행지 대부분은 제가 가보지 않은 곳입니다만, 그래도 아는 장소가 나오면 반갑기도 합니다. 아를의 포럼 광장에서는 재클린이라는 여자와 춤을 추기도 합니다. 아를의 포럼광장은 포럼광장에 시인 미스트랄의 동상이 서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미스트랄의 만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마반테르라는 사람을 만나 함께 찾아간 프로방스의 산간벽지에서 만난 목사는 미스트랄 시인의 미레유라는 시에서 찬미한 술을 이야기합니다. “자 보아라, 프로방스의 자랑거리 / 영혼의 안식을 위한 최고의 기호품 / 봄머의 사행포도주는 역시 루 흐리골레가 그만 / 자 보아라(62)”


어쩌면 필립은 삶을 여행으로 보낸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해리성 둔주(遁走)라는 정신질환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병명이지만 여행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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